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해외건설은 건설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건설사가 현장에 들어가기 전 도로의 노선을 정하고 교량을 설계하며 사업비를 계산하는 한국 기업들이 있다. 공사가 시작되면 제대로 짓고 있는지 감독하고 때로는 발주처를 대신해 프로젝트 전체를 관리한다. 홍익기술단·동명기술공단·삼안·경동엔지니어링·동성엔지니어링·한국해외기술공사(KCI) 등이다. 이들의 이름은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시아·아프리카·남태평양의 도로와 교량, 도시 인프라 곳곳에 한국 엔지니어들의 설계도가 들어가고 있다. 미디어펜은 ‘K-엔지니어링, 세계를 설계하다’를 통해 세계 인프라 시장의 앞단을 개척하고 있는 한국 엔지니어링 기업을 추적한다. [편집자주]
한국 엔지니어링 기업인 삼안, 경동, 동성이 3억 달러 규모 우즈베키스탄 농촌도로 개선사업을 맡게 됐다./사진=AI 생성 이미지
[미디어펜=서동영 기자]여러 지역의 도로를 동시에 고치는 사업에는 포장공사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어느 구간이 사업 기준에 맞는지 검토하고, 경제성과 환경·사회 영향을 확인하며, 각각의 공사가 전체 계획 안에서 진행되도록 관리해야 한다.
우즈베키스탄의 농촌도로 개선사업에서 한국 엔지니어링 기업들이 맡은 역할이 여기에 있다. 삼안과 경동엔지니어링은 컨소시엄으로 프로젝트 관리를, 동성엔지니어링은 하위사업 준비를 담당한다. 같은 국가 도로사업에 참여하지만 계약과 과업은 각각 다르다.
▲3억 달러 사업, 한국 기업이 맡은 것은 전문 용역
중앙아시아지역경제협력체(CAREC) 사업자료에 따르면 ‘농촌도로 회복력 강화사업’의 총사업비는 2억9875만달러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이 2억4000만달러를 지원하고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5875만 달러를 부담하는 구조다.
이 전체 금액이 한국 기업의 수주액은 아니다. 도로공사와 유지관리 등을 포함하는 사업비이며, 한국 기업은 별도의 엔지니어링 용역 계약으로 참여한다.
우즈베키스탄 도로위원회가 공개한 이행자료에 따르면 삼안·경동엔지니어링 컨소시엄의 국제 프로젝트관리 컨설턴트(PMC) 계약금액은 241만9979달러다. 현지 사업집행 기관인 아브토욜인베스트와 2025년 4월 14일 계약을 체결했다.
동성엔지니어링의 국제 하위사업준비 컨설턴트(SPC) 계약금액은 231만5380달러다. 같은 기관과 2025년 3월18일 계약을 체결했다.
두 계약의 합계는 473만5359달러다. 삼안·경동 계약은 컨소시엄 전체 금액으로, 각 회사의 배분액과는 구분해야 한다.
이 사업에는 시공사와 지역별 건설감리 회사도 별도로 참여한다. 한국 3사가 도로공사 전체를 수주하거나 모든 현장감리를 맡은 구조가 아니다. 사업관리와 공사에 앞선 준비 단계에서 전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삼안·경동은 사업관리, 동성은 공사 전 검토
PMC는 발주처의 사업관리를 지원하는 전문 조직이다. 여러 지역과 계약으로 나뉜 사업에서는 개별 공사의 진행뿐 아니라 보고와 기준 준수, 기관 간 조정도 필요하다. 사업관리와 현장 시공감리가 별도 계약으로 존재하는 이유다.
삼안·경동 컨소시엄에 대해서는 계약 체결 이후 실제 업무수행 기록도 공개됐다. 우즈베키스탄 도로위원회 자료는 2025년 5월 2일부터 인력동원 등 업무 착수준비가 시작됐으며, 같은 달 초기 보고서가 ADB에 제출됐다고 설명한다.
또 2026년 4월 8일 갱신된 이행자료에는 컨소시엄이 반기별 사회 모니터링 보고서를 작성하고 ADB 승인을 받았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계약자 선정 이후 보고 업무가 진행됐음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동성엔지니어링의 역할은 하위사업을 준비하는 데 있다. 여기서 하위사업은 전체 프로그램 안에 포함되는 개별 도로 개선사업을 뜻한다.
현지 공식자료에 따르면 동성은 도로 목록이 ADB 요구사항에 부합하는지 확인하고, 경제·환경·사회 영향을 검토하는 실사 보고서를 준비한다.
공사할 도로를 정했다고 바로 착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업의 필요성과 예상 효과, 환경과 주민에게 미칠 영향을 검토하고 지원기관의 기준에 맞게 문서화해야 한다. 동성의 과업은 이런 준비 과정에 해당한다.
▲도로를 고치기 전에 움직이는 한국 엔지니어링
농촌도로는 마을과 시장, 학교와 의료시설을 연결하는 생활 기반이다. 도로 상태가 나쁘면 이동시간과 운송비가 늘고, 주민과 기업이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의 범위도 제한될 수 있다.
이 사업은 기존 농촌도로를 개선하고 유지관리 역량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새 도로를 건설하는 것만큼 고친 도로를 오랫동안 이용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과정도 중요하다.
과정에는 시공 외의 전문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사업 대상이 적절한지 살피고, 환경·사회 영향을 검토하며, 여러 공사와 보고 업무가 요구 기준에 맞게 진행되도록 지원해야 한다.
한국 기업이 맡은 계약은 전체 사업비의 일부다. 그러나 그 계약이 담당하는 기능은 공사를 준비하고 사업을 운영하는 데 연결돼 있다. 엔지니어링의 역할을 계약금액만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이유다.
홍익기술단이 소말릴란드 도로의 건설감리를, 동명기술공단이 몽골 도시 인프라의 상세설계·감리를 맡았다면,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삼안·경동·동성이 사업관리와 하위사업 준비에 참여한다.
이 사례들은 한국 엔지니어링의 해외 활동이 설계와 감리, 사업 준비와 관리 등 여러 단계에 걸쳐 있음을 보여준다. 건설사가 현장에 들어가기 전부터 사업이 진행되는 동안까지, 한국 기업이 제공하는 전문 기술의 영역은 넓다.
한 엔지니어링 업계 관계자는 “PMC나 하위사업 준비 용역은 전체 사업비에 비하면 금액이 작지만, 발주처와 ADB 사이에서 사업의 기준과 일정을 잡는 역할”이라며 "이런 경험이 쌓여야 이후 설계·감리 수주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펜=서동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