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소희 기자] 취임 1주년을 맞은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이 향후 공정거래 정책의 초점을 민생과 직결된 불공정행위에 맞추고, 시장구조와 제도 자체를 개선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오는 10월 1일 ‘중점조사기획단’을 출범시키고 공정위의 2차 조직개편을 공식화해 사건 대응과 경제분석 역량을 동시에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주 위원장은 21일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1년간의 공정위 업무를 돌아보며 “하반기에는 민생 밀접 분야 집중감시와 제도 개선 완수에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년간 공정위는 설탕·돼지고기·밀가루·전분당 등 국민 생활과 밀접한 분야의 담합에 대해 제재를 강화했었다. 그 중에서도 밀가루와 전분당 담합 사건에서는 약 20조 원 규모의 소비자 식품시장과 관련된 가격 문제를 다루면서 경쟁가격으로의 재조정을 명령하는 등 제재 이후 시장가격의 정상화까지 염두에 둔 조치를 취했다.
취임 1주년을 맞은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이 향후 공정거래 정책의 초점을 민생과 직결된 불공정행위에 맞추겠다고 밝혔다./사진=공정위
주 위원장은 이 같은 성과에 대해 “국민의 먹거리와 생활물가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분야를 엄정하게 감시해 민생경제 안정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다만 앞으로는 단순히 법 위반을 적발하고 제재하는 수준을 넘어 불공정행위가 반복되기 어려운 시장환경을 만드는 데 정책의 무게중심을 두겠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두 가지 핵심 과제로 “경제적 강자가 우월한 지위와 시장력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시장의 규율과 기강을 바로잡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구조적 불균형에 놓여있는 경제적 약자의 협상력을 보강하는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10월 ‘중점조사기획단’ 출범…민생 불공정행위 신속 대응
이에 공정위가 하반기 정책의 핵심 수단으로 제시한 것은 ‘중점조사기획단’이다. 오는 10월 1일 출범하는 중점조사기획단은 민생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신속한 대응이 필요한 불공정행위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는 역할을 맡는다.
주 위원장은 중점조사기획단에 대해 단순히 과거 조사조직을 되살리는 차원이 아니라 “국민 생활에 큰 피해를 주는 중대한 불공정행위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한 조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원재료 가격과 연관된 밀가루·설탕 등의 담합처럼 개별 기업이나 특정 시장을 넘어 경제 전반과 소비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건을 주요 대상으로 삼을 방침이다.
복잡한 사건에 대한 대응 방식도 달라진다. 시장지배력 남용과 인공지능(AI), 표시·광고 문제 등 여러 법률과 시장 쟁점이 동시에 얽힌 사건의 경우 기존에는 여러 부서가 나눠 조사해야 했지만, 중점조사기획단을 통해 하나의 조직에서 종합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주 위원장은 “장기간에 걸쳐 분석하고 시장을 모니터링하면서 문제를 포착해야 하는 사건도 있다”며 대기업집단의 장기간에 걸친 문제나 시장지배력 남용 등 복잡한 사건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조사·분석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2차 조직개편 공식 출범…공정위 사상 첫 경제분석국 신설
공정위의 2차 조직개편도 10월 공식 출범한다. 핵심은 공정위 사상 처음으로 국 단위의 ‘경제분석국’을 신설하는 것이다.
경제분석국은 37명 규모로 구성된다. 플랫폼 시장에서의 데이터 독점이나 알고리즘을 통한 자사우대 등 새로운 경쟁제한 행위를 분석하고, 위법성 판단뿐 아니라 과징금 산정과 시장효과 분석 등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맡는다.
주 위원장은 경제분석 역량 강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미국·영국·EU 경쟁당국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수준의 경제분석 역량을 갖추겠다”면서 “효과성 검증을 넘어 산업, 시장구조 전반의 경쟁 상태를 조망하고, 장기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세계적인 경쟁 정책 전문조직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취지의 구상을 제시했다.
특히 최근 경쟁법 집행에서 플랫폼과 데이터, 알고리즘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는 만큼 사건을 법률적으로 판단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시장에서 어떤 효과가 발생했는지까지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는 판단이다.
주 위원장은 밀가루·전분당 담합 사건 등을 거론하며 제재 이후 실제 시장가격이 담합 이전의 경쟁가격 수준으로 돌아가는지를 경제분석국이 지속적으로 점검하는 역할도 수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복 담합에는 ‘시장 퇴출’까지…제도 개선 본격화
공정위는 반복적인 담합을 근절하기 위한 제도 개선도 추진한다. 담합으로 얻는 이익보다 법 위반에 따른 비용이 더 커지도록 제재 체계를 손질하고, 상습·반복적인 담합 사업자에 대해서는 등록이나 인허가 취소·정지 등의 방안을 관계부처와 논의한다.
현재 소방시설공사, 폐기물·환경, 여객운송 등 약 20개 분야에서 관련 논의가 진행되고 있으며, 협의를 거쳐 입법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주 위원장은 “불공정행위로 얻는 이익보다 위반에 따른 비용이 더 커지도록 게임의 룰을 바꿔야 한다”는 취지로 제도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가맹 분야에서는 가맹점주의 협상력을 높이는 방안이 추진된다. 가맹점사업자단체 등록요건을 완화해 소규모 가맹본부에서도 가맹점주들이 단체를 구성해 협의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공정위에 따르면 전체 가맹본부의 60% 이상이 소규모 사업자이며, 가맹점 30개 이하의 소규모 가맹본부가 전체 가맹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12%다. 이에 따라 다수 가맹점주에게 협상 수단을 제공하면서도 소규모 가맹본부에 대한 부담은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설계한다는 구상이다.
방산시장 경쟁 촉진…AI 경쟁제한행위도 집중 감시
방위산업 분야의 경쟁 촉진도 향후 과제 가운데 하나다. 공정위는 일부 방산물자의 지정 필요성을 재검토하고 신규 사업자의 시장 진입을 촉진하는 방안을 관계부처와 협의할 계획이다.
주 위원장은 방산 분야에서도 “역량 있는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의 진입이 활발해져 연구개발과 혁신이 촉진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AI 분야 역시 공정위의 새로운 경쟁법 집행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기존 플랫폼 사업자의 시장지배력이 AI 분야로 이전되는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
주 위원장은 최근 경쟁법 관련 국제회의에서 AI 경쟁 문제가 중요한 의제로 다뤄졌다고 소개하면서, 플랫폼 사업자가 기존의 광범위한 이용자 기반을 활용해 자사 AI 서비스 이용을 사실상 강제하는 행위 등에 대해서도 면밀히 살펴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AI 산업의 혁신을 저해하지 않으면서도 특정 사업자에게 경쟁력이 과도하게 집중되는 것을 막는 균형 잡힌 경쟁정책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입장도 내놨다.
국채 담합·네이버-두나무·정유사 사건도 속도
현재 진행 중인 주요 사건들도 향후 공정위의 집행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사례로 꼽힌다.
국채 금리 담합 사건은 전원회의 심의를 세 차례 진행했으며 조만간 결론이 나올 예정이다. 네이버와 두나무의 기업결합 심사는 검색·간편결제와 가상자산 등 플랫폼 시장에서의 경쟁관계를 비롯해 약 10개 관련 시장을 대상으로 검토가 이뤄지고 있다. 데이터에 기반한 복잡한 경쟁제한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만큼 올해 안에 심의를 마친다는 목표다.
정유사들의 석유제품 가격 담합 사건 역시 10월까지 조사를 마무리하고 심의 절차에 들어갈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최근 기업들의 집행정지 신청과 이에 대해 법원이 인용하는 경우가 좀 많아지는 것 같다는 지적에 주 위원장은 “경제적 약자의 최후 보루가 완전히 무력화되고 있는 이 상황에 대해 굉장히 엄중하게 생각하고 있다”면서 “수십만의 소상공인들의 권익이 대규모유통업법의 집행에 달려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취임 1년을 맞은 주 위원장이 제시한 향후 공정위의 방향은 ‘제재 강화’만으로 요약되지는 않는다. 민생과 직결된 분야를 신속하게 조사하는 중점조사기획단, 플랫폼·AI 등 새로운 경쟁 이슈를 분석하는 경제분석국, 반복 담합을 차단하기 위한 제도개선 등을 통해 법 집행의 방식 자체를 바꾸겠다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주 위원장은 “국민 생활과 시장의 변화를 면밀히 살피면서 공정한 경쟁질서를 확립하는 것이 공정위의 역할”이라는 취지로 향후 정책 추진 의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