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상 플랜트 대체할 '바다 위 가스전'… 글로벌 오일메이저 수요 급증
중국 추격을 따돌린 초고난도 엔지니어링… K-조선 3사, 시장 주도
삼성중 표준화·한화오션 영토확장·HD현대 수익융합 등 차별화 시동
최근 중동 전쟁으로 인한 글로벌 에너지 안보 위기와 탄소중립 전환 등의 이슈가 겹치며 전 세계 에너지 지형이 바뀌고 있다.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해상 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설비(FLNG)가 오일 메이저들의 대안 투자처로 부상하고 있다. 배 한 척당 수조 원을 호가하는 FLNG 시장은 현재 국내 조선 3사가 수주를 주도하며 시장 선점에 나섰다. 본지는 이번 시리즈 기획을 통해 중국의 거센 추격과 글로벌 정세 급변 속에서 국내 조선 업계가 나아갈 방향과 함께 풀어야 할 과제, 미래 생존 전략 등에 대해 심층 분석해본다. [편집자 주]

[미디어펜=김동하 기자]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 장기화와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구조적 재편이 K-조선의 해양플랜트 사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그 중심에는 바다 위 가스전이라 불리는 FLNG가 자리 잡고 있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일반 상선 시장에서 원가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조선소들의 추격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척당 수조 원에 달하는 고부가가치 해양플랜트인 FLNG 시장은 국내 조선 3사(HD한국조선해양, 한화오션, 삼성중공업)가 경쟁 우위를 점하며 글로벌 수주 물량을 장악하고 있다.

   
▲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 장기화와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구조적 재편이 K-조선의 해양플랜트 사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사진=제미나이


◆ 육상 플랜트 대체 밸류체인 혁신…에너지 안보 징검다리

최근 글로벌 오일 메이저와 각국 에너지 기업들은 신규 FLNG 프로젝트 최종투자결정(FID)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추세다. FLNG는해상 가스전 위에서 직접 천연가스를 채굴한 뒤 이를 불순물 정제 과정을 거쳐 영하 162도로 액화해 저장·하역하는 모든 과정을 단일 선박 내에서 처리하는 복합 해양플랜트다. 천연가스 밸류체인 단계인 업스트림과 미드스트림을 한 공간에 압축한 구조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과거 오일 메이저들은 해저에서 뽑은 가스를 파이프라인을 통해 육상으로 보낸 뒤 육상 액화 플랜트를 건설해 처리하는 방식을 주로 채택했다. 그러나 글로벌 에너지 역학 구조가 급변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육상 플랜트는 각국의 까다로운 환경 규제, 막대한 인프라 투자, 지역 사회의 민원 등으로 인해 부지 선정부터 건설까지 최소 5~7년 이상이 소요된다. 반면, FLNG는 한국의 조선소에서 완전히 건조한 뒤 해당 가스전으로 예인해 설치만 하면 되므로 전체 프로젝트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유연한 이동성이 주요 경쟁력으로 꼽힌다. 특정 지역에서 분쟁이 발생하거나 가스전이 고갈되더라도 다른 해역의 신규 가스전으로 설비를 이동시켜 재사용이 가능하다. 이는 수조 원대 자산이 지정학적 리스크에 묶이는 것을 방지해 투자 유연성을 높일 수 있는 셈이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이 중동 및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를 낮추고 자체적인 가스 안보망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FLNG가 효율적이고 안전한 대안으로 주목받는 배경이다.

◆ 중국과의 격차…초정밀 엔지니어링, K-조선의 진입장벽

이런 해상 액화 설비 수요 증가는 국내 조선업계 수주 기회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 글로벌 조선 시장은 벌크선과 중소형 컨테이너선 등 범용 상선 분야에서 중국이 점유율을 크게 높인 상황이다. 하지만 척당 2조 원에서 최대 4조 원을 호가하는 초고부가가치 시장인 FLNG 영역에서는 아직 중국 조선소들의 진입이 제한적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FLNG는 축구장 3~4개 크기의 선박 공간 내에 복잡한 화학 공정 모듈과 배관, 극저온 특수 액화 설비를 오차 없이 배치해야 하는 고도의 정밀 엔지니어링 능력이 요구된다. 미세한 결함이나 진동 설계 오류가 가스 누출 등 대형 사고로 이어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은 건조 단가가 상대적으로 높더라도 해양플랜트 건조를 통해 트랙 레코드(실적)를 입증한 국내 조선소에 일감을 맡기는 경향이 짙다. 국내 조선업계가 축적해 온 건조 노하우와 기술력이 후발 주자들의 추격을 따돌리는 진입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 표준화 삼성·파이프라인 확대 한화·수익성 융합 HD현대

이 분야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곳은 삼성중공업이 꼽힌다. 삼성중공업은 전세계에 발주된 대형 FLNG의 과반을 수주하며 안정적인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미국 델핀 등을 비롯한 대형 프로젝트 수주에 대한 기대감도 거론된다. 발주처 도면 기반의 단순 건조를 넘어 독자적인 'FLNG 표준 모델'을 선제적으로 개발해 제안하는 방식으로 패러다임 변화를 시도했다. 설계 변경 리스크를 줄이고 건조 기간을 단축해 수익성을 높이는 전략이 시장에서 유효했다는 분석이다.

한화오션 역시 고부가가치 상선 부문 실적 개선을 바탕으로 해양플랜트 파이프라인 확장에 힘을 쏟는 모습이다. 미주 지역을 중심으로 미개발 가스전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연간 1~2기의 FLNG를 안정적으로 수주해 추가 매출 기반을 다질 것으로 전망된다.

HD한국조선해양은 핵심 계열사인 HD현대중공업의 해양 설비 엔지니어링 역량을 앞세워 수주전에 가세하고 있다. 보수적인 수주 기조를 이어왔으나 최근 멕시코만 트리온(Trion) FPU(부유식 원유생산설비) 프로젝트 등을 성공적으로 수주하며 건조 경쟁력을 재입증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엔진기계 사업부의 발전 역량과 융합해 친환경·고효율 설비를 제안하는 방식으로 차별화를 꾀하고 있어, 향후 모잠비크 등 대형 가스전 프로젝트에서 국내 3사 간의 치열한 수주 경쟁이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LNG 공급망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고품질 FLNG를 건조할 수 있는 한국 조선업계의 전략적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K-조선이 구축한 밸류체인이 글로벌 에너지 안보를 뒷받침하는 인프라로 작용하며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맞이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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