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조우현 기자]노조의 요구가 거세질 때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마음은 어떨지 궁금했다. 그러는 사이 서울 한남동 이 회장 자택 앞 인도에 자리 잡은 천막 농성장이 열흘을 넘겼다. 삼성전자 완제품(DX) 부문 중심의 '동행노조'가 반도체(DS) 부문과의 '공동교섭'과 회장과의 직접 담판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반도체는 AI 호황으로 특별성과급을 챙기는데, 부품값 급등으로 상대적 고전을 겪은 세트 부문은 자사주 600만 원 상당에 그친 것이 갈등의 시작이었다. 노태문 사장이 다음 달 전 직원 타운홀미팅 소집을 예고하며 수습에 나섰지만, 현장에 번진 박탈감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출근길마다 집 앞 텐트를 마주해야 하는 이 회장 역시 고심이 깊을 수밖에 없다. 올 초부터 불거진 성과급 시비가 결국 노노 갈등을 거쳐 오너 자택 앞 집회로 번져가는 광경을 보며, 총수로서 감내해야 할 부담과 고뇌의 무게는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사실 이 회장 역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삼성이 반세기 동안 글로벌 초일류를 지킬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을 말이다. 그간 삼성을 지탱해 온 보상 철학은 간명했다. "1등 인재에게는 경쟁사 어디도 넘볼 수 없는 최고의 대우를 해준다." 초격차를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인위적 통제가 아닌, 업계 최고 수준의 보상을 약속하는 '자발적 성과 계약'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다만 이 철학에는 전제가 있었다. '최고의 대우'는 저절로 주어지는 시혜나 복지가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 실력으로 증명해 낸 '성과'에 대한 대가라는 점이다. 보상은 집단의 정치력이 아니라 시장에서 창출한 가치에 의해 결정된다는 시장의 룰도 이와 다르지 않다. 반도체는 글로벌 시장에서 천문학적 이익을 냈기에 큰 보상을 받는 것이고, 완제품은 시장 환경 악화로 이익 체력이 떨어진 상태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6월 1일 오후 서울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2026년도 제36회 삼성호암상 시상식'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같은 삼성 식구니 비슷하게 나눠 달라"는 온정주의나 시위라는 정치력에 밀리는 순간, 삼성을 지탱해 온 '신상필벌'은 무너진다. 목소리를 높이면 성과급을 맞춰준다는 선례가 남는다면 치열하게 기술을 개발하고 이익을 내려는 임직원의 동기부여 시스템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시장의 룰이 그저 "실적이 안 나왔으니 참으라"는 것은 아니다. 시장경제의 본질은 강제가 아닌 자발적 계약이자, '미래 가치에 대한 합의'다. 삼성이 지켜온 '최고의 대우' 역시 눈앞의 현금에만 머물지 않았다. 내가 열심히 일군 조직의 성장이 곧 나의 미래 자산이 된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수많은 핵심 인재들이 고군분투할 수 있었다. 지금 당장은 원가 부담으로 영업이익이 주춤하더라도, DX 부문의 혁신으로 기업가치가 오를 때 그 결실을 임직원이 공유할 수 있는 정교한 보상 체계가 작동해야 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완제품 조직 3만여 명의 상처 입은 자존심과 사기 저하를 모른 척할 수 없기에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스마트폰과 TV·가전은 삼성이라는 브랜드 가치를 지켜온 든든한 사업이자 반도체의 소중한 시장이기 때문이다. 조직의 결속을 지켜내면서도 시장의 규율을 양보하지 않는 해법을 찾는 일은 그 어떤 경영 전략보다 풀기 어려운 일이다.
결국 질문은 감정에 기댄 평등주의 앞에서 삼성을 지탱해 온 성과주의를 지켜낼 수 있는가, 그리고 상처 입은 완제품 조직에 미래 기업가치를 나누는 주주로서 함께 도약할 수 있는 새로운 비전을 보여줄 수 있는가로 향한다.
누구보다 외롭고 무거울 결단이지만, 삼성이 위기를 뚫고 다시 전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결국 스스로 증명해 온 '시장의 룰' 위에 서는 것뿐이다. 신상필벌의 원칙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조직의 자존심과 미래를 지켜내는 정공법. 삼성을 아끼는 이들이 한남동 텐트 너머 이 회장의 고독한 침묵에 조용한 응원을 보내는 이유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