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이어 AMD도 미국행
트럼프 관세 리스크 선제 대응
국내 기업 투자 확대 가능성도
[미디어펜=김견희 기자]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잇따라 미국 생산 거점 확대에 나서며 공급망 뿐 아니라 산업 전반에 있어 밸류체인 재편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불확실성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 반도체 공정을 둘러보고 있는 최태원 SK 회장(왼쪽)./사진=SK 제공


1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AMD는 일부 데이터센터용 중앙처리장치(CPU)를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의 미국 애리조나 공장에서 생산하기로 했다. 이는 AMD가 미국에서 제품을 제조하는 최초의 사례로 트럼프 관세 압박에 대비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AMD뿐만 아니다. 엔비디아는 전날 향후 4년간 5000억 달러(714조 원)를 투자해 미국에서 인공지능(AI) 인프라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내 제조 역량을 강화해 증가하는 AI 칩과 슈퍼컴퓨터 수요를 맞출 수 있는 공급망을 강화할 것이다"고 말했다. 

엔비디아는 미국 곳곳에 부지를 확보해 동아시아에 구축된 공급망을 미국으로 옮기는 작업을 이어간다. 확보한 부지의 총 면적은 9만3000㎡(약 2만8100평)으로, 미국 내 생산된 주요 부품을 활용해 AI 기반 슈퍼 컴퓨터를 만드는 게 목표다. 

AMD와 엔비디아 모두 트럼프 행정부 관세 영향에 대비해 대만을 중심으로 구축된 생산 거점을 미국으로 일부 이전하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시장에선 국내 반도체 기업도 글로벌 시장 분위기를 따라 미국 내 투자를 늘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글로벌 공급망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만큼 시장의 흐름에 발을 맞출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SK하이닉스가 미국 인디애나주에 짓고 있는 HBM 공장에 추가 투자를 단행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인디애나주에 38억7000만 달러(약 5조5000억 원)를 투자해 HBM 생산 공장을 짓기로 했다. HBM을 비롯한 AI 메모리 제품을 2028년 양산하는 게 목표다.

다만 엔비디아가 미국 내 생산량을 늘릴 수록 SK하이닉스가 미국으로 수출해야할 고대역폭메모리(HBM) 물량도 확대되는데, 이에 따른 증설 가능성도 거론된다. 한국에서 생산한 HBM을 미국으로 수출할 시 트럼프 관세 영향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관세는 기업의 이익률을 떨어트린다. 다른 한편에선 관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공장 준공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는 말도 흘러나온다.

삼성전자도 촉각을 기울이고 있는 눈치다.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미국에 총 370억 달러(53조 원)을 들여 공장과 각종 연구개발(R&D) 센터를 구축 중이다. 기존 텍사스주 오스틴 공장에 이어 테일러에 파운드리 공장 2곳, 연구개발 시설 등이 새롭게 마련된다. 다만 테일러 공장의 가동 시점은 당초 지난해 말이었으나 내년으로 미뤘다. 삼성전자는 이곳에서 4나노 이하 첨단 공정 양산에 돌입하는 게 목표다. 


◆ 새로운 생태계 형성되나...반도체 밸류체인 재구축 불가피

미중 무역 전쟁이 본격화 되는 양상을 보인 가운데, 반도체 산업은 미국이 중국을 배제함에 따라 단순히 공급망 재편을 넘어 밸류체인 전체의 재구축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밸류체인은 기업의 가치 창출과 함께 차별화를 통한 경쟁력을 포함하는 전략의 일환이자, 이러한 일련의 흐름을 얼마나 정교하게 연결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미래가 좌우된다. 즉 제품의 흐름과 기업의 흐름이라 할 수 있는 설계와 생산, 판매의 연결 관계가 곧 경쟁력으로 직결된다는 뜻이다.

LNG 산업의 경우 천연가스를 시추하고, 액체로 만드는 액화 단계 거쳐 선박을 통해 각 국가로 전달되고, 이를 다시 기체로 바꿔 발전소나 가정에서 사용하게 된다. 2차 전지 역시 채굴→가공→제조→활용→재활용이라는 순환형 밸류체인 갖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이 곧 밸류체인의 연결과 안정성 자체이자 경쟁력이다.

반도체의 경우 일부 제품군에서 미국이 설계하고 한국에서 제조한 후 중국에서 완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기본 밸류체인을 갖고 있었지만, 미국의 관세 부과와 중국 배제 정책으로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미 관세국경보호청(CBP)은 지난 11일 ‘특정 물품의 상호관세 제외 안내’를 통해 스마트폰과 노트북 컴퓨터, 하드디스크 드라이브, 컴퓨터 프로세서, 메모리칩, 반도체 제조 장비 등을 제외 대상에 포함한 바 있다. 

하지만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이틀 뒤 미 ABC 방송 인터뷰에서 “스마트폰과 컴퓨터 등 모든 전자제품은 반도체 제품에 속하게 될 것”이라며 “이러한 제품들이 안심하고 사용될 수 있도록 특별하게 집중된 유형의 관세가 적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결국 상호관세에서 제외됐을 뿐 품목 관세를 통해 밸류체인 전체에 변화를 주겠다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황수욱 메리츠증권 연구원도 “이 품목 리스트에는 반도체 '칩'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등 핵심 전자제품, 인공지능(AI) 하드웨어의 핵심 밸류체인(서버, 서버에 필요한 부속품)을 포괄한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들은 결국 빠르게 변화하는 밸류체인 재편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무역 의존도가 높은 데다가 반도체 시장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추가 투자 압박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며 "미국의 요구에 따라 철저한 대비를 이어가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스마트폰, 컴퓨터, 메모리 칩 등 일부 전자 제품들이 상호관세 부과 대상이 아닌 품목별 관세를 매기는 별도 관리 대상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이르면 다음 주 관세율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트럼프 행정부는 전날 국가 안보를 이유로 수입 반도체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으며 이와 관련해 곧 공식 발표가 있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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