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중동발 LNG 충격…운송거리 급증 선박 확보전
공급자 우위 굳힌 K-조선…물량 넘어 부가가치 극대화
[미디어펜=김동하 기자] 중동발 지정학적 분쟁과 호주의 기후 재난이 촉발한 액화천연가스(LNG) 공급망 위기가 국내 조선업계의 질적 도약의 기폭제가 되고 있다. 글로벌 에너지 대란으로 LNG 운송 경로가 길어지는 구조적 변화 속에 HD한국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한화오션 등 국내 조선업계는 단순한 선박 제조사를 넘어 글로벌 에너지 밸류체인의 핵심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전략적 승부에 나섰다.

   
▲ 중동발 지정학적 분쟁과 호주의 기후 재난이 촉발한 액화천연가스(LNG) 공급망 위기가 국내 조선업계의 질적 도약의 기폭제가 되고 있다. 사진은 카타르 라스라판의 LNG 생산 시설./사진=연합뉴스(로이터)


2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글로벌 LNG 시장은 호주와 중동 핵심 생산 기지의 연쇄 타격으로 극심한 공급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호주 서부에 위치한 쉐브론의 휘트스톤 LNG 설비가 열대성 사이클론으로 파손됐고 앞서 전 세계 LNG 생산의 20%를 담당하는 카타르마저 이란의 공습으로 라스라판 산업 단지가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해당 공격으로 카타르 LNG 수출 물량의 17~20%가 차질을 빚게 됐으며 현지에서는 시설 완전 복구에 최대 5년이 걸릴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설상가상으로 전 세계 LNG 물동량의 20% 이상이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의 통행량은 전쟁 이전의 5% 미만으로 급감했다. 전통적 핵심 공급축이 일제히 무너지면서 생존 기로에 선 유럽과 아시아의 대형 에너지 트레이더들은 북미나 남미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적은 곳으로 대체 도입선을 다변화하고 있다.

이로 인해 가스를 실어 나르는 운송 거리(톤마일)가 급증하고 글로벌 선박 부족 현상이 심화되자, 대규모 선박을 적기에 공급할 수 있는 한국 조선소의 도크(건조 공간)를 선점하기 위한 선주들의 확보전이 가열되고 있다.

이러한 이해관계자 역학의 변화는 K-조선에 완벽한 '공급자 우위' 시장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탄소 배출 규제가 강화되는 가운데 늘어난 항해 거리를 견딜 고효율 친환경 엔진과 화물창 보랭 기술을 충족할 수 있는 곳은 사실상 K-조선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주도권을 쥔 K-조선 빅3는 2028년 이후의 넉넉한 수주 잔고를 무기로 외형 경쟁을 멈추고 각 사의 특기를 살려 LNG 밸류체인의 단계별 부가가치를 극대화하는 전략으로 선회했다.

◆ 배 건조 넘어 에너지 파트너로…3사 3색 마진 극대화 승부수

HD한국조선해양은 LNG 밸류체인의 핵심인 미드스트림(운송) 영역에서 압도적 스케일과 내재화된 기술력을 앞세워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은 3사 중 가장 많은 건조 슬롯을 보유해 선주들의 대규모 플릿(선대) 발주 수요를 유연하게 흡수한다. 가장 강력한 경쟁력은 핵심 기자재인 '엔진 내재화'에서 나온다. 선박 원가의 10~15%를 차지하는 대형 엔진을 자체 조달해 외부 요인에 흔들리지 않는 완벽한 원가 경쟁력을 구축, LNG 운반선 건조 마진을 극대화하는 구조다.

삼성중공업은 선박 건조를 넘어 가스를 직접 생산하는 업스트림(탐사·생산) 영역의 해양 플랜트로 차별화된 해자를 구축했다. 주력 무기는 '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설비(FLNG)'다. 카타르 사태처럼 육상 고정식 인프라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은 바다 위에서 가스를 채굴·액화해 바로 수출할 수 있는 FLNG에 눈을 돌리고 있다. 전 세계 FLNG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삼성중공업은 이 틈새를 파고들어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한화오션은 조선업의 한계를 넘어 한화그룹 전체의 에너지 밸류체인과 결합하는 역학을 보여주고 있다. 단순히 배를 만들어 인도하는 것이 아닌 선박 엔진과 친환경 발전 설비를 결합한 '토털 LNG 솔루션'을 제공한다. 나아가 해운사 설립 추진 등을 통해 천연가스의 생산-운송-발전으로 이어지는 밸류체인 전반에 영향력을 확대해 선주와의 관계를 장기적인 '에너지 파트너'로 격상시킨다는 전략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과거 수주 절벽 시기 한국 조선업이 제살깎기 경쟁을 했다면, 지금은 카타르 피격 등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쇼크라는 거대한 시장 재편기를 맞아 각자의 특화된 밸류체인 생태계를 완성했다"며 "K-조선의 흑자 사이클은 길고 견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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