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하늘 기자] 국내 조선업계의 경쟁축이 선박 기술력에서 생산성으로 넓어지고 있다. 중국 조선사들이 낮은 인건비와 대규모 생산능력을 앞세워 글로벌 수주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우는 가운데 국내 조선사들은 설계·생산 데이터 통합과 로봇 자동화, 디지털 트윈 등을 활용한 '스마트야드'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과 인건비 자체로 경쟁하기 어려운 만큼 더 많은 선박을 더 빠르게 건조해 원가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14일 HD한국조선해양은 전날 부산 해운대구에서 지멘스 디지털 인더스트리 소프트웨어와 함께 '글로벌마린센터' 개소식을 열었다고 밝혔다.
중국 조선사들이 낮은 인건비와 대규모 생산능력을 앞세워 글로벌 수주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우는 가운데 국내 조선사들은 설계·생산 데이터 통합과 로봇 자동화, 디지털 트윈 등을 활용한 '스마트야드'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사진은 삼성중공업 거제 조선소 전경./사진=삼성중공업
양사는 선박 설계부터 생산, 유지보수까지 전 과정의 데이터를 3차원(3D) 모델로 통합한 차세대 마린 플랫폼을 고도화할 계획이다.
가상환경에서 생산공정과 설비 운영을 미리 적용·검증하는 디지털 조선소를 구현하고 이를 실제 생산 운영 전반과 연계한다는 구상이다. HD현대는 장기적으로 선박 건조기간을 30% 단축하고, 생산성을 30%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스마트조선소의 핵심은 도크를 늘리거나 인력을 더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설계부터 생산까지 하나의 디지털 환경으로 연결해 기존 프로세스의 속도를 높이는 것"이라며 "병목과 낭비되는 시간·인력을 최소화해 같은 인력과 인프라에서 선박을 더 효율적으로 건조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어 "선박 건조기간은 선종과 크기, 사양에 따라 달라 기간 단축으로 몇 척을 더 건조할 수 있는지를 일률적으로 산출하기는 어렵다"며 "설계부터 생산·유지보수까지 하나의 3D 모델로 통합하고 생산공정과 설비 운영을 사전에 검증하면 전 과정의 비효율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같은 도크·인력으로 더 많이…스마트야드 핵심은 '낭비시간' 제거
조선업은 제조업 가운데서도 자동화 난도가 높은 산업으로 꼽힌다. 선박마다 사양이 다른 주문형 생산 방식인 데다 수많은 블록과 기자재를 넓은 야드에서 조립해야 하고, 건조가 진행될수록 작업의 개별성도 커지기 때문이다.
조선소 디지털화 관련 연구에서도 조선업은 노동집약적 공정과 공간 제약, 복잡한 자원 배치 등의 특성으로 다른 중공업에 비해 자동화 수준과 생산성이 상대적으로 낮았던 산업으로 분석됐다.
다만 최근엔 인건비 상승과 글로벌 경쟁 심화, 낮은 수익성까지 겹치면서 생산공정을 현대화하고 비용과 낭비를 줄여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에 조선업계가 주목하는 것이 스마트야드다. 단순히 용접로봇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설계와 생산계획, 자재 이동, 용접·조립 과정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를 하나로 연결해 병목과 비효율을 줄이는 방식이다.
과거에는 개별 공정의 병목을 찾아내는 수준의 시뮬레이션이 주를 이뤘다면 최근에는 사물인터넷(IoT)·머신러닝·디지털 트윈 등을 활용해 생산계획과 자재 흐름, 크레인과 운반장비까지 하나의 체계로 연결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관련 연구에서도 생산성 개선의 핵심은 작업 자체를 빠르게 하는 것보다 공정 사이에 숨어 있는 낭비를 줄이는 데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뮬레이션을 활용한 LNG 블록 공정 개선 사례에선 리드타임이 18% 줄고 노동 투입은 3% 감소했다. 야드 배치를 최적화한 연구에선 자재 이동시간이 18~22%, 혼잡이 27% 줄어든 것으로 파악됐다. 반대로 생산계획 단계 간 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전체 작업기간이 최대 30% 늘어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들 연구를 종합하면 조선소 생산성은 용접·조립 등 실제 작업시간뿐 아니라 대기시간과 자재 이동, 재작업, 자원 배치, 생산계획 오류를 얼마나 줄이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셈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국내 조선업이 LNG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종에서는 기술력 우위를 갖고 있지만 중국은 상대적으로 낮은 인건비를 바탕으로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며 "기술 격차는 결국 좁혀질 수 있는 만큼 생산성을 높여 원가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 삼성·한화도 자동화 속도…로봇자동화·용접공정 자동화 확대
국내 다른 조선사들도 생산성 향상을 목표로 스마트야드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디지털전환(DX), 인공지능전환(AX), 로봇자동화(RX)를 결합한 '3X 기반 스마트야드'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사진=삼성중공업
삼성중공업은 디지털전환(DX), 인공지능전환(AX), 로봇자동화(RX)를 결합한 '3X 기반 스마트야드'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생산 데이터를 활용해 공정 간 대기와 재작업을 줄이고 AI와 자동화 기술을 품질관리와 생산계획에 확대 적용하는 방식이다.
한화오션은 노동집약도가 높은 용접공정을 중심으로 자동화를 확대하고 있다. 자체 개발한 갠트리(Gantry)형 용접로봇을 활용해 소부재 생산을 위한 배재·취부·용접 공정을 자동화하고 있으며, 작업자가 직접 운반하고 선박 내부 맨홀도 통과할 수 있는 소형·경량 용접로봇도 현장에 적용하고 있다.
생산 현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공정 리스크를 사전에 예측하는 디지털 트윈 기반 스마트 생산관리 체계도 구축 중이다. 견적부터 설계·구매·생산까지 흩어진 데이터를 통합해 생산 흐름 전반의 효율을 높이는 것이 목표다.
자동화는 생산성뿐 아니라 안전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협소하거나 밀폐된 공간의 용접 등 위험도가 높은 작업을 로봇으로 대체하면 작업자 투입을 줄이는 동시에 공정 안정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 중국도 스마트야드 가세…생산성 경쟁 격화
다만 스마트야드를 둘러싼 생산성 경쟁은 국내 조선사만의 움직임은 아니다. 중국 역시 자동화와 디지털 트윈을 활용해 조선소 운영 효율을 높이려는 연구와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중국 조선소의 데이터를 활용한 연구에서도 디지털화의 효과가 확인됐다. 디지털 트윈으로 선박 블록의 운반 순서와 갠트리 크레인의 이동경로를 최적화한 결과, 연구 대상 작업에서 블록 이동거리는 약 6.8%, 작업시간은 약 7.1% 줄었다. 이는 특정 블록 인양·운반 공정에서 디지털화가 실제 이동거리와 작업시간 절감을 통해 작업 효율을 높였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중국이 기존의 낮은 인건비와 대규모 생산능력에 스마트조선소를 통한 생산성 향상까지 더해질 경우 국내 조선사는 기술력만으로 격차를 유지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또한 디지털 기술이 개별 공정을 넘어 조선소 전체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기존 설비와 데이터 시스템의 연계, 대규모 투자, 숙련인력 확보 등의 과제도 남아 있다.
실제 관련 연구에서도 디지털 트윈과 AI의 생산성 개선 가능성은 확인되고 있지만 조선소 전체를 대상으로 장기간 효과를 검증한 사례는 아직 제한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인건비 자체를 낮추기는 어려운 만큼 자동화를 통해 선박을 더 빨리 건조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며 "기술 격차가 좁혀질수록 생산성 향상을 통해 중국의 가격경쟁력에 대응하는 것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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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펜=김하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