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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엔지니어링, 세계를 설계하다①]건설사가 오기 전 한국이 먼저 들어간다

입력 2026-10-09 09:15:41 | 수정 2026-10-09 09:15:41
서동영 기자 | westeast0@mediapen.com
한국의 해외건설은 건설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건설사가 현장에 들어가기 전 도로의 노선을 정하고 교량을 설계하며 사업비를 계산하는 한국 기업들이 있다. 공사가 시작되면 제대로 짓고 있는지 감독하고 때로는 발주처를 대신해 프로젝트 전체를 관리한다. 홍익기술단·동명기술공단·삼안·경동엔지니어링·동성엔지니어링·한국해외기술공사(KCI) 등이다. 이들의 이름은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시아·아프리카·남태평양의 도로와 교량, 도시 인프라 곳곳에 한국 엔지니어들의 설계도가 들어가고 있다. 미디어펜은 ‘K-엔지니어링, 세계를 설계하다’를 통해 세계 인프라 시장의 앞단을 개척하고 있는 한국 엔지니어링 기업들을 추적한다. [편집자주]

한국 해외건설의 역사는 오로지 건설사만이 쓴 건 아니다. 공사 전부터 후까지 전체를 관리 감독하는 엔지니어링 기업들의 노력이 숨어있다./사진=AI 생성 이미지


[미디어펜=서동영 기자]아프리카 소말릴란드와 몽골, 우즈베키스탄,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바누아투.

서로 수천㎞ 떨어져 있는 이들 지역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한국 엔지니어들이 도로와 교량, 도시 인프라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형 건설사가 수십억달러짜리 공사를 따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도로가 어디로 지나가야 하는지 설계하고 교량의 구조를 검토하며 공사가 설계대로 진행되는지 감독하는 엔지니어링 사업이다.

국내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ADB), 아프리카개발은행(AfDB) 등 국제금융기구의 프로젝트 문서를 들여다보면 홍익기술단과 동명기술공단, 삼안, 경동엔지니어링, 동성엔지니어링, 한국해외기술공사(KCI) 같은 한국 기업의 이름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건설사가 세계 곳곳에서 한국의 건설 기술을 보여줬다면 이들은 그보다 한발 앞에서 세계의 인프라를 설계하고 있다.

▲건설사가 ‘손’이라면 엔지니어링사는 ‘두뇌’

도로 하나를 건설한다고 가정해보자.

건설회사가 중장비를 가져와 땅을 파는 것이 사업의 시작처럼 보이지만 실제 과정은 훨씬 이전부터 시작된다.

먼저 도로가 정말 필요한지를 조사한다. 어디에서 어디까지 연결할 것인지 정하고 지형과 교통량, 환경을 조사한다. 이후 도로의 폭과 노선, 교량과 터널 위치, 배수시설 등을 구체적으로 설계한다.

공사비가 얼마나 들지 계산하고 실제 공사가 시작되면 설계대로 제대로 짓고 있는지도 감독해야 한다.

이 일을 하는 것이 엔지니어링 기업이다.

쉽게 말하면 건설사가 도로와 교량을 실제로 만드는 ‘손’이라면 엔지니어링 기업은 무엇을 어떻게 만들지 결정하는 ‘두뇌’에 가깝다.

최근에는 역할이 더 커지고 있다.

PMC(Project Management Consultancy·사업관리)는 발주처를 대신해 설계와 입찰, 계약, 일정, 공사비, 품질 등을 종합적으로 관리한다.

공사를 직접 하지 않으면서도 수억달러짜리 프로젝트 전체가 어떻게 움직일지를 관리하는 것이다.

세계 인프라 시장에서 엔지니어링 역량이 중요한 이유다.

▲소말릴란드에서 바누아투까지…세계 곳곳에 한국 설계도

한국 엔지니어링 기업들의 활동무대는 생각보다 넓다.

홍익기술단은 아프리카 소말릴란드 로와야도(Lowya Addo)~제일라(Zeila) 도로 사업에서 시공감리를 맡았다.

동명기술공단은 몽골에서 도로뿐 아니라 상하수도와 전력, 난방 등이 포함된 도시 인프라 사업의 설계·감리에 참여한다.

중앙아시아에서는 삼안과 경동엔지니어링, 동성엔지니어링 등이 움직이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농촌도로 사업에서 프로젝트 관리와 하위사업 준비 등에 한국 엔지니어링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다.

남태평양으로 가면 또 다른 한국 회사가 나온다.

한국해외기술공사(KCI)는 세계은행이 지원하는 바누아투 남산토(South Santo) 도로 사업에서 상세설계와 시공감리에 참여하고 있다.

대상 도로만 약 65㎞다.

특히 이 사업은 단순히 낡은 도로를 새로 포장하는 사업이 아니다.

태풍과 집중호우가 잦은 섬나라의 특성을 고려해 도로와 교량, 배수시설, 해안보호시설 등을 개선하는 기후회복형 인프라 사업이다.

도로 하나를 설계하는 데 토목기술뿐 아니라 기후변화 대응 능력까지 필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소말릴란드에서 몽골과 우즈베키스탄을 지나 남태평양 바누아투까지 한국 엔지니어링 기업의 활동반경이 넓어지고 있다.

수백만달러짜리 계약이 수억달러 사업을 움직인다

그런데 엔지니어링 해외수주 실적을 처음 접하면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금액이 생각보다 작은데?”

해외 건설사가 따내는 플랜트나 철도, 고속도로 사업은 수십억달러 규모까지 올라간다. 반면 설계·감리 계약은 수백만달러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계약금액만 비교하면 엔지니어링 사업의 특성을 놓치게 된다.

설계 단계에서 도로의 노선과 교량 위치, 공법, 기술규격 등이 정해진다. 사업관리 단계에서는 입찰과 계약, 일정과 사업비, 품질관리 등이 이뤄진다.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엔지니어링 계약이 훨씬 큰 인프라 프로젝트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구조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타당성조사와 기본·상세설계 단계부터 한국 기업이 참여하면 이후 시공과 기자재, 운영·유지보수 등으로 이어지는 인프라 생태계에 한국 기업이 접근할 기회도 커질 수 있다.

도로 뒤에는 교량과 터널이 있고 도시개발 뒤에는 상하수도와 전력망, 통신망이 따라온다.

설계도 한 장에서 또 다른 수출시장이 열릴 수 있다는 의미다.

▲13조원 시장 됐지만…해외는 아직 4000억원도 안 된다

한국 엔지니어링 산업 자체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한국엔지니어링협회 집계에 따르면 2025년 국내 엔지니어링 기업의 전체 수주액은 13조1390억원으로 전년보다 16.1% 증가했다. 3년 연속 역대 최대 규모다.

그러나 해외시장만 떼어놓고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2025년 해외 수주액은 3912억원으로 전년 7854억원보다 줄었다.

전체 엔지니어링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크지 않다.

한국 건설사들이 중동과 아시아를 넘어 세계 건설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엔지니어링 산업의 해외 진출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의미다.

반대로 보면 그만큼 개척할 시장이 많이 남아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세계은행과 ADB, AfDB 등 국제금융기구는 개발도상국의 도로와 철도, 상하수도, 전력, 도시개발 등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한다.

이 사업들은 대부분 타당성조사와 설계, 사업관리, 감리 같은 엔지니어링 단계부터 시작된다.

한국 기업들이 노릴 수 있는 시장도 그만큼 넓다.

▲‘짓는 한국’에서 ‘설계하는 한국’으로

한국 해외건설의 역사는 중동 사막에서 시작됐다.

도로를 깔고 항만을 만들고 초고층 건물과 발전소를 지으면서 한국 건설산업은 세계시장에 이름을 알렸다.

이제 또 하나의 시장이 열리고 있다.

세계 어느 곳에 도로를 놓을지, 어떤 교량을 세울지, 도시의 물과 전기를 어떻게 연결할지를 결정하는 시장이다.

화려한 초고층 건물도 없고 수십억달러짜리 수주 발표도 없다.

대신 한국 엔지니어들이 만든 설계도와 도면, 사업관리 계획이 세계 곳곳의 인프라에 들어간다.

건설사가 들어가기 전에 한국이 먼저 들어가는 것이다.

‘짓는 한국’을 넘어 ‘설계하는 한국’으로. K-엔지니어링의 세계시장 도전은 이제 시작이다.


[미디어펜=서동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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