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소희 기자] 38년 만에 추진된 전국 농지 전수조사를 계기로 농지제도의 사각지대를 보완하고 농지 거래와 임대를 제도권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새로운 중간지원체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농협과 지방자치단체, 시민사회, 사회경제조직 등 공익성을 갖춘 주체가 농지를 소유한 뒤 실제 농업인에게 임대하는 이른바 ‘공익형 농지 소유·임대제’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최근 농지 전수조사를 통해 드러난 농지정책의 한계를 보완하고, 민간과 공공이 협력하는 공익적인 농지 거래와 임대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자료사진=미디어펜
특히 최근 농지 전수조사 과정에서 불법 임대차 의심 사례 등이 대거 드러나면서 제도권 밖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져 온 농지 임대차를 어떻게 양성화하고 실경작자의 경작권을 보호할지가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더불어민주당 송옥주 의원은 농지은행 중심의 현행 공적 농지 관리체계만으로는 급증하는 농지 매도·임대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보고, 농협과 사회경제조직 등이 참여하는 공익형 농지 소유·임대체계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 5월부터 추진한 전국 농지 전수조사 기본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 136만ha 가운데 불법 임대차 의심 농지가 21.1%, 무단 휴경 11.6%, 불법 전용 9.0%로 나타났다. 위법 의심 농지가 전체의 27.0%에 달한 셈이다.
이번 조사는 그동안 관행적으로 이뤄진 구두계약 중심의 농지 임대차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특히 수년간 해당 농지를 경작해 온 임차농의 경우 임대차 관계가 불법으로 판단되면서 경작지를 잃거나, 장기간 투자해 온 친환경 인증을 유지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농지 소유와 이용 구조 역시 복잡하다. 자료에 따르면 2025년 기준 전체 농가의 43.5%, 경지면적의 45.0%가 임대차에 의존하고 있다. 농업인이 농지를 직접 소유하지 않고 임차해 농사를 짓는 비중이 상당한 만큼 농지 소유 규제와 함께 안정적인 임대차 시장을 구축하는 것이 농업 생산 기반 유지에 직결된다는 지적이다.
농지은행의 역할 확대에도 현실적인 제약이 있다. 올해 공공임대용 농지매입 예산은 역대 최대 규모인 2조4000억 원으로 확대됐지만, 농지 매입 가격 상한과 우량농지 중심의 매입 구조 등으로 모든 농지 매도·임대 수요를 흡수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농지 매입에 필요한 재정 부담도 변수다. 자료에 따르면 전국 농지의 1평당 평균 실거래가격은 2021년 26만8732원에서 2025년 17만6610원으로 하락했다. 그럼에도 1차 농지 전수조사에서 위법 소지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 37만ha를 모두 매입할 경우 215조 원 이상의 재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전체 농지의 5%가 강제매각 대상이 되고 이를 공공이 매입한다고 가정해도 약 56조6554억 원이 필요하다.
결국 농지 문제를 국가 재정만으로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게 송 의원 측의 판단이다. 이에 따라 농협과 사회경제조직 등 민간의 자본과 지역 네트워크를 활용해 농지의 매입·관리·임대를 담당하도록 하는 방식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송 의원은 지난 1월 농협의 공익 목적 농지 소유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내용의 농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데 이어, 지자체 출자·출연기관과 소비자생활협동조합, 사회적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비영리법인 등이 참여할 수 있는 ‘농지보유합리화법인’ 지정·운영 제도를 담은 추가 입법도 추진하고 있다.
제안된 제도에서는 농지보유합리화법인이 매입한 농지를 청년농업인과 후계농업경영인, 귀농인, 공동영농조직 등에 우선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사업 경비나 이차보전 등을 지원하고 농지관리기금을 활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농협의 역할은 농지 매입뿐 아니라 관리와 임대까지 확대하는 방식이다. 지역 사정에 밝은 농협이 고령·은퇴농이 처분하려는 농지를 발굴하고 이를 청년농이나 임차농에게 공급하는 구조다.
농협중앙회 미래전략연구소도 최근 보고서에서 국가의 농지 매입·비축만으로는 안정적인 농지 보전과 관리에 한계가 있다며 농협이 공익적 목적에 한해 농지를 소유하거나 별도 법인에 출자하는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농지보유합리화법인의 자금 조달 방식도 제도의 핵심이다. 송 의원 측은 정부가 농지 매입 대출이자의 2%를 지원할 경우 2조 원의 예산으로 100조 원 규모의 농지 매입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구상을 제시하고 있다. 농지 매입자금을 대출한 농협이 해당 법인의 경영 부실 때 농지를 인수해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안전장치도 검토 대상이다.
이 같은 체계가 구축되면 국가가 직접 농지를 매입·비축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지역 농협과 사회경제조직 등이 농지 수급조절의 중간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특히 제도권 밖에서 이뤄지는 임대차를 공식적인 임대시장으로 유도하고, 실경작자의 농지 접근성을 높이는 효과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다만 농협이나 민간 조직의 농지 소유를 확대할 경우 농지 투기나 편법 소유를 어떻게 차단할 것인지, 공익 목적의 농지 소유 범위를 어디까지 설정할 것인지가 제도 설계의 핵심 쟁점으로 꼽힌다. 농지의 소유와 이용을 분리하는 과정에서 실경작자 보호와 농지 투기 방지라는 기존 농지법의 원칙을 어떻게 조화할지도 과제다.
송 의원은 “부재지주와 고령농이 농지를 원활히 처분하고, 농업인이 농지를 직접 매입하지 않고도 안정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며 농협이나 사회경제조직이 참여하는 공익형 농지 소유·임대제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농지 전수조사는 불법 농지 적발을 넘어 농지 소유와 이용, 임대차 시장 전반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는 계기가 되고 있다.
농업인의 상당수가 임차농인 현실에서 농지 소유 규제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안정적인 경작권을 보장하려면 농지 매입과 임대의 공적 기능을 어떻게 확대할지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