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해외건설은 건설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건설사가 현장에 들어가기 전 도로의 노선을 정하고 교량을 설계하며 사업비를 계산하는 한국 기업들이 있다. 공사가 시작되면 제대로 짓고 있는지 감독하고 때로는 발주처를 대신해 프로젝트 전체를 관리한다. 홍익기술단·동명기술공단·삼안·경동엔지니어링·동성엔지니어링·한국해외기술공사(KCI) 등이다. 이들의 이름은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시아·아프리카·남태평양의 도로와 교량, 도시 인프라 곳곳에 한국 엔지니어들의 설계도가 들어가고 있다. 미디어펜은 ‘K-엔지니어링, 세계를 설계하다’를 통해 세계 인프라 시장의 앞단을 개척하고 있는 한국 엔지니어링 기업을 추적한다. [편집자주]
제일엔지니어링이 아프리카 남부 에스와티니에서 추진되는 약 106㎞ 도로의 설계검토와 시공감리 용역 계약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사진=AI 생성 이미지
[미디어펜=서동영 기자]아프리카 남부의 소국 에스와티니에서 추진되는 대규모 도로 인프라 개선사업에 한국 엔지니어링 기업이 참여한다. 한국의 제일엔지니어링이 인도 기업과 함께 약 106㎞에 달하는 도로의 설계검토와 시공감리 용역 계약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아프리카개발은행(AfDB) 관련 계약 낙찰자료에 따르면 제일엔지니어링은 인도의 차이타냐프로젝트컨설턴시와 합작 컨소시엄을 구성해 에스와티니 도로 인프라 개선 프로그램 1단계 사업의 설계검토 및 시공감리 계약을 수주했다. 계약금액은 287만700달러이며 낙찰 기록일은 2026년 6월 10일이다.
이번 계약은 에스와티니 정부가 추진하는 총 1억7571만달러 규모 도로 인프라 개선 프로그램의 일부다. 도로 건설공사 자체가 아니라 설계의 적정성을 검토하고 시공 과정을 감독하는 엔지니어링 서비스 계약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제일엔지니어링, 에스와티니 도로 106㎞ 설계검토·감리 참여
에스와티니 정부는 국가 내 주요 지역을 연결하는 도로망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사업 대상은 시포파네니~시토벨라~말로마~은소코를 연결하는 MR14 도로와 말로마~시팜반웨니를 연결하는 MR21 도로다.
AfDB에 따르면 MR14 구간은 80.2㎞, MR21 구간은 25.7㎞로 두 도로를 합친 길이는 105.9㎞다. 도로는 에스와티니 동부 루봄보 지역과 남부 시셀웨니 지역을 통과한다.
이번 사업의 핵심은 기존 도로를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포장도로로 개선하는 것이다. AfDB는 도로 개선을 통해 교통 접근성을 높이고 지역 간 이동시간과 운송비용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제일엔지니어링이 참여한 컨소시엄의 계약 업무는 해당 도로의 설계검토와 시공감리다. 설계검토는 공사에 적용할 설계도면과 기술적 기준 등을 점검하는 업무다. 시공감리는 공사가 설계와 계약조건에 따라 적절하게 진행되는지 확인하고 품질과 공정 등을 감독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도로 건설사업에서 이러한 업무는 전체 공사의 품질과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중요한 과정이다. 특히 장거리 도로는 구간별 지형과 지반 조건, 배수시설, 교량 등 다양한 요소를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이번 계약금액은 287만700달러다. 다만 이는 제일엔지니어링과 인도 차이타냐프로젝트컨설턴시가 참여한 컨소시엄 전체 금액으로, 제일엔지니어링의 개별 수주액이나 지분율과는 구분해야 한다.
▲1억7571만 달러 도로사업…아프리카개발은행이 80% 지원
에스와티니 도로 인프라 개선 프로그램 1단계 사업은 AfDB와 에스와티니 정부가 공동으로 지원하는 국가 인프라 사업이다.
AfDB가 2026년 7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 사업비는 1억7571만 달러다. 이 가운데 AfDB가 약 1억4060만 달러를 지원하고 에스와티니 정부가 약 3510만 달러를 부담한다. AfDB의 지원 비중은 전체 사업비의 80%에 해당한다.
에스와티니 정부는 2026년 7월 초 사업 착공 행사를 열었다. AfDB는 해당 사업을 통해 도로 이용자의 이동시간과 운송비용을 최소 절반 수준으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사업 대상 지역인 루봄보와 시셀웨니는 농업자원이 풍부하지만 도로 인프라 부족으로 경제활동에 제약을 받아온 지역이다. AfDB는 열악한 도로 여건이 농산물의 시장 접근성을 떨어뜨리고 물류비용을 높여 지역경제 발전을 제한해 왔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업에는 도로 개선뿐 아니라 청년 기술교육과 지역사회 지원도 포함된다. AfDB에 따르면 200명의 청년에게 건설 관련 기술교육을 제공하고, 이 가운데 80명은 여성으로 구성할 계획이다. 교육 대상자 중 50명에게는 창업 관련 교육도 제공할 예정이다.
또 도로 주변 지역에는 소규모 급수시설과 학교, 보건시설, 시장 등 사회기반시설 개선사업도 추진된다. 에스와티니 정부는 도로 개선이 농업과 물류, 지역 간 교역 활성화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도로를 짓는 기업과 감독하는 기업…해외건설의 또 다른 시장
이번 계약은 한국 엔지니어링 기업의 해외 진출이 대형 건설공사 수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도로 인프라 사업은 계획과 설계, 발주, 시공, 감리 등 여러 단계로 나뉜다. 실제 공사를 수행하는 건설사가 있는 반면, 설계의 적정성을 검토하고 공사 진행 상황을 감독하는 전문 엔지니어링 기업도 필요하다.
특히 국제금융기구가 지원하는 대형 인프라 사업에서는 발주기관의 사업 수행을 지원하기 위한 별도의 컨설팅 및 감리 용역이 발주된다.
제일엔지니어링은 이번 에스와티니 사업에서 인도 기업과 공동으로 설계검토 및 시공감리 계약에 참여했다. 한국 엔지니어링 기업이 아프리카 현지 사업에서 다른 국가의 전문기업과 협력해 기술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이번 계약이 제일엔지니어링의 단독 수주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약 106㎞ 도로의 전체 건설공사 계약과도 구분된다.
해외 엔지니어링 시장에서 경쟁력을 평가하려면 계약금액뿐 아니라 실제 수행하는 기술적 역할과 사업관리 역량, 후속 사업 참여 가능성 등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
에스와티니 도로사업은 지역 주민의 이동과 농산물 운송, 경제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생활 인프라 사업이다. 이러한 사업에서 한국 기업이 설계검토와 시공감리를 맡는다는 것은 해외 인프라 시장에서 한국 엔지니어링 기술이 활용되는 또 하나의 사례다.
한국 기업들이 세계 곳곳에서 도로를 건설하는 동안, 또 다른 한국 기업들은 그 도로가 계획대로 안전하게 건설될 수 있도록 기술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엔지니어링업계 관계자는 "국내 엔지니어링사들은 국내 공공 발주 물량이 정체되면서 국제금융기구 사업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며 "용역 규모는 시공 계약보다 작지만 사업 초기부터 참여하는 만큼 후속 사업이나 한국 건설사의 진출로 이어지는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펜=서동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