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박재훈 기자]신약 후보물질의 효능 확인 후 임상 진입을 앞두고 제조·품질관리 단계에서 발목이 잡히는 국내 바이오기업들이 적지 않다. 정부는 후보물질 최적화부터 비임상·임상까지 연결하는 개방형 CMC 플랫폼 구축에 나섰지만 이미 유사한 정부 사업과 공공 인프라가 가동되고 있어 기존 사업과의 역할 분담이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정부가 CMC 플랫폼 구축에 나섰으나 기존 사업과 유사성을 띄고 있어 역할 분담과 사업별 역량을 연결하는 것이 과제로 부상했다./사진=AI 이미지 제작
2일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신약개발 전주기에 걸쳐 CMC(원료·제조·품질관리)를 지원하는 개방형 플랫폼 구축을 위한 공동 R&D(연구개발) 사업을 추진한다. 정부는 후보물질 최적화부터 비임상·임상 단계까지 전주기 서비스를 제공하고 R&D와 함께 전문인력 양성, 전문가 컨설팅 등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 CMC 병목 해소한다는데…이미 100억원 사업 가동 중
CMC는 후보물질을 실제 임상시험에 투입할 수 있는 의약품으로 구현하는 과정이다. 제조공정과 분석법을 확립하고 원료·완제의 품질기준, 안정성, 불순물 등을 관리해 일관된 품질을 입증해야 한다. 후보물질의 효능이 확인됐더라도 CMC 준비가 충분하지 않으면 임상 진입 일정이 지연될 수 있다.
정부가 이번 플랫폼을 추진하는 배경도 국내 CMC 역량이 기관과 분야별로 분산돼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저분자, 항체, 세포·유전자치료제 등 모달리티에 따라 필요한 제조·분석 기술이 다른 데다 공정개발부터 임상시험용 의약품 생산, 규제문서 작성까지 전 과정을 연결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다만 CMC 지원을 위한 정부 사업이 이번에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다. 산업부는 올해 3월 ‘혁신신약 연구개발 가속화플랫폼 구축’ 사업을 시작했다. 해당 사업은 바이오의약품의 특성분석과 유효성 평가 인프라, CMC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하고 제조·공정 최적화와 소규모 시료 생산 등을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사업기간은 2026년부터 2030년까지 5년 이내이며 총 정부지원 규모는 100억 원 이내다. 올해에만 7억 원의 정부 연구개발비가 투입된다. 바이오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내 비영리기관을 대상으로 단일 과제를 선정하는 구조로 이미 정부가 CMC 관련 인프라 구축에 별도 예산을 투입하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신규 공동 플랫폼이 기존 사업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가 정책적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두 사업이 별개라면 동일하거나 유사한 CMC 인프라에 정부 예산이 중복 투입될 가능성을 따져봐야 한다. 기존 사업을 확대·연계하는 사업이라면 어떤 기능을 추가해 기존 플랫폼의 한계를 보완하는지가 명확해야 한다.
◆ ‘플랫폼 추가’보다 기존 역량 연결이 관건
문신학 산업통상부 차관이 29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 제2테크노밸리 위든타워에서 열린 '바이오 전문가 간담회'에 참석,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기존 지원체계는 산업부 사업만이 아니다. 국가신약개발재단은 CMC 전략컨설팅과 CDMO(위탁개발생산) 사전상담을 운영하고 있다. 케이메디허브와 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등도 공정·제제·분석법 개발과 임상시험용 의약품 생산, 안정성 시험, CMC 자료 작성 등을 지원하고 있다.
민간에도 CMC 서비스를 제공하는 CDMO와 분석기관이 다수 존재한다. 국가신약개발재단의 2026년 CMC 인프라 자료에는 저분자, 단백질·항체, 유전자·백신 등 분야별 국내 CMO·CDMO 32개사가 등록돼 있다.
문제는 지원기관이 없다는 것보다 이들이 하나의 개발 과정으로 연결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후보물질 최적화, 분석, 임상시료 생산 모두 다른 기관에서 진행되는 식으로 지원체계가 분절될 경우 기업이 각 기관의 지원 요건과 일정을 별도로 맞춰야 한다.
따라서 신규 플랫폼이 기존 사업과 차별화하려면 시설을 추가로 확보하는 것보다 흩어진 역량을 하나의 서비스 체계로 연결하는 역할이 중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특히 후보물질 단계에서부터 CMC 전략을 수립하고 공정개발, 분석법 확립, 임상시료 생산, CTD 등 규제문서 작성까지 이어지는 경로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제공할지가 관건이다.
정부가 새 플랫폼을 기존 사업과 별도로 운영한다면 기존 인프라와 장비의 활용률, 지원 대상, 모달리티, 서비스 범위에서 명확한 차별성이 제시돼야 한다. 또한 일각에서는 기존 사업을 확대하거나 여러 기관을 연결하는 네트워크형 플랫폼이라면 중복투자를 줄이고 민간 CDMO와 공공기관의 역할을 어떻게 배분할지 구체적인 운영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공공 플랫폼이 민간 CDMO가 이미 제공하는 서비스를 직접 수행할 경우 시장과의 역할 충돌 가능성도 있다. 공공기관은 초기 공정개발이나 분석 등 민간이 비용 문제로 제공하기 어려운 영역을 맡고 이후 임상 및 상업생산 단계에서 민간 CDMO로 연결하는 방식이 하나의 대안으로 거론된다.
정부도 이번 사업을 단순 시설 확충에만 두지는 않는다는 입장이다. 문신학 산업부 차관은 지난달 29일 열린 CMC 산업 역량 강화 세미나에서 “CMC는 신약개발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경쟁력”이라며 “CMC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R&D, 인력양성, 전문가 컨설팅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디어펜=박재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