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동하 기자] 미국 정부가 중국 최대 배터리·전기차 기업인 BYD를 군사적 제재 명단에 올리며 기술 안보 장벽을 한층 높인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전기차 수요 둔화(캐즘)와 중국 진영의 리튬인산철(LFP) 저가 공세로 어려움을 겪던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입장에서는 미국 시장 내 역학 관계 변화를 모색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전망된다.
LG에너지솔루션 전력망용 ESS 배터리 컨테이너 제품 ./사진=LG에너지솔루션
10일 업계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중국 BYD와 알리바바, 바이두 등 20여 개 기업을 '중국군 지원 기업' 명단에 추가하고 정부 직접 계약 대상에서 배제했다. 이는 미국 중심의 첨단 산업 공급망에서 중국계 배터리의 영향력을 지속 차단하겠다는 규제 의지로 해석된다. 이로 인해 미국 내 공공 인프라 사업 및 보조금을 받는 민간 영역까지 중국산 배터리 배제 압박이 확산될 여지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미국 정부의 보호무역주의 궤도는 국내 배터리 업계에 일정 부분 보호막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동안 BYD 등 중국 배터리 업체들은 원가 경쟁력을 앞세워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 점유율을 높여왔다. 하지만 이번 제재로 안보 프레임에 묶이면서 K-배터리가 북미 시장의 공급자 지위를 방어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 것을 관측된다.
◆ 확장 대신 '속도 조절'…북미 거점 ESS 라인 전환 가속
국내 배터리 업계는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를 돌파하기 위해 외형 확장 대신 현지 당국 및 파트너사들과 협력하며 투자 속도를 조절하는 모습이다. 동시에 AI 데이터센터 및 신재생에너지 인프라 확충으로 급증하는 북미 ESS 수요를 겨냥해 기존 라인을 ESS용으로 개조하며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북미 지역에 총 5개의 ESS 생산 거점을 확보하며 시장 주도권 선점에 나섰다. GM과의 합작법인 얼티엄셀즈 테네시 공장은 기존 전기차 배터리 라인 일부를 ESS용 LFP 라인으로 전환하고 양산에 돌입했다. 또한 캐나다 넥스트스타 에너지 합작공장을 단독공장으로 전환하는 등 전기차와 ESS를 아우르는 복합 제조 거점 운영을 통해 제조 유연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삼성SDI도 수익성 방어를 위해 현지 합작공장의 유연한 생산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인디애나주에 위치한 스텔란티스 합작공장(SPE)의 경우 가동 중인 1공장과 조율 중인 2공장의 전기차용 라인 일부를 ESS용으로 전환하며 수요 둔화 타개책을 모색하고 있다. 또한 GM 합작공장은 완공 및 양산 목표 기한을 2027년으로 유지하되 현재 건설을 일시 중단하며 미국의 정책 변화와 경제 상황에 맞춰 투자 속도를 조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합작 체제 종료 및 단독 법인화…재무 구조 개선 셈법
단순 라인 전환을 넘어 기존 합작 체제를 단독 법인으로 재편하며 고정비 부담을 덜어내려는 움직임도 포착된다. SK온은 포드와의 배터리 합작법인 블루오벌SK의 구조 재편을 통해 믹구 테네시 공장을 단독 법인인 'SK온 테네시'로 전한하며 홀로서기에 나섰다. 합작 체제 종결을 통해 생산 거점 운영 자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악화된 재무 구조를 개선하려는 셈법으로 해석된다.
이번 구조 재편으로 SK온은 약 5조4000억 원 규모의 차입금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고금리 환경 속에서 연간 약 2700억 원의 이자 비용을 절감하고 켄터키 공장과 관련해 발생하던 연간 약 3300억 원 규모의 감가상각비 부담도 덜어낼 전망이다. 재무적 완충 장치를 선제적으로 마련해 다가올 시장 회복기에 유연하게 대응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국내 배터리 3사가 미국 현지 생산 거점을 ESS 전초기지 및 단독 거점으로 재편하는 것은 시장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한 위험 분산 전략으로 평가된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미 국방부의 이번 제재 조치가 북미 전력망 등 대형 프로젝트에서 중국산 LFP 배터리를 배제할 안보적 명분을 제공한 것은 사실"이라며 "현재 국내 배터리 업계가 진행 중인 투자 속도 조절과 ESS 라인 전환이 안착한다면 이번 제재 국면은 시장 반등 시기에 가격 결정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지렛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김동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