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류준현 기자] 은행권이 정부의 생산적금융 요구에 따라 기업대출 공급을 늘리는 가운데, 대출 증가분의 대부분이 대기업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대출이 약 10% 이상 증가할 때 중소기업과 개인사업자 대출은 0~1%대 증가율에 그쳐 양극화를 보인 것이다. 3고(고금리·고유가·고물가) 현상이 지속되는 가운데, 중소기업과 개인사업자의 연체율 상승 압력이 커지면서 은행권이 대기업에 대출을 내어주는 식으로 생산적금융 숙제를 해결하는 모습이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기업대출 잔액은 지난 9일 기준 870조 1686억원으로 지난해 말 대비 약 3.1%(25조 4432억원) 증가했다. 기업대출은 기업 규모를 막론하고 일제히 증가세를 보였는데, 증가세에서 극심한 차이를 보였다.
은행권이 정부의 생산적금융 요구에 따라 기업대출 공급을 늘리는 가운데, 대출 증가분의 대부분이 대기업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대출이 약 10% 이상 증가할 때 중소기업과 개인사업자 대출은 0~1%대 증가율에 그쳐 양극화를 보인 것이다. 3고(고금리·고유가·고물가) 현상이 지속되는 가운데, 중소기업과 개인사업자의 연체율 상승 압력이 커지면서 은행권이 대기업에 대출을 내어주는 식으로 생산적금융 숙제를 해결하는 모습이다./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구체적으로 대기업대출은 187조 8205억원을 기록해 지난해 말 대비 약 10.3%(17조 5213억원) 증가했다. 이는 전체 기업대출 증가분 25조 4432억원의 약 3분의 2에 달하는 규모인데, 같은 기간 가계대출 증가분 약 8조 2998억원보다 3배 이상 높은 수치다.
반면 중소기업대출은 같은 기간 약 1.99%(6조 9794억원), 개인사업자대출은 약 0.29%(9425억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 같은 흐름은 대출 점유율에서도 두드러지고 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예금은행의 올해 1분기 대기업대출은 전체 대출액의 23.2%로 지난해 말 대비 약 0.5%p 상승했다. 지난 5개년 1분기 실적 중 역대 최고치다. 반면 중기대출 점유율은 거듭 하락해 올해 1분기 약 0.5%p 하락한 76.8%에 그쳤다.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총량 관리와 생산적금융 확대 요구에 따라 은행들이 기업금융을 확대했지만, 실상 기업규모에 따라 대출을 선별한 셈이다. 특히 고금리 여파로 영세 중소기업과 개인사업자를 중심으로 대출 연체율 상승 우려가 커지면서, 은행 홀로 부실을 떠안아야 하는 까닭이다. 이에 은행들도 중소기업·개인사업자 대신 대기업에 집중하는 식으로 건전성 관리에 나선 모습이다.
실제 대기업대출과 중소기업·개인사업자대출 연체율은 반비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4월 말 국내은행의 원화대출 중 기업대출 연체율(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기준)은 0.74%로 전월 말 0.68% 대비 약 0.06%포인트(p) 상승했다. 특히 중기대출 연체율은 0.90%로 전달 0.81% 대비 약 0.09%p 악화했다. 구체적으로 중소법인 연체율이 0.98%로 전월 말 0.88% 대비 약 0.10%p 악화했고, 개인사업자대출 연체율도 0.78%로 전달 0.71% 대비 약 0.07%p 상승했다. 반면 대기업대출은 0.22%로 전달과 대동소이한 모습을 보였다.
이처럼 은행들이 고금리 위기 속 대기업대출을 늘리며 생산적금융 숙제를 해결하는 가운데, 정부의 생산적금융 요구는 한층 강조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전날 청와대 영빈관에서 주요 기관 업무보고 모두발언에서 "우리 사회의 자산 배분에 있어 부동산의 비중이 여전히 너무 크다"며 "가용 자원이 부동산에 묶이니 자원 배분에서도 불합리한 결과가 발생한다. 생산적 금융으로의 전환이 중요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한편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이날 기준금리를 2.50%에서 2.75%로 0.25%p 인상했다. 지난 2023년 1월 이후 3년 6개월만인데, 기업들의 대출 원리금 상환 부담은 한층 가중될 전망이다. 특히 자영업자 등 개인사업자가 금리인상에 따른 대표 취약 부문으로 꼽힌다.
한국은행이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자영업자 대출금리가 0.25%p 오를 경우 연간 이자부담은 약 1조 8000억원 증가할 것으로 추산된다. 대출자 1인당 평균 이자부담은 약 56만원 늘어나고, 다중채무자의 경우 1인당 평균 65만원(연간 이자부담 1조 1000억원)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급격한 환율 상승을 계기로 RWA 관리 부담이 커진 가운데 은행들은 더 많은 자본을 축적해 CET1 비율을 지켜야 하는 실정"이라며 "은행들로선 대출 여력이 줄었는데 금리인상까지 겹친 터라, 건전성 관리 차원에서 중소기업대출을 확대하는 데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미디어펜=류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