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소희 기자] 해상풍력 산업 확대의 최대 변수로 ‘전력망’이 부상하고 있다. 발전단지를 조성하더라도 생산된 전력을 육지로 실어 나를 해저케이블과 공동접속설비가 제때 구축되지 않으면 발전 자체가 제한될 수 있어서다. 여러 사업자가 각자 전력망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사업이 진행될 경우 접속설비가 개별적으로 설치돼 전력망 투자 효율성이 떨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국환경연구원(KEI)은 최근 발간한 ‘해상전력망 공동접속설비 및 양육점 설정방안’을 통해 해상풍력 발전단지와 해저케이블, 공동접속설비, 양육점을 하나의 전력망 계획체계에서 연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특히 해상풍력 입지계획 초기부터 송전망사업자를 참여시켜 발전과 송전망의 구축 시기와 규모를 맞춰야 한다는 분석이다.
한국환경연구원은 해상풍력 발전단지와 해저케이블, 공동접속설비, 양육점을 하나의 전력망 계획체계에서 연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사진은 신안우이 해상풍력 조감도./자료사진=중부발전
해상풍력 확대에서 전력망이 중요한 이유는 발전과 송전시설의 준공 시점이 맞지 않을 경우 발전제약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저케이블은 해상풍력 발전단지에서 생산한 전력을 육상 전력계통으로 보내는 핵심 기반시설이다. 하지만 케이블 구축이 발전 시기를 따라가지 못하면 발전사업자가 설비를 갖추고도 생산전력을 충분히 송전하지 못할 수 있다.
해저케이블은 일반적인 발전설비와 달리 장거리에 걸쳐 여러 해역과 지방자치단체를 통과한다. 어업활동과 해양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있어 사업 과정에서 어민·지역주민·환경단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조정이 필요하다.
전력망 구축이 개별사업 단위로 이뤄질 경우에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민간 해상풍력 사업자가 계통접속을 위해 공동접속설비와 양육점 위치를 각각 선정하면 사업자 간 조율이 이뤄지지 않아 설비가 따로 설치될 수 있다. 해상풍력 확대가 오히려 전력망의 효율적인 연계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국내에서도 해상풍력과 전력망 확충을 위한 법적 기반은 마련됐다. 2025년 ‘해상풍력 보급 촉진 및 산업 육성에 관한 특별법’과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관련 제도 정비가 시작됐다.
하지만 KEI는 현행 제도가 여전히 해상풍력 발전설비 자체에 상대적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진단했다.
해상풍력법은 입지정보망 구축, 예비지구 지정, 기본설계 등의 절차를 규정하고 있지만 공동접속설비와 양육점에 대한 논의가 충분하지 않고 예비지구 단계의 구체적인 계통계획도 미흡하다는 것이다.
국가기간전력망법 역시 전력망 확충 기본계획을 수립하도록 하고 있지만 해저케이블과 해상풍력, 공동접속설비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해 발전시설에 앞서 전력망을 구축하는 ‘선(先)계통-후(後)발전’ 체계를 만드는 데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해외 주요국은 해상풍력 발전단지와 전력망을 별개의 시설로 보지 않고 초기 계획 단계부터 통합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독일은 부지개발계획과 전력망개발계획을 연계해 발전단지와 해저케이블의 위치 및 시운전 시기를 함께 계획하고, 영국은 ‘전체적 네트워크 설계(HND)’를 통해 해상풍력 발전소와 육상 전력망을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종합적으로 설계한다.
일본 역시 최근 중앙 주도의 계통확보체계를 도입하면서 예비지구 이전 단계부터 계통연계 가능성을 검토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바꾸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해상풍력 계획 초기 단계에서 송전망사업자의 직접 참여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게 KEI의 지적이다.
KEI가 독일·영국·일본과 국내 제도를 비교한 결과, 국내는 예비지구와 실시계획 단계에서 송전망사업자의 직접 참여가 법령상 충분히 명시돼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본설계 단계에서도 송전망사업자가 제시한 전력계통 연계방안을 바탕으로 계획을 조율하는 체계가 미흡한 것으로 분석됐다.
“입지정보망부터 송전망 사업자 참여해야”
KEI가 제시한 해법은 명확하다. 해상풍력 발전사업이 구체화된 이후 전력망을 붙이는 방식에서 벗어나 입지 선정 단계부터 발전과 송전을 동시에 계획하는 것이다.
우선 입지정보망 단계에서 송전망사업자가 전력망 용량과 가능한 양육점 정보를 제공하도록 한다. 예비지구 단계에서는 공동접속설비의 시작점인 변전소 위치를 함께 검토하고, 기본설계 단계에서는 양육점 대안을 마련한다.
발전지구 단계에서는 전송용량과 준공 시기를 조율하고, 실시계획 단계에서는 발전사업자와 송전망사업자가 시운전 일정을 맞추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발전사업자가 개별적으로 계통접속 방안을 찾는 데 따른 중복 설비 문제를 줄이고 발전단지와 송전망의 공간적·시간적 정합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전력망의 또 다른 쟁점은 발전설비와 송전설비의 준공 시점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다.
KEI는 독일 사례를 제시했다. 독일은 발전사업자 측의 지연에 대해 위약금 제도를 운영하고 송전망사업자 측의 계통연계 지연에 대해서는 보상책임을 두고 있다.
발전·송전 준공 시기 어긋나면 ‘비용’ 문제로
국내에서도 발전단지와 송전망의 구축 시기를 제도적으로 조율할 필요가 있다는 게 KEI의 제안이다. 아울러 송전망사업자가 발전단지보다 먼저 설비에 투자해야 하는 경우를 고려해 선투자 부담을 완화할 재원 제도도 함께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해상풍력 확대 과정에서 전력망을 단순한 부대시설이 아니라 발전사업의 사업성과 직결되는 핵심 인프라로 봐야 한다는 의미다.
전력망 입지를 둘러싼 환경 및 지역 갈등도 해상풍력 확대 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해저케이블은 여러 해역과 지방자치단체를 통과하는 장거리 시설이어서 어업활동과 해양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제 연구에서는 보성 지역의 변전소·송전선로 건설 갈등과 득량만 해저 고압케이블 설치 반대, 완도-제주 해저케이블을 둘러싼 지자체 간 경계 분쟁 사례 등이 제시됐다.
KEI는 이에 따라 예비지구 선정 이전부터 정부 주도의 환경성 검토를 강화하고 결과를 공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해양·연안 생태계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 관련 정보를 공개하고 주민 의견을 반영해 입지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주민과 어민의 참여 방식도 보완 대상이다. 현재 해상풍력법상 민관협의회에 어업인단체 대표와 주민대표 등이 참여하도록 돼 있지만 대표성 확보와 선정 절차가 구체적이지 않다는 문제제기다. KEI는 정부·지자체·전문가가 대안을 마련하고 이를 공론화 과정을 통해 주민과 어민이 검토·보완하는 단계별 거버넌스를 제안했다.
해상풍력 산업이 확대될수록 전력망의 중요성은 커질 전망이다. 발전단지의 규모를 키우는 것만으로는 생산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없기 때문이다.
KEI의 제안은 해상풍력 사업을 발전단지 조성, 전력망 연결이라는 순차적인 구조가 아니라 발전단지·공동접속설비·해저케이블·양육점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어 계획하는 구조로 바꾸자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발전과 송전을 별개로 추진할 경우 발전제약과 사업 지연 가능성이 커질 수 있는 만큼, 해상풍력 확대 정책에서도 전력망을 핵심 산업 인프라로 다루는 제도 정비가 요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