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승호 국민의힘 미디어대변인·전 신문방송편집인협회장
이재명 정권이 지난 21일 당정협의에서 농지 전수조사 보완책을 내놨다. 연내 특별법을 만들어 상속농지와 고령농의 휴경, 매수자 없는 방치 농지, 맹지·경사지를 농지은행에 임대위탁 맡기면 처분을 유예하겠다고 한다.
지난 5월 조사 착수 넉 달 만의 유턴이다. 국민의 반발과 야당의 거센 문제 제기 때문이겠지만 이제라도 방향을 튼 것 자체는 평가한다. 그러나 이번 보완책도 문제의 절반만 짚었다.
사실 고령농과 상속인에게는 현행법에서도 빠져나갈 길이 있다. 농지법은 60세 이상으로 5년 넘게 직접 농사 지은 농민 소유 농지에 대해선 개인간 임대차를 허용하고, 상속농지의 경우 직접 농사를 짓지 않아도 1만㎡까지 소유하고 개인간 임대차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농지 전수조사의 진짜 부작용은 보이지 않는 도처에 숨겨져 있다.
30년 방치해 놓고 이제 와서 '투기'로 몰 수 있나?
도시거주민이 소유한 농지를 농지 소재지에 사는 친척이나 농민에게 불법 임대차를 주거나 방치한 사례는 지금 전국에 아주 흔하다. 물론 위법은 위법이다. 하지만 이를 수십년간 사실상 눈감아 온 것은 정부다.
농지법 제54조는 행정청에 농지 실태를 정기적으로 조사하라고 규정한다. 농식품부 예규는 외지 거주자 소유 농지를 "연 1회 이상 중점조사"하라고 못박았다. 법규가 요구한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쪽은 정부다. 방치로 굳어진 관행에 하루아침에 엄격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신뢰보호와 비례의 원칙에 비춰 거센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게다가 정부는 토지거래허가구역 안의 무단 휴경·불법 임대를 '투기'로 분류해 구제 대상에서 뺐다. 심층조사는 경기도 전역으로 넓혀 놓았다. 정부는 취득 당시의 영농 의사까지 따져 투기 여부를 가리겠다고 한다. 수십년전 마음 속 의사를 무슨 수로 입증하라는 건가?
법이 만든 막다른 골목: 증여 농지와 주말농장
부모가 살아 계실 때 농지를 물려받은 자녀는 상속인보다 불리하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땅이라도 상속이면 개인간 임대차가 적법하지만, 증여면 불법이기 때문이다. 증여 받은 농지는 농지은행에 임대위탁하려 해도 수증일로부터 3년이 지나야만 가능하다. 직접 농사를 못 짓는 수증자에게 남은 선택지는 휴경이나 불법 임대 뿐이다.
작은 농지를 가진 도시거주민도 마찬가지다. 농사를 짓지 않던 사람이 1천㎡ 미만 농지를 사려면 법령상 주말·체험영농 목적으로만 농지취득자격증(농취증)을 취득할 수 있다. 그런데 주말·체험 농지는 개인간 임대차도, 농지은행 임대위탁도 허용되지 않는다.
소유자가 나이가 들거나 멀리 이사를 가서 더 이상 주말영농을 못하게 돼도 매도 이외에는 합법적인 출구는 하나도 없다. 매도하려고 해도 작은 땅이라 쉽게 팔리지도 않는다. 제도가 경로를 강제해 놓고 출구를 막아 놓은 것이다. 불법을 만든 것은 바로 제도다.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매물 홍수, 가격 하락은 이미 시작됐다
정부는 올해 농지 거래가 2.2% 늘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수치는 조사 착수 이전 기간이 포함된 1~7월 누계다. 조사 이후인 5~7월에 토지만 거래된 통계를 보면 전년보다 6.7% 줄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충남에서는 평당 8만~9만 원 하던 땅이 이젠 5만 원대에도 안 팔린다고 한다. 대구에서는 농지 담보가치 하락으로 지역농협의 경영까지 악화됐다고 한다.
처분명령을 받은 뒤 농어촌공사에 매수를 청구하면 가격은 공시지가 기준이다. 그런데 실거래가가 더 낮으면 실거래가로 매긴다. 다시 말해 정부가 떨어뜨린 값으로 정부가 사들이는 구조다.
"맡기면 유예"는 아직 약속에 불과하다
정부는 이번 보완대책에서 지금까지 농지은행이 임대위탁 대상에서 제외했던 맹지와 산비탈도 받아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일단 농지은행에 임대위탁을 맡긴 농지는 처분을 유예하겠다고 밝혔다. 아마도 농지은행에 임대위탁 신청을 하면, 그 근거로 임차인이 구해지지 않더라도 처분의무 통지나 처분명령을 유예하는 내용을 특별법에 포함시키겠다는 얘기로 보인다.
그러나 특별법은 12월 제정, 내년 1분기 시행 예정이다. 심층조사는 지금 진행되고 있고, 언제든 처분의무 통지와 처분명령이 떨어질 수 있다. 조사 먼저 하고 구제는 나중에 하자는 것이다.
처분 유예가 몇 년 간인지, 그 뒤에는 어떻게 되는 건지, 수 백만 필지가 몰리면 농지은행이 감당이나 할 수 있는지, 아직까지 아무런 내용이 나온 게 없다. 유예는 말 그대로 뒤로 미루는 것일 뿐, 해법은 아니다.
이름만 농지, 실제로는 산
수십년 방치돼 잡목이 우거진 '농지'가 적지 않다. 옛날에는 농사 지을 땅이 없는 사람들이 산간도 개척해서 억지로 농사를 지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기계가 들어갈 수 없는 곳, 산비탈에는 아무도 농사 지으려고 하지 않는다.
농지은행도 산간 농지, 구거 농지 등 사실상 농사를 짓기 어려운 영농불리 농지를 임대위탁 및 매입 제외 대상으로 하고 있다. 농사도 못 짓고, 임대도 안 되고, 팔리지도 않고, 공공이 사주지도 않는 땅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땅에 농사 짓지 않는다고 처분명령을 내린다. 지자체는 처분명령 받지 않으려면 “농사 짓는 척이라도 하라”는 황당한 얘기를 한다. 이런 땅에 처분명령을 내려지면 팔 수도 없기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이행강제금을 맞는 수 밖에 없다. 이행강제금은 감정가와 공시지가 중 높은 금액의 25%를 해마다 물린다. 4년이면 땅값만큼을 낸다. 사실상의 재산 몰수다.
대안은 분명하다
첫째, 정상화 유예기간을 특별법에 명문화해야 한다. 최소 2~3년의 자진 정상화 기간을 두고 적법한 임대차로 전환한 경우에는 처분 절차와 형사 절차를 면제해야 한다. 비정상의 정상화 운운하면서 과거의 불법행위를 면제하겠다는 얘기를 하지 않으면 국민은 계속 불안 속에 살아야 한다.
둘째, '투기'의 판단 기준을 법률에 명시하고, 입증 책임은 행정청이 지도록 해야 한다.
셋째, 직계 간 영농 승계형 증여는 상속에 준해 1만㎡까지 개인 임대차를 허용하고, 그 초과분은 농지은행 위탁을 의무화해야 한다. 또한 농사를 짓지 않는 자녀에게 농민 부모가 증여하더라도 소규모 농지에 한해선 개인간 임대차나 농지은행 임대위탁을 즉시 허용해줄 필요가 있다.
넷째, 전수조사 이전에 취득한 주말·체험 농지는 한시적으로 농지은행 위탁을 허용해야 한다. 단, 신규 취득분과 공유지분은 제외해 기획부동산 등 농지의 투기 악용은 계속 차단해야 한다.
다섯째, 농지은행에 맡겼는데도 임차인이 나타나지 않은 농지는 특별법 시행 전까지 처분 절차를 일시 정지하고, 유예기간과 그 이후의 경로를 특별법에 명시해야 한다.
여섯째, 사실상 산림이 된 농지는 영농여건불리농지 지정 확대, 지목 정리, 공공 매입 같은 별도 트랙을 만들어 처분명령과 이행강제금을 피해갈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일곱째, 매각하려고 노력했음에도 매수자가 없는 경우에 대해선 이행강제금을 물리지 않는 '정당한 사유'로 시행령에 명시해야 한다. 처분 시기를 분산하고 농지은행 매입 예산을 늘려 시장 충격도 흡수해야 한다.
경자유전은 헌법 원칙이고, 농지 투기는 엄단해야 한다. 그러나 원칙과 명분이 있다고 해서 집행의 순서와 속도를 무시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농지 전수 조사 같은 정책은 정상화를 유도할 수 있도록 충분한 유예기간을 설정하고, 애꿎은 피해를 보는 국민이 없도록 처분의 예외조항을 정교하게 설정한 뒤 시행해야만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수십년간 방치한 문제를 이제 와서 갑자기 단 몇 달 만에 걷어내겠다는 이재명 정권의 졸속 행정이 애꿎은 소유자와 농민들에게 큰 피해만 주고 있다. 이게 무슨 ‘계곡 정비’인 줄 아는가. 다른 정권들은 바보라서 그동안 손을 못댄 일이 아니다. /추승호 국민의힘 미디어대변인·전 신문방송편집인협회장
[미디어펜=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