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류준현 기자]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금융지주 자회사 최고경영자(CEO) 선임절차와 관련해 "특정계파나 친소관계에 매몰됨 없이 능력에 기반한 적임자를 선별할 수 있도록 힘써달라"고 특별히 주문하고 나섰다. 이 원장은 지난 15일 본원 임원회의에서도 이 같은 발언을 내놓은 바 있는데, 지주회사 자회사 대표이사 후보추천 위원회(자추위)가 CEO 선임에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라는 당부다.
23일 금감원에 따르면 이 원장은 이날 오전 금감원 본원에서 은행지주회장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 원장은 간담회에서 "올해 하반기 8개 은행지주그룹에서 은행장을 포함해 70여개 자회사의 CEO 선임 절차가 진행될 예정"이라며 "무엇보다 먼저,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자회사 CEO가 선임될 수 있도록 힘써달라"고 주문했다.
왼쪽부터 정은정 금융감독원 은행감독국장, 황병우 iM금융그룹 회장, 이찬우 NH농협금융지주 회장,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 양종희 KB금융지주 회장, 이찬진 금융감독원장, 조용병 은행연합회장,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 빈대인 BNK 금융지주 회장, 김기홍 JB금융지주 회장, 곽범준 금융감독원 은행 부원장보./사진=금융감독원 제공
그러면서 이 원장은 중국 춘추시대 진(晉)나라 평공의 책사였던 '기황양'을 예로 들어, 금융권이 CEO 인사를 능력 중심으로 선정할 것을 요청했다. 이 원장은 "기황양은 임금에게 인재를 천거할 때 밖으로는 원수를 피하지 않고, 안으로는 아들도 피하지 않는 '대공무사(大公無私)'의 자세로 그 자리의 적임자를 추천했다고 전해진다"며 "사사로움 없이 공정하게 오직 그 자리에 합당한 자격과 능력을 중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금융회사의 건전성과 내부통제, 소비자보호까지 책임질 CEO의 선임 절차도 특정 계파나 친소관계에 매몰되지 않고 투명하고 공정하게 능력에 기반한 적임자를 선별하는 절차로 운영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황양은 책사로서 공적인 일 처리에 사사로운 감정을 배제하고, 오직 인재의 덕과 재능을 기준으로 사람을 추천한 인물로 꼽힌다. 특히 인재를 추천할 때 원수지간이거나 자신의 아들이라는 개인적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오직 '맡을 직책에 가장 적합한지'를 기준으로 삼았다. 자회사 CEO 선임을 앞둔 금융권에 기황양의 투명한 인사 기준을 예로 들어, 직접적인 주의를 당부한 셈이다.
특히 이 원장은 "CEO가 지녀야 할 구체적인 자격 요건과 평가 단계별 최소한의 검증기간 등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절차를 아직까지 마련하지 못한 지주사는 선임 절차를 개시하기 전에 미흡한 사항을 조속히 보완하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지주회사 자추위에 대해서는 "CEO 후보 추천 및 선정 과정에서 '금융사지배구조법' 제17조의 취지에 따라 자회사의 임추위(임원 후보추천 위원회)가 실질적인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임추위가 본질적으로 해야 할 CEO 상시후보군 등의 정보를 제공하고, CEO 후보 평가시 임추위원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도록 보장하라는 당부다.
이 같은 당부는 지난 15일 열린 본원 임원회의에서도 제기된 바 있다. 당시 이 원장은 "대부분의 지주회사 자추위가 수립한 자회사 CEO 승계절차가 미흡하고, 자회사 임추위의 역할도 제한적인 것으로 파악된다"고 언급했다.
이 원장은 자추위의 CEO 승계절차에 대해 △CEO 자격요건 구체화 미흡(추상적 정의만 제시) △후보 압축 단계별 최소 검증기간 미운영 △형식적인 상시후보군 관리 △불투명한 후보군 압축·검증 절차 등을 문제로 지적했다. 이에 추후 CEO 승계절차에 대한 점검을 강화할 것임을 시사했다.
이 원장이 이날까지 거듭 강한 메시지를 내놓은 건 지주 회장이 계열사 인사에 과도하게 관여하거나, 장기 집권을 위한 '참호구축(경영진이 자리를 보전하는 행위)'을 막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업계에 따르면 5대 금융지주에서 연말 임기가 만료되는 계열사 CEO는 54명에 달한다. 특히 5대 은행장이 모두 연내 임기 만료를 앞두고, 연임과 교체의 시험대에 놓여 있다.
금융지주들도 이 원장의 발언을 의식해 CEO 승계 절차를 손질 중이다. 당장 BNK금융과 신한금융은 지난 15일 이후 각각 은행 임추위에 CEO 후보 추천권을 부여하는 등 임추위 역할을 확대했다. KB금융도 관련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은 이미 임추위에 권한을 부여한 상태다.
"지자체 금고 입찰, 이해타산 관점 벗어나야"
이 원장은 은행권의 지자체 금고 입찰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점에 대해서도 메시지를 남겼다.
그는 "지자체 금고 운영은 거액의 지자체 자금을 장기간 안정적으로 유치할 수 있고, 해당 지역 내 주민, 기업과 연계된 다양한 부수적인 이익까지 기대할 수 있다"면서도 "은행 간 과당경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상대적으로 자본력의 우위가 있는 은행이 협력사업비 경쟁을 통해 최종 낙찰자로 선정되는 모습은 마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벌어지는 불공정한 경쟁으로 보일 수 있다"며 "지자체 금고 운영을 이해타산의 관점으로만 접근하기보다 '지역 내 자금 순환'과 '지방 균형 발전'이라는 국가적 과제도 함께 고려해 주시기를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 원장은 금융사고 예방을 위한 내부통제 강화 메시지도 내놨다.
이 원장은 "최근 횡령·배임·사기 등 금융사고 건수와 금액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라며 "내부 직원에 의한 사고뿐만 아니라 외부인의 사기와 본점의 내부통제가 닿기 어려운 해외 점포를 중심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금융당국과 금융권은 금융사고 예방의 일환으로 2023년 내부통제 혁신방안 마련, 2024년 여신 프로세스 TF, 2025년 책무구조도 도입 등 내부통제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은행권 금융사고는 2023년 697억원(33건)에서 올해 1~7월 1708억원(47건)으로 건수와 규모 모두 크게 증가했다. 특히 최근의 사고는 단순 은행 내부 임직원의 문제에서 비롯되지 않고, △소득·재직증명서 위변조 △담보평가액 부풀리기 △허위 분양계약서 이용 등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이에 이 원장은 "현장에서 내부통제 강화를 위한 충분한 인력과 자원이 투입되지 않는다면 그 어떠한 제도개선도 큰 의미를 갖지는 못할 것"이라며 "내부통제가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조직문화와 책임 있는 실행이 뒷받침되도록 각별히 신경써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금융권 "투명·공정한 CEO 선임절차 공감"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은행지주들은 당국의 지적을 공감하며, 적극 협조하겠다는 의견을 내놨다.
조용병 은행연합회장은 "금융회사의 건전성과 내부통제, 소비자보호까지 책임지는 CEO 선임 절차는 투명하고 공정하게 진행돼야 한다"며 "은행지주가 금융산업에 미치는 위상에 걸맞게 지방 균형 발전, 지배구조 개선 및 내부통제 강화 등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은행지주회장들은 공정하고, 투명한 원칙에 기반해 시장과 국민의 신뢰를 두텁게 다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자회사 CEO 선임 절차에 부족한 부분이나 개선할 점은 없는지 다시 한번 꼼꼼히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내부통제 강화의 일환으로 충분한 인력과 자원을 배치해 금융사고를 사전에 예방하도록 노력할 것임을 시사했다.
[미디어펜=류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