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하늘 기자] AI 보급이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가운데 최근 국내에서 배터리 화재가 잇따르면서 안전성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ESS 설치 규모가 커지고 사용기간도 길어지는 만큼 초기 제품의 안전성뿐 아니라 장기간 운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열폭주와 노화, 시스템 이상을 어떻게 관리할지가 중요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12일 충남 당진의 한 리튬배터리 제조공장 완제품 창고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소방당국은 보관 중이던 리튬배터리에서 열폭주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같은 공장에선 지난 8월에도 화재가 발생해 리튬배터리 15톤과 창고 일부가 불에 탔다.
공장과 ESS는 시설 특성과 운용 방식에 차이가 있지만 최근 배터리 생산·보관 과정에서 화재가 반복되면서 대량의 리튬이온배터리를 다루는 산업 전반에서 열폭주 감지와 확산 방지 등 안전관리 필요성도 다시 부각되고 있다.
충남 당진시 합덕읍 리튬배터리 공장 화재. (충남소방본부 제공). / 사진=연합뉴스
◆ ESS 현장서도 반복된 화재…열폭주 확산 막는 게 관건
배터리 화재 위험은 생산·보관 단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실제 ESS 운영 현장에서도 화재와 폭발 사고가 반복돼 왔다.
△2019년 미국 애리조나주 서프라이즈 BESS 폭발 △2020년 영국 리버풀 카네기로드 ESS 화재 △2021년 중국 베이징 펑타이구 BESS 화재·폭발 △2021년 호주 빅토리아주 무라불 BESS 화재 △2022년 독일 보드네그 BESS 폭발 △2022년 경북 상주 BESS 화재·폭발 등이 대표적이다.
리튬이온배터리는 많은 에너지를 좁은 공간에 저장하는 만큼 이상 상황이 발생할 경우 열적으로 불안정해질 가능성이 있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특정 고장으로 열폭주가 발생하면 배터리 내부에서 급격한 온도 상승과 연쇄적인 화학반응이 일어나며, 이 과정에서 온도가 800~1000℃까지 오를 수 있다.
열폭주는 하나의 원인으로만 발생하지 않는다. 과충전과 과열, 내부 단락 등 셀 자체의 이상뿐 아니라 설치 불량과 충격, 유지보수 부족, 배터리관리시스템(BMS)과 냉각시스템 이상 등도 안전 리스크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특히 한 셀에서 시작된 열폭주가 주변 셀과 모듈로 전파되면 사고 규모가 커질 수 있다. 셀 간 거리와 모듈 구조, 열 차단재, 환기 방식, 가스 축적 여부 등도 확산 정도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된다.
결국 ESS 안전은 배터리 셀 자체의 성능뿐 아니라 이상 징후를 얼마나 빨리 감지하고, 사고가 발생했을 때 확산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차단하느냐까지 포함하는 문제다.
◆ 시장은 커지고 수명은 20년으로…장기 보증이 곧 '무사고'는 아냐
안전관리 중요성이 커지는 배경엔 ESS 시장의 빠른 성장과 함께 배터리 사용기간이 길어지고 있다는 점도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신규 배터리 저장장치 설치 규모는 108GW로 전년보다 약 40% 증가했다. 배터리 저장장치는 전력 분야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기술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시장 성장과 함께 장기 사용 경쟁도 본격화하고 있다. 중국 업체들이 ESS 장기 보증을 확대하면서 삼성SDI를 비롯한 국내 배터리업계도 최대 20년 수준의 보증을 내세우고 있다.
박종배 건국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동일하게 투자한 자원에 대해 보증기간이 늘어난다는 것은 결국 활용기간이 늘어난다는 의미"라며 "전기요금이나 전력산업 전체에 미치는 비용도 등가적으로 줄어드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정말 20년 동안 아무런 문제 없이 배터리가 가동될 수 있을 것이냐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라고 말했다.
배터리 보증은 일정 수준의 용량과 효율을 유지하는 성능 보증과 제품 결함에 대한 보증 등으로 나뉜다. 기업과 프로젝트에 따라 보증 범위와 조건도 다르다. 배터리는 사용 기간이 길어질수록 충·방전 횟수와 운전 온도, 사용 방식 등에 따라 내부저항과 용량 등 상태가 달라진다.
실제 한 연구는 계통연계형 배터리의 초기·중기·수명 말기 상태에 따라 최적 운전 방식과 경제성이 달라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에 따르면 배터리의 1회 충·방전당 에너지 출력은 사용 초기 약 95%에서 수명 말기에는 약 77% 수준으로 낮아졌다. 연구진은 이에 따라 배터리 건강상태(SOH)가 저하될수록 동일한 운전 전략을 유지하기보다 충·방전 시간과 횟수를 상태에 맞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다만 이를 단순히 '오래된 배터리일수록 위험하다'는 의미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같은 기간 사용한 배터리라도 온도와 충·방전 조건, 운전 방식, 유지관리 수준 등에 따라 노화 정도와 상태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장기 사용 시대에는 배터리의 사용연수 자체보다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운용됐고, 현재 어떤 상태인지를 지속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 셀만 봐선 부족…ESS, '시스템 안전'이 핵심
ESS 안전이 복잡한 이유는 배터리가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설비가 아니기 때문이다.
배터리 팩에는 BMS가 연결돼 셀의 전압과 전류, 온도 등을 감시한다. 이 밖에도 ESS에는 전력을 변환하는 전력변환시스템(PCS)을 비롯해 냉각·환기·화재감지·소화설비 등이 함께 설치된다.
배터리 셀 자체에 문제가 없더라도 이들 시스템 가운데 일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전체 설비의 안전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관련 연구에서도 단일 시험이나 특정 안전장치만으로 BESS 전체의 위험을 충분히 판단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셀과 모듈, 팩 뿐 아니라 BMS와 냉각·환기·소화·센서·비상대응 체계까지 함께 고려하는 통합적인 안전관리가 필요하다.
이는 ESS 사용기간이 길어질수록 더욱 중요해진다. 출하 당시 안전성 검증을 통과했다는 사실만으로 향후 10년, 20년간 변화하는 배터리와 주변 설비의 상태까지 모두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보증 기간이 길어질수록 기업이 장기간 성능과 안전 리스크를 함께 부담해야 하는 만큼 장기 보증 경쟁이 안전기술 투자 확대를 촉진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 교수는 "보증기간이 늘어나면 성능과 안전성이 중요한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며 "안전 문제가 발생할 경우 BESS 업체나 EPC 사업자 등이 관련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만큼 기업 입장에서도 안전 관련 기술에 투자할 유인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의 단가 하락 경쟁보다는 기술력을 확보하는 것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며 "가격경쟁력과 함께 안전성과 유지관리도 중요한 경쟁 요소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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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bani, M., & Yan, J. (2025). Optimization and evaluation of operational and economic performance of grid-connected battery storage at different stages of battery health. Energy Conversion and Management: X, 27, 101113.
[미디어펜=김하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