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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뉴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단종 안식처…영월의 재발견 (2) 장릉

2026-03-21 06:13 | 김상문 부장 | moonphoto@hanmail.net
[미디어펜=김상문 기자]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이하 왕사남)는 조선 단종의 유배지인 강원도 영월 청령포를 배경으로 비극적인 시간을 그려낸다.

엔딩 장면에서 엄흥도는 강에서 단종의 시신을 끌어안고 “이제 강을 건너셔야 할때입니다”라는 짧은 말을 남긴다. 영화는 그 여운 속에서 마무리되지만, 단종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영화에는 직접 등장하지 않지만, 그 이후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곳이 바로 '영월 장릉'이다. 청령포가 유배의 시작이라면, 장릉은 비극의 끝이자 뒤늦은 복권과 안식이 이뤄진 공간이다.

영월 장릉은 단종의 비극과 복권의 이야기를 담은 곳이다./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금지된 장례…엄흥도의 결단이 영월 장릉을 만들었다”
단종은 문종의 아들로 세종 23년(1441년)에 태어나 1452년, 12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하지만 1453년 10월 숙부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으로 권력을 장악하면서 결국 왕위를 내어주고 형식적인 상왕으로 물러나게 된다.

1456년 6월에 성삼문·박팽년 등 사육신의 복위 시도가 발각되자 단종은 이듬해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 청령포로 유배된다. 이후 홍수 위험으로 관풍헌으로 거처를 옮겼고, 1457년 금성대군의 복위 시도까지 실패로 돌아가면서 ‘서인’으로 신분이 낮아진다. 같은 해 10월 24일 단종은 사약을 받고 17세의 짧은 생을 마감한다.

이때 세조는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엄명을 내려 장례조차 허락하지 않았고, 단종은 강물에 버려지는 비극적인 상황에 놓였다.

그러나 영월 호장 엄흥도가 목숨을 걸고 시신을 거두어 몰래 장례를 치렀다. 이곳이 바로 장릉이다. 이후 1698년 숙종 때 단종은 왕으로 복위되고 능호도 왕릉 ‘장릉’으로 격상되고,  2011년 7월 28일 정부 고시를 통해 명칭이 ‘영월 장릉’으로 변경 된다.

조선 단종(1441~1457)은 어린 나이에 즉위했으나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으로 왕위를 잃고 영월 청령포로 유배됐다. 이후 사약으로 생을 마친 뒤 시신은 강물에 버려졌으나, 호장 엄흥도가 거두어 장례를 치렀고 이곳이 장릉이다. 단종은 숙종 때 복위돼 왕릉으로 격상된다./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서울 밖 유일한 왕릉…비극과 복권이 공존하는 공간”
영월 장릉은 단순한 왕릉을 넘어 조선 왕조의 충절과 역사를 함께 품은 공간으로 그 의미를 더한다.

문화해설사는 “조선 왕릉은 대부분 서울·경기 지역에 있지만, 장릉은 강원도 영월에 자리한 유일한 왕릉으로 왕과 신하가 함께 모셔져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한다. 이어서 "충신 268인의 위패를 모신 ‘장판옥’과 엄흥도의 ‘정려각’도 있다"고 말한다.

장릉 능역은 울창한 소나무 숲과 완만한 능선에 둘러싸여 있다. 또한 장릉은 홍살문을 지나 정자각과 능침으로 이어지는 배치는 자연 지형을 살린 구조로, 화려함보다는 차분하고 절제된 분위기다.

특히 능을 감싸고 선 소나무들이 단종을 향해 고개를 숙인 듯 기울어 있어, 방문객들 사이에서는 “나무들까지 예를 올리는 것 같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사적 제196호로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영월 장릉은 조선 왕조의 충절과 역사를 품은 공간으로, 서울·경기 밖에 위치한 유일한 왕릉이다. 단종과 함께 충신들이 모셔진 곳으로, 268인의 위패를 모신 장판옥과 엄흥도의 정려각이 함께 자리해 그 의미를 더한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천만 영화가 다시 깨운 장릉…추모의 공간으로”
영화 왕사남의 여운을 따라 청령포를 찾은 관광객들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영월 장릉으로 이어진다. 유배의 비극을 간직한 청령포에서 시작된 여정은 단종의 안식처인 장릉에 닿으며 하나의 역사 서사가 완성되는 셈이다.

청령포에서 약 2km 거리에 위치한 장릉은 조선 제6대 왕 단종의 능으로, 그의 짧고 비극적인 생애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유배와 죽음, 사후 복권으로 이어지는 단종의 삶은 두 공간을 잇는 동선에서 더 또렷해진다.


능역에는 중장년층 방문객의 발길이 많다.  “가엽다”, “안타깝다”는 낮은 탄식이 오가고, 일부는 능침 앞에 멈춰 고개를 숙이며 단종의 비극에 예를 표한다.

장릉 입구에 자리한 단종 역사관은 단종의 생애를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전시장으로, 청령포와 장릉을 잇는 가교 역활을 한다./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장릉 밖에 자리한 민충사는 단종의 죽음 뒤 낙화암에서 투신한 시녀 6인의 충절을 기리는 사당이다. 영조때 사당을 세우고 ‘민충사’라 사액했으며, 매년 음력 10월 24일 제향을 올린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미디어펜=김상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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