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소희 기자] 정부가 농지 전수조사와 함께 농지은행의 농지 매입 대상을 농업진흥지역 밖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정책 실행 역량이 도마 위에 올랐다.
기존 농지 매입 수요와 농지연금 대기자조차 충분히 해소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매입 범위를 넓히면 대기 물량과 현장 업무 부담만 더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조사 이후 후속 조치를 담당할 인력과 예산 확보 방안이 구체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책 확대부터 강조하는 것은 현장 여건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접근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 임미애 의원은 14일 열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인중 한국농어촌공사 사장에게 농지 전수조사 이후 늘어날 수요를 농지은행이 실제로 감당할 수 있는지 집중적으로 따져 물었다. 농지 전수조사가 단순한 데이터 축적에 그치지 않으려면 조사 결과에 따른 농지 매입과 임대, 청년농 지원 등을 실행할 수 있는 인력과 재정부터 갖춰야 한다는 취지다.
임 의원이 제시한 한국농어촌공사 자료에 따르면 올해 공공임대형 농지 매입 수요는 6920ha인 반면, 매입 가능 물량은 3700ha 수준이다. 이에 따라 연말까지 3220ha의 매입 수요가 해소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물량을 해소하는 데만 추가로 1조2400억 원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됐다.
농지연금 대기자도 빠르게 늘고 있다. 2024년 1996명이던 대기자는 올해 9월 4038명으로 증가해 102.3%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농지은행의 기존 업무만으로도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농지 전수조사에 따른 추가 업무까지 맡게 되면 정책 실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 임 의원의 문제 제기다.
예산 부족 문제도 지적됐다. 임 의원은 농지은행이 부족한 재원을 연말 기금 변경 등을 통해 충당하고 있지만, 늘어나는 수요를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밝혔다. 농지연금 대기 수요 해소에도 409억 원의 추가 예산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재원 확보 방안을 따져 물었다.
청년농의 농지 확보 여건도 악화하고 있다. 청년농 공공임대 대기자는 2020년 760명에서 지난해 1758명으로 늘었다. 내년 맞춤형 농지지원 예산은 2조2617억원으로 편성됐지만, 임 의원은 기존 대기 수요조차 해소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추가 수요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했다.
임 의원의 비판은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밝힌 농지 매입 대상 확대 방침으로 이어졌다. 송 장관은 지난 13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농지은행의 매입 대기 물량을 언급하면서 농업진흥지역 밖 농지까지 매입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농지은행 예산도 올해보다 25% 증액한 규모로 편성해 국회 심의 과정에서 추가 확보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임 의원은 기존 수요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매입 대상만 확대하면 대기 물량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농지 매입 범위를 넓히는 정책 방향 자체보다 확대된 수요를 누가, 어떤 기준으로, 어느 정도의 예산을 투입해 처리할 것인지가 먼저 제시돼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정부가 농지 전수조사 결과를 토대로 농지 이용 실태를 개선하고 투기성 거래를 가려내겠다고 밝힌 만큼, 조사 이후 농지은행이 담당해야 할 업무 규모를 사전에 추산하고 인력·예산 대책을 마련했어야 한다는 비판이다. 조사와 제도 개선, 농지 매입 확대가 각각 추진되더라도 이를 연결할 집행 체계가 없다면 정책 효과를 담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농지은행의 업무량과 인력 증가 폭 사이의 격차도 이 같은 우려를 뒷받침한다. 임 의원에 따르면 농지은행 계약 건수는 2022년 이후 올해 9월 말까지 5만3889건에서 9만8000건으로 82% 증가했다. 같은 기간 인력 현원은 641명에서 684명으로 7% 늘어나는 데 그쳤다. 직원 1인당 처리 건수도 84건에서 143건으로 증가했다.
농어촌공사가 내년 인력 증원으로 91명을 요구했지만 실제 배정받은 인원은 20명에 불과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업무량은 급증하는데 인력 충원은 제한적인 상황에서 조사 후속 업무와 농지 매입 대상 확대까지 동시에 추진할 경우 현장의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어 임 의원은 “농지 전수조사를 데이터 축적으로 끝내면 실패한 정책”이라며 “농식품부는 농지은행이 마치 모든 현장 수요를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그에 필요한 인력과 예산, 기능을 갖추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농업진흥지역 밖으로 매입 대상을 확대하려면 명확한 기준을 세우고 업무를 수행할 준비가 돼 있는지부터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김인중 한국농어촌공사 사장은 업무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공공기관으로서 맡은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사장은 “직원들도 몇 달째 상당히 힘겹게 일하고 있다”면서도 “공공기관으로서 그 일을 할 수 없다고 할 수는 없는 만큼 최선을 다해 수행하겠다”고 말했다.
인력 확보와 관련해서는 정원 확대뿐 아니라 계약직 활용, 임금피크제와 연계한 인력 활용, 퇴직 전문가 활용 등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농어촌공사의 업무 수행 능력과 여력을 함께 걱정해 준 데 감사를 표하고, 인력 확보를 위한 지원을 요청했다.
송 장관의 농지 전수조사 후속 조치 방침과 관련해서는 처분 대상이 될 농지의 규모가 실제 업무 부담을 좌우할 것이라는 설명도 내놨다. 김 사장은 송 장관이 농지 조사와 관련해 처분명령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는 점을 언급하며, 관행적이거나 정상적인 농업경영 범위에서 이뤄진 행위는 문제 삼지 않고 투기적 거래를 중심으로 대응한다는 방향을 설명했다.
그는 “투기적인 거래가 어느 정도인지가 중요하다”며 “현재 그 규모를 판단하고 있고, 조사 결과에 따라 관련 업무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날 임 의원은 농지은행의 기존 업무만으로도 매입 대기 물량과 농지연금 대기자가 누적된 상황에서 조사 범위까지 확대하면 인력과 예산 부족이 심화할 수 있다는 지적과 함께 농지 전수조사가 단순한 데이터 축적에 그치지 않으려면 조사 이후 농지 처분과 매입, 청년농 지원 등을 뒷받침할 실행 역량부터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