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해외건설은 건설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건설사가 현장에 들어가기 전 도로의 노선을 정하고 교량을 설계하며 사업비를 계산하는 한국 기업들이 있다. 공사가 시작되면 제대로 짓고 있는지 감독하고 때로는 발주처를 대신해 프로젝트 전체를 관리한다. 홍익기술단·동명기술공단·삼안·경동엔지니어링·동성엔지니어링·한국해외기술공사(KCI) 등이다. 이들의 이름은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시아·아프리카·남태평양의 도로와 교량, 도시 인프라 곳곳에 한국 엔지니어들의 설계도가 들어가고 있다. 미디어펜은 ‘K-엔지니어링, 세계를 설계하다’를 통해 세계 인프라 시장의 앞단을 개척하고 있는 한국 엔지니어링 기업을 추적한다. [편집자주]
필리핀의 주요 간선도로 개선사업에 한국 엔지니어링 기업 다산컨설턴트가 참여한다. 계약금액은 865만4657.50달러이며 계약일은 2026년 3월 30일이다./이미지 생성=챗GPT
[미디어펜=박소윤 기자]필리핀의 주요 간선도로 개선사업에 한국 엔지니어링 기업 다산컨설턴트가 참여한다. 필리핀 사마르와 아구산 지역을 지나는 다앙마할리카 도로의 타당성조사와 상세설계 계약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이 공개한 계약자료에 따르면 다산컨설턴트는 필리핀 '사마르·아구산 다앙마할리카 도로 개선사업'의 타당성조사 및 상세설계 용역 계약자로 등록됐다. 계약금액은 865만4657.50달러이며 계약일은 2026년 3월 30일이다.
이번 계약은 도로 건설공사가 아닌 사업의 타당성을 검토하고 실제 시공을 위한 상세설계를 마련하는 기술서비스 계약이다. 특히 ADB 공식 계약자료에 다산컨설턴트가 단독 계약자로 기재돼 있다는 점에서 국제 컨소시엄을 통한 공동 참여 사례와 구별된다.
▲다산컨설턴트, 필리핀 주요 간선도로 타당성조사·상세설계 계약
필리핀은 여러 섬으로 구성된 국가로, 지역 간 이동과 물류를 지원하는 도로 인프라의 중요성이 크다. 이 가운데 다앙마할리카 도로는 필리핀의 주요 지역을 연결하는 간선도로망이다.
ADB가 공개한 '인프라 준비 및 혁신 지원시설' 계약자료에 따르면 다산컨설턴트는 사마르와 아구산 지역의 다앙마할리카 도로 개선사업을 위한 타당성조사 및 상세설계 계약을 체결했다.
전체 계약금액 865만4657.50달러 가운데 ADB가 금융지원하는 계약금액은 862만1679.36달러로 기록돼 있다.
계약자료에 기재된 수행사는 한국의 다산컨설턴트다. ADB 계약 목록에는 별도의 합작법인이나 국제 컨소시엄 명칭 없이 다산컨설턴트가 계약자로 등록돼 있다. 다만 현지 협력업체의 참여 여부와 세부 업무 분담은 공개된 계약 목록만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이번 용역은 사업의 타당성조사와 상세설계를 포함한다. 타당성조사는 도로 개선사업의 필요성과 기술적·경제적 실현 가능성을 검토하는 과정이다. 상세설계는 실제 공사 발주와 시공을 위해 도로 및 관련 시설의 기술적 내용을 구체화하는 단계다.
도로 개선사업에서는 기존 도로의 상태와 교통 수요, 지형 및 지반 조건, 배수시설, 안전성 등 다양한 요소를 검토해야 한다. 이러한 조사와 설계 결과는 이후 공사계획을 수립하는 데 중요한 기초자료가 된다.
다산컨설턴트가 확보한 계약은 한국 엔지니어링 기업이 해외 도로 인프라 사업의 초기 준비 단계에서 기술적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필리핀 인프라 준비사업의 일부…시공 이전 기술서비스 시장 진출
다산컨설턴트의 이번 계약은 필리핀 정부가 추진하고 ADB가 지원하는 인프라 준비 및 혁신 지원시설 사업의 일부다.
이 사업은 필리핀 정부가 추진하는 도로와 교량, 교통 및 기타 인프라 사업의 사전 준비를 지원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ADB의 사업자료에 따르면 필리핀 재무부가 사업 시행기관으로 참여하며, 공공사업도로부와 교통부 등이 관련 인프라 사업의 준비와 이행을 담당한다.
인프라 준비사업의 특징은 실제 건설공사와 별도로 타당성조사와 상세설계, 사업 준비를 위한 컨설팅 용역을 발주한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대형 도로 건설사업이 추진되기 위해서는 노선과 시설의 기술적 적정성을 검토하고 예상 사업비와 환경·사회적 영향을 분석하며, 공사 발주에 필요한 설계자료를 마련해야 한다.
사전 준비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으면 이후 공사 단계에서 설계 변경이나 사업비 증가, 일정 지연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타당성조사와 상세설계는 건설공사에 앞서 사업의 기술적 기반을 마련하는 핵심 단계로 평가된다.
이번 사마르·아구산 도로 개선사업에서도 다산컨설턴트는 직접 도로를 건설하는 시공사가 아니라, 도로 개선을 위한 조사와 설계 용역을 수행하는 엔지니어링 기업으로 참여한다.
계약금액 약 865만 달러 역시 도로 건설공사비가 아니라 타당성조사 및 상세설계 용역에 대한 금액이다. 전체 도로 개선사업의 건설비와는 구분해야 한다.
이번 계약을 통해 한국 기업이 필리핀의 주요 도로 인프라 사업에서 시공 이전 단계의 전문기술 서비스를 제공하게 됐다는 점이 주목된다.
▲도로를 짓기 전에 먼저 들어간다…한국 엔지니어링의 해외시장 확대
한국의 해외건설은 대형 건설사의 공사 수주를 중심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 해외 인프라 시장에는 공사를 수행하는 건설사뿐 아니라 사업의 타당성을 검토하고 설계를 담당하는 전문 엔지니어링 기업들도 참여한다.
특히 국제금융기구가 지원하는 개발도상국 인프라 사업에서는 건설공사 이전 단계의 조사와 설계, 사업관리 용역이 별도로 발주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업은 계약금액만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특징이 있다. 설계와 사업 준비 단계에서 마련된 기술적 판단이 이후 공사비와 사업 일정, 시설의 안전성과 유지관리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산컨설턴트의 필리핀 도로 설계 계약은 한국 엔지니어링 기업이 이 같은 해외 기술서비스 시장에 참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앞서 필리핀 중부 민다나오 고규격 고속도로 상세설계 사업에는 한국 유신이 일본·호주 기업과 함께 참여했다. 이번 다산컨설턴트의 계약은 ADB 공식 자료상 한국 기업이 단독 계약자로 등록됐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다만 계약자 명의가 단독으로 기재됐다는 사실만으로 실제 모든 업무를 한국 기업이 독자적으로 수행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현지 협력업체 활용 여부와 구체적인 수행체계는 별도 확인이 필요하다.
또 상세설계 계약을 확보했다고 해서 향후 도로 건설공사 수주까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설계 용역과 건설공사는 발주 범위와 계약 주체가 다른 별개의 사업이다.
그럼에도 해외 인프라 시장의 초기 단계에서 한국 기업이 기술적 역할을 맡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가 있다.
도로 건설의 출발점은 굴착기와 포장장비가 현장에 들어가는 순간이 아니다. 어떤 도로가 필요한지 검토하고, 어떻게 건설할 것인지 설계하는 과정에서부터 시작된다.
필리핀 사마르와 아구산의 도로 개선사업에 참여한 다산컨설턴트는 세계 곳곳의 인프라 개발 현장에서 한국 엔지니어링 기업들이 수행하는 또 하나의 역할을 보여주고 있다.
[미디어펜=박소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