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형 설계 타파…'표준 모델'로 원가·공기 대폭 단축
가스터빈 대체 전동화·CCS…친환경 융합으로 규제 대응
삼성 표준화·한화 전동화·HD 탄소포집 등 초격차 굳히기
최근 중동 전쟁으로 인한 글로벌 에너지 안보 위기와 탄소중립 전환 등의 이슈가 겹치며 전 세계 에너지 지형이 바뀌고 있다.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해상 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설비(FLNG)가 오일 메이저들의 대안 투자처로 부상하고 있다. 배 한 척당 수조 원을 호가하는 FLNG 시장은 현재 국내 조선 3사가 수주를 주도하며 시장 선점에 나섰다. 본지는 이번 시리즈 기획을 통해 중국의 거센 추격과 글로벌 정세 급변 속에서 국내 조선 업계가 나아갈 방향과 함께 풀어야 할 과제, 미래 생존 전략 등에 대해 심층 분석해본다. [편집자 주]

[미디어펜=김동하 기자] 글로벌 해양플랜트 시장을 주도하는 국내 조선업계가 양적 수주 확대를 넘어 질적 수익성 극대화를 위한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기존 맞춤형 주문 생산 방식이 지닌 태생적인 고비용 구조를 타파하고, 갈수록 엄격해지는 글로벌 환경 규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차세대 비즈니스 모델 전환이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조선 3사(HD한국조선해양, 한화오션, 삼성중공업)는 FLNG 프로젝트의 영업이익률을 끌어올리고 글로벌 수주 주도권을 장기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설계 표준화'와 '친환경 기술 융합'이라는 두 가지 핵심 승부수를 띄운 것으로 파악됐다.

   
▲ 글로벌 해양플랜트 시장을 주도하는 국내 조선업계가 양적 수주 확대를 넘어 질적 수익성 극대화를 위한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사진=제미나이


◆ 맞춤형 설계의 딜레마…원가 상승·공기 지연 리스크

전통적으로 해양플랜트 산업은 발주처인 오일 메이저의 요구사항과 개발 대상 가스전의 해양 환경에 맞춰 매번 새로운 도면을 그리는 '주문형 맞춤 제작' 방식을 따랐다.

프로젝트마다 투입되는 핵심 기자재의 사양이 다르고 선체의 기본 구조마저 새로 설계해야 했기 때문에, 초기 기본설계(FEED)에만 수년이 소요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더욱이 건조 과정에서 발주처가 설계를 조금만 변경해도 수만 개의 배관과 전장 케이블 배치를 다시 해야 해 공기 지연과 원가 상승이라는 치명적인 리스크를 감수해야만 했다. 매번 '세상에 단 하나뿐인 시제품'을 만드는 것과 같아, 척당 수조 원을 수주하더라도 건조 효율이 떨어져 실제 손에 쥐는 이익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한계가 지적돼 왔다.

업계 관계자는 "기존 해양플랜트 비즈니스는 발주처가 제시한 까다로운 스펙을 맞추는 데 급급해 건조사가 리스크를 떠안는 구조였다"며 "조선사 입장에서는 붕어빵을 찍어내듯 규격화된 선박을 연속 건조해야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마진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삼성중공업이 쏘아 올린 '표준화'…건조 패러다임 바꾼다

이러한 고비용 구조를 혁신하기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인 곳은 삼성중공업이다. 삼성중공업은 지난 수십 년간 축적한 엔지니어링 데이터와 건조 노하우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FLNG 표준 모델인 'MLF-N(Multi-purpose LNG Floater-Nearshore)'을 선제적으로 개발해 시장에 선보였다.

MLF-N은 FLNG의 뼈대가 되는 하부 선체(Hull)의 제원과, 상부 플랜트(Topside)의 필수 공정 모듈 배치를 자사 건조 시스템에 가장 최적화된 형태로 미리 규격화한 모델이다. 가스전의 특성에 따라 일부 특수 설비만 추가로 조립하는 '주문형 구성' 방식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한 것이다.

표준 모델을 적용할 경우, 기본설계에 소요되는 기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잦은 설계 변경으로 인한 원가 상승 리스크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또한, 규격화된 도면을 바탕으로 국내외 소부장(소재·부품·장비) 협력사로부터 핵심 기자재를 일괄 대량 구매할 수 있어 원가 경쟁력 향상에도 크게 기여한다는 분석이다. 

◆ 탄소 규제가 만든 새 진입장벽…'친환경 FLNG'로 초격차 굳히기

수익성 개선을 위한 표준화와 더불어, 넥스트 해양플랜트 시장의 판도를 가를 또 다른 핵심 키워드는 '친환경'이다.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 규제 강화와 글로벌 탄소세 도입 움직임이 본격화하면서, 오일 메이저들은 천연가스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발자국을 줄여야 하는 강한 압박을 받고 있다. 기존 FLNG는 가스를 정제하고 액화하는 데 필요한 막대한 전력을 생산하기 위해 자체 가스터빈을 돌려 화석연료를 태웠고, 이 과정에서 다량의 온실가스가 배출되는 구조적 단점을 안고 있었다.

이에 K-조선은 재생에너지와 첨단 탄소 저감 기술을 연계한 '친환경 FLNG' 개발에 사활을 걸며 새로운 진입 장벽을 구축하고 있다. 연안에 설치되는 FLNG의 경우 육상 발전소나 해상 풍력단지에서 생산된 친환경 전력을 끌어와 가스터빈을 대체하는 '전동화' 설계를 도입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한화오션은 최근 가스터빈 대신 전력을 사용하는 완전 전동화 FLNG 개념 설계를 미국 선급(ABS)으로부터 인증받으며 기술력을 입증했다. HD한국조선해양 역시 해상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다시 해저 지층에 저장하는 탄소포집·저장(CCS) 기술을 FLNG 모듈에 융합하는 차세대 모델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결국 미래 FLNG 시장의 승패는 누가 더 빨리, 더 싸게 지으면서 동시에 탄소 배출량을 최소화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며 "표준화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친환경 기술로 미래 규제에 대비하는 K-조선의 '투트랙 전략'은 향후 후발 주자인 중국 조선소들이 범접하기 힘든 강력한 초격차 해자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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