▲ 이원우 기자

(이 글에는 ‘마션’의 주요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마션’은 완벽한 작품이다. 원작소설 작가 앤디 위어(Andy Weir)부터가 일단 만만한 인물이 아니다. 1972년생인 그는 8살 때부터 아이작 아시모프의 작품을 읽었다고 한다. 15세 때 이미 산디아 국립연구소에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입사를 했고 ‘워크래프트 2’ 게임 개발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림으로 그린 듯한 '이공계 괴짜'다.

그런 그에게도 우주SF 소설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던 모양이지만, 그는 역시 괴짜 같은 방식으로 난관을 돌파했다. 모든 연구를 구글로 해결한 그는 2009년 첫 장편소설인 ‘마션’을 자신의 웹사이트에 연재했다. 그리고 수시로 편집과 변경을 해나가며 내용을 보완했다. 독자들은 앤디 위어가 틀린 부분을 지적해 줬고 작품은 더욱 완전해졌다.

결국 ‘마션’은 도입부터 독자들을 강렬하게 끌어당기는 매력적인 소설로 완성됐다. 2011년 자비 출판된 전자책으로 처음 세상에 나온 ‘마션’은 2014년 정식 출간을 거쳐 2015년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로 공개됐다.

수 년 간의 검증을 거친 만큼 작품의 이론적 측면에는 허점이 없다는 평가다. 집단지성의 승리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마크 와트니를 구조할 방법이 도저히 없어보이던 시점에 등장한 ‘퍼넬 기동’이라는 아이디어에는 과학자들조차 감탄한 눈치다.

화성의 모래폭풍 만큼이나 강력한 흥행돌풍을 일으킨 영화 ‘마션’에 대한 관객들과 평단의 반응은 매우 호의적이다. 영화 사이트 ‘로튼 토마토’에서 ‘마션’은 무려 93%의 지지를 얻고 있다. 만만찮게 까다로운 한국 관객들의 평점 또한 8.75점으로 상당히 높은 편이다(10점 만점, 네이버 영화 기준).

   
▲ 관객들은 그 완벽주의자가 한번쯤 와르르 무너지는 모습, 그 무너짐에서 다시금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모습을 보기 위해 극장에 간다.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공허해지는 아이러니가 이 작품에는 존재하는 것이다. /사진=영화 '마션' 해외 포스터

이렇게 되면 역으로 영화가 ‘별로’였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진다. 고약한 심리 같지만 ‘마션’에 박한 평가를 내린 사람들의 평가에도 귀를 기울여보면 어떨까.

의외로 이 작품에 대해서는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관객들의 아쉬움이 존재한다. 지구로부터 2억 킬로미터 떨어진 화성에 덩그러니 혼자 남아 고군분투하는 한 남자의 생존기에 긴장감이 떨어진다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어찌 보면 원인은 간단하다. 일단 이 작품에는 악역이 없다. 전부 착한 사람들이거나, 자기 일에 멋지게 미쳐 있는 사람들이거나, 자신의 일터(NASA)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사람들이다. 이 작품에 존재하는 갈등이란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를 어떻게 살릴 것이냐에 대한 이견, 그의 생존을 대원들에게 언제 알릴 것이냐의 문제 정도 밖에 없다. ‘착한 갈등’ 뿐이다.

덧붙여 주인공 마크 와트니는 ‘긍정의 신(神)’으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만큼 불굴의 의지를 보여준다. 뛰어난 두뇌까지 가지고 있는 그에게 화성은 적수가 되지 못한다는 인상마저 준다. 영화의 주인공이 영화 속 설정보다 강하면 관객들은 당연히 긴장감을 잃게 된다.

그는 어떻게 이렇게 강한 존재가 될 수 있었을까. 원작 소설엔 없고 영화에만 있는 대사를 통해 마크는 자기 삶의 철학을 관객들에게 노출한다.

“일단 시작해(You just begin). 그리고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고, 그 다음 문제를 해결해. 그러다 보면 살아서 돌아오게 될 거야.”

정말 훌륭한 삶의 방식이지만 바로 이 지점이 작품의 긴장감을 떨어트리는 또 하나의 요소로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쉽게 말해 ‘마션’에는 지구에서 2억 킬로미터나 떨어진 화성에 혼자 남은 마크 와트니가 ‘왜 반드시 살아야만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누락돼 있다.

   
▲ 수 년 간의 검증을 거친 만큼 작품의 이론적 측면에는 허점이 없다는 평가다. 집단지성의 승리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마크 와트니를 구조할 방법이 도저히 없어보이던 시점에 등장한 ‘퍼넬 기동’이라는 아이디어에는 과학자들조차 감탄한 눈치다. /사진=영화 '마션' 포스터

이 작품에서 삶이란 어느 누구도 그 이유를 묻지 않는 ‘목적’으로만 다뤄진다. 거대한 질문은 생략된 채 모든 문제는 미분돼 있다. 문제A가 문제B로, 문제B가 문제C로 넘어가는 가운데 140분짜리 영화 한 편이 어느덧 끝나 있는 것이다.

삶에 대한 이와 같은 관점은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와 대비된다. 우주에서 표류한다는 설정은 같지만 ‘그래비티’의 분위기는 ‘마션’과 상당히 다르다. 우주를 소재로 한 공포영화 같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래비티’보다 훨씬 더 먼 곳에서 진행되는 ‘마션’이 흡사 동화 같은 분위기로 전개된다는 점과는 대조적이다.

‘마션’에 없으나 ‘그래비티’에 있는 것이 바로 생의 의지에 대한 질문이다. ‘그래비티’의 주인공 스톤 박사(산드라 블록)는 지구에서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딸을 잃었다. 그 이후 그녀는 삶의 의지를 완전히 상실해 버렸고,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우주로 도망을 쳤다.

허나 막상 끝도 없는 우주에 혼자 버려지자 그제야 생의 의지가 각성된 것이다. ‘나는 왜 살아야만 하는가?’ 스톤 박사에게 던져진 이 질문은 관객들에게도 똑같이 날아온다.

마크 와트니에 비하면 과학적 지식이 거의 없는 스톤 박사는 바로 이 근본적인 질문에 맞부딪혀 발버둥치는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결국 바다가 있고 공기가 있고, 삶의 이유들이 있는 지구로 귀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악역이 없기는 마찬가지지만 바로 이 인간승리의 기승전결이 다이내믹하게 펼쳐지면서 ‘그래비티’의 감동은 극대화되는 것이다.

흔히 한국인들은 재미와 감동을 추구한다고들 말한다. ‘마션’이 재미있는 영화라는 점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과학적으로도 완벽한 영화이기까지 하다. 허나 ‘마션’에는 감동이라는 마지막 퍼즐 한 조각의 자리에까지 ‘재미’와 ‘지식’이 들어차 있다. 마치 24시간을 정해진 계획에 따라 빈틈없이 살고 있는 완벽주의자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달까.

관객들은 그 완벽주의자가 한번쯤 와르르 무너지는 모습, 그 무너짐에서 다시금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모습을 보기 위해 극장에 간다.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공허해지는 아이러니가 이 작품에는 존재하는 것이다. 완벽한 이 영화 ‘마션’에서 굳이 하나의 결점을 찾아보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