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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엔지니어링, 세계를 설계하다⑤] KCI, 남태평양 65㎞ ‘생명도로’에 한국 설계기술을 담다

입력 2026-10-13 10:44:23 | 수정 2026-10-13 10:47:43
박소윤 기자 | xxoyoon@daum.net
한국의 해외건설은 건설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건설사가 현장에 들어가기 전 도로의 노선을 정하고 교량을 설계하며 사업비를 계산하는 한국 기업들이 있다. 공사가 시작되면 제대로 짓고 있는지 감독하고 때로는 발주처를 대신해 프로젝트 전체를 관리한다. 홍익기술단·동명기술공단·삼안·경동엔지니어링·동성엔지니어링·한국해외기술공사(KCI) 등이다. 이들의 이름은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시아·아프리카·남태평양의 도로와 교량, 도시 인프라 곳곳에 한국 엔지니어들의 설계도가 들어가고 있다. 미디어펜은 ‘K-엔지니어링, 세계를 설계하다’를 통해 세계 인프라 시장의 앞단을 개척하고 있는 한국 엔지니어링 기업을 추적한다. [편집자주]

한국해외기술공사는 바누아투 에스피리투산토섬의 사우스산토 도로 개선사업의 상세설계와 건설감리에 참여했다./이미지 생성=챗GPT


[미디어펜=박소윤 기자]남태평양 섬나라에서 도로는 이동시간을 줄이는 시설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폭우로 강이 넘치고 도로가 끊기면 아이들은 학교에 갈 수 없고 환자는 의료시설에 접근하기 어렵다. 농민이 시장으로 가져가야 할 생산물도 마을에 남는다.

바누아투 에스피리투산토섬의 사우스산토(South Santo) 도로가 그런 길이다. 세계은행이 지원하는 기후회복형 교통사업은 약 65㎞ 도로와 교량 등을 개선해 주민의 일상과 지역경제를 연결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한국해외기술공사(Korea Consultants International·KCI)는 이 도로 개선사업의 상세설계와 건설감리에 참여했다. 한국 엔지니어링이 해외에서 맡는 역할이 시설의 형태를 정하는 데서 기후재난에 대응하는 기반을 마련하는 일까지 이어지는 사례다.

▲학교·병원·시장으로 가는 길을 지킨다

세계은행은 2025년 7월 공개한 사업 소개에서 사우스산토 도로를 주민의 생활을 지탱하는 교통망으로 설명했다. 사이클론과 폭우, 홍수로 이동이 어려워지면 통학과 진료, 농산물 판매가 함께 영향을 받는 지역이다.

사업은 도로 포장과 교량, 배수시설, 해안 보호시설 등을 개선하는 방식으로 추진된다. 세계은행은 당시 이 사업이 약 4만명의 이동과 생활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도로를 개선하는 목적도 단순히 더 빠르게 달리도록 하는 데 있지 않다. 비가 많이 내리거나 강물이 불어났을 때 이동이 끊길 위험을 줄이고, 주민이 필요한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기후회복형 인프라는 이런 위험을 설계와 관리에 반영하는 기반시설을 뜻한다. 평상시의 교통량뿐 아니라 홍수와 산사태, 해안의 위험까지 고려해야 한다.

이 사업에서 도로와 교량, 배수시설을 함께 다루는 이유다. 도로 포장만 개선해도 강을 건너지 못하거나 물이 제대로 빠지지 않으면 교통망의 기능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설계에서 감리로…공식 문서에 남은 KCI의 역할

KCI의 참여는 사업 소개나 채용공고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세계은행에 공개된 바누아투 사업의 2024년 회계연도 감사자료에는 설계·감리 수행기업으로 KCI가 명시됐다.

이 자료는 KCI에 대한 지급 내역 가운데 일부가 1단계 최종 설계보고서에 관한 최종 지급이며, 나머지는 2단계 도로·교량 공사의 감리 서비스와 관련됐다고 설명한다.

설계 결과물을 준비하는 단계와 공사 진행을 감독하는 단계에서 실제 용역 수행과 대금 지급이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다만 연간 지급액을 전체 계약금액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상세설계는 공사를 실행할 수 있도록 도면과 기술 기준을 구체화하는 작업이다. 건설감리는 이후 공사가 설계와 계약 조건에 맞게 진행되는지 확인하는 역할이다.

KCI가 참여한 과업 역시 도로를 직접 시공하는 공사계약과 구분된다. 설계와 감독이라는 전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계약이다.

현지 정부의 사업 기록에서도 KCI의 이름이 확인된다. 바누아투 인프라·공공시설부는 2025년 12월 18일 열린 나바카강 교량 인계·개통 행사 안내에서 KCI와 설계·감리 관계자들의 기여를 언급했다.

사업 참여가 계약 문서에 머물지 않고 시설 개선 과정으로 이어졌다는 점을 보여준다. 다만 개별 교량의 개통을 전체 도로사업의 완료로 확대해서는 안 된다.

▲2027년까지 이어지는 사업…기후 대응도 기술 수출이다

사업 일정은 초기 안내에서 달라졌다. 세계은행의 2025년 사업 소개에는 2026년 12월 완료를 예상했지만, 2026년 3월 이행보고서는 사업 종료일을 2027년 12월 31일로 연장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일정 변경을 포함한 사업 재구조화는 2026년 3월 12일 승인됐다. 사업 종료일은 세계은행 사업의 공식 일정으로, 모든 공사 구간의 준공일이나 KCI 계약 종료일과 동일하다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사우스산토 도로 전체가 이미 완공됐다고 표현하기보다, 시설 개선 성과가 나타나는 가운데 사업이 이어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이 사례에서 주목할 부분은 한국 기업이 해외 도로사업에 참여했다는 사실과 함께 그 도로에 요구되는 기능이다. 주민의 이동을 지원하면서 기후재난으로 교통망이 끊길 위험에도 대응해야 한다.

설계와 감리는 이런 목표를 실제 시설과 공사 과정에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어떤 위험을 검토하고 어떤 기준을 도면에 반영하며, 현장에서 그 기준이 지켜지는지를 확인하는 전문 역량이 필요하다.

홍익기술단의 아프리카 도로 감리, 동명기술공단의 몽골 도시 인프라 설계·감리, 삼안·경동·동성의 우즈베키스탄 사업관리·준비에 이어 KCI의 바누아투 사례는 또 다른 시장을 보여준다.

한국 엔지니어링의 활동 무대가 남태평양 섬나라의 기후 대응형 교통망으로도 이어지는 것이다. 그 기술이 향하는 곳은 지도 위의 도로뿐 아니라 학교와 의료시설, 시장으로 가는 주민의 일상이다.

[미디어펜=박소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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