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과 반도체가 미래 산업의 핵심으로 떠오른 가운데 우리나라도 AI 데이터센터와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에 나서면서 산업 육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다만 대규모 전력을 필요로 하는 AI·반도체 산업 특성상 ‘전력 확보’가 새로운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전력망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국내 투자 경쟁력도 약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미디어펜은 전력 인프라의 현주소와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전력망의 역할에 대해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미디어펜=박준모 기자]AI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글로벌 산업 지형이 데이터센터와 반도체를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대규모 연산을 수행하는 데이터센터 건설이 급증하고 있으며, 반도체 등 첨단 제조시설 투자도 잇따르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도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와 산업 클러스터 조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데이터센터와 반도체의 성장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전력망 구축도 필요하다. 그러나 산업계 내에서는 첨단 산업의 발전 속도를 전력망이 따라갈 수 있을지 의구심을 드러내고 있다. 전력망을 구축하더라도 높은 수준의 산업용 전기요금까지 더해질 경우 원가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글로벌 산업 지형이 데이터센터와 반도체를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는 가운데 전력망 구축에 대한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송전탑 모습./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7일 산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오는 2035년까지 총 18.4GW(기가와트)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1단계로 8.4GW 규모의 데이터센터 구축에 나서고 이후 추가 투자를 통해 전체 규모를 18.4GW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AI 데이터센터 클러스터 조성과 함께 전력·용수 등 기반시설을 안정적으로 공급한다는 방침이다.
반도체 분야에서도 대규모 투자가 이뤄진다. 정부가 추진하는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팹 4기가 들어설 예정이다. 투자 규모만 800조 원에 달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로, 국내 반도체 산업의 생산 기반을 확대하는 핵심 거점으로 조성될 전망이다.
◆대규모 전력망 확충은 필수…“안정적 공급 선행돼야”
정부가 이처럼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산업에 대규모 투자를 추진하는 것은 AI 시대를 이끌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글로벌 산업 경쟁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해당 산업을 정상적으로 가동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전력망 구축도 필요하다.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팹 4기 가동 시에는 6.3GW의 전력이 소요될 전망이다. 여기에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18.4GW,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도 14GW의 전력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중장기적으로 대규모의 전력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도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에 대응하기 위해 2029년까지 3GW를 우선 공급하고, 이후 변전소를 추가로 구축해 6GW 이상으로 공급 능력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또 재생에너지와 원전을 활용해 전력을 공급한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산업계 내에서는 이 같은 계획만으로 첨단 AI 산업의 전력 수요를 감당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반응이다.
먼저 2040년까지의 전력 수요와 공급 계획을 담은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 AI 데이터센터와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에 따른 전력 수요가 포함되지 않았다. 12차 전기본이 지난 4월에 공개된 만큼 이후에 발표된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반영되지 않은 것인데, 이들 사업의 전력 수요를 반영한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에 정부도 현재 12차 전기본을 다시 수립하고 있다.
또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해 급증하는 산업 전력 수요에 대응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제기된다. 정부는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고, 수명을 다하는 원전 9기를 계속운전하고, 새로 2기를 더 건설해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신재생에너지는 날씨와 시간대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지기 때문에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데 한계가 있다.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들쭉날쭉하고 간헐성이 큰 신재생에너지로는 24시간 끊김 없는 고품질 전력이 필수적인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의 폭발적인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어렵다.
아울러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발전설비 확충뿐 아니라 생산시설까지 전력을 전달하는 송배전망 구축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AI 데이터센터 건설과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에 앞서 필요한 전력 공급 능력과 계통 여건을 확보하는 것이 프로젝트 성공의 핵심 조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산업계 관계자는 “전력망 인프라가 뒷받침되지 않는 첨단 산업 구상은 허상에 불과하다”며 “정부가 국가 첨단산업의 생존이 걸린 전력망 확충에 사활을 걸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높은 산업용 전기요금도 부담…“미국·중국보다 높다”
높은 수준의 산업용 전기요금 역시 첨단산업 경쟁력 확보의 주요 변수로 꼽힌다.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은 막대한 전력을 사용하는 만큼 전기요금이 생산비와 운영비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산업용 전기요금은 최근 몇 년간 여러 차례 인상되면서 기업들의 부담도 커졌다. 실제로 지난 2021년 4분기 ㎾h당 105.5원이던 산업용 전기요금은 2024년 4분기 185.5원으로 75.8% 상승했다. 미국은 주별로 전기요금이 다르지만 지난해 기준 평균 산업용 전기요금은 ㎾h당 120원 수준을 보였고, 중국도 약 120원으로 우리나라보다 낮다.
특히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은 한번 가동을 시작하면 장기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요한 만큼 전기요금의 변동성도 중요한 고려 요소다. 초기 시설 투자뿐 아니라 가동 이후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전력 비용이 기업의 수익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결국 현재와 같이 가파르게 오른 산업용 전기요금 구조 유지는 우리 기업들이 AI 시대에 글로벌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커다란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다른 산업계 관계자는 “산업용 전기요금 역시 AI 시대 기업의 글로벌 원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라며 “그동안 주택 전기요금 동결에 따른 한전의 부담을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으로 메우는 구조가 이어져 왔는데,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이러한 구조를 바꿀 때가 됐다”고 말했다.
[미디어펜=박준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