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조우현 기자]‘초격차’라는 단어로 삼성전자의 반도체 성공 방정식을 정립했던 권오현 전 삼성전자 회장이 국내 최고 이공계 특성화 대학인 KAIST의 신임 이사장으로 선임됐다.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되고 의대 쏠림 현상으로 이공계 인재 가뭄이 심화되는 시점에, 민간의 대표적 경영 원로가 국가 과학기술 교육의 핵심 컨트롤타워에 등판하면서 학계에 ‘기업가정신’을 심을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린다.
권오현 카이스트 신임 이사장. /사진=삼성전자 제공
◆ 반도체 신화 주역의 귀환… 학계에 ‘실전 리더십’ 수혈
권 신임 이사장은 1977년 KAIST 전기공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동문이다.
1985년 미국 삼성반도체연구소 연구원으로 합류한 뒤 세계 최초 64메가 D램 개발을 진두지휘했고, 메모리는 물론 시스템LSI와 디스플레이 사업까지 총괄하며 삼성을 글로벌 반도체 1위로 끌어올린 ‘기술 경영’의 상징적 인물이다.
통상 관료나 학계 원로가 맡아오던 국책 연구중심 대학 이사장에 글로벌 생존 경쟁의 정점을 찍은 테크 CEO가 등판한 것은 그 자체로 상징성이 크다.
최근 반도체 기업들이 파격적인 연봉과 처우를 내걸고 있지만, 대기업 초봉 몇 푼 올려주는 수준으로는 뿌리 깊은 ‘의대 쏠림’과 ‘이공계 인재 절벽’을 막을 수 없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결과다.
땜질식 처우 개선을 넘어 상아탑의 묵은 관성을 깨고 국가 핵심 두뇌를 키워낼 ‘실전형 혁신’을 이끌 적임자로 그가 다시 호출된 이유다.
◆ ‘의대 쏠림’과 ‘R&D 공동화’… 절박한 현실이 원로 불렀다
산업계와 교육계에서는 이번 선임 배경에 ‘이공계 인재 절벽’에 대한 위기감이 깔려 있다고 입을 모은다.
미국과 중국이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쏟아부으며 기술 장벽을 높이고 있는 반면, 국내에서는 우수 인재들의 의대 쏠림과 이공계 기피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여기에 R&D 예산 재편 과정에서 불거진 연구 현장의 사기 저하, 핵심 연구 인력의 해외 유출 우려까지 겹치면서 국가 기술 경쟁력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권 전 회장은 과거 저서와 강연을 통해 “인재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클 수 있는 판을 깔아주는 것”, “연구를 위한 연구가 아닌 시장과 산업을 바꾸는 혁신”을 누차 강조해 왔다.
기존 학계의 문법으로는 풀기 어려웠던 인재 육성의 난제를 타개하기 위해 실전 감각을 갖춘 구원투수를 호출한 셈이다.
◆ 논문용 연구 벗어나 ‘산업 직결형 R&D’로… ‘초격차’ 이식될까
권 이사장 체제의 KAIST에 쏠리는 핵심 기대는 ‘산학 협력의 근본적 패러다임 전환’이다. 그동안 국내 대학의 연구가 피인용 지수나 논문 편수 등 정량적 학술 평가에 매몰돼 정작 산업 현장의 요구와 겉돌았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권 이사장의 등장은 대학 연구 과제가 곧바로 글로벌 테크 기업의 상용화 기술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고, 뛰어난 기술을 가진 연구자들에게 파격적인 보상과 창업 기회를 열어주는 ‘기업가적 대학’으로의 체질 개선에 탄력을 붙일 것으로 관측된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와 AI 등 첨단 산업의 승패는 결국 연구실의 아이디어가 얼마나 빠르게 산업 현장으로 이전되느냐에 달렸다”며 “삼성의 초격차 DNA를 만들어낸 권 전 회장이 상아탑의 관료주의를 깨고 현장 중심의 혁신 인재를 길러내는 구심점 역할을 해줄지 기대가 모인다”고 말했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