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서동영 기자]서울 핵심 정비사업지에서 시공사들이 조합에 내놓은 새 단지명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옛 단지 번호나 이름, 동네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이름이 있는가 하면, 수십 년 불려온 옛 이름의 흔적을 완전히 지운 이름도 있다. 기존 단지가 쌓아온 상징성을 계승할지, 새 아파트의 차별화된 이미지를 구축할지를 두고 사업지마다 선택이 엇갈리는 모습이다.
'디에이치 클래스트에서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의 124를 강조한 디에이치 반포124./사진=현대건설
21일 도시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양천구 목동신시가지(이하 목동)13단지 재건축 우선협상대상자인 삼성물산은 새 단지명으로 '래미안 모브13'을 제안했다. 자사 아파트 브랜드 래미안에 유일함을 뜻하는 '모노(Mono)'와 '목동(Mokdong)'의 앞 글자 'MO', 프랑스어로 녹색을 뜻하는 '베르(Vert)'의 'VE'를 엮었다.
특히 1987년 입주 때부터 써온 기존 단지 번호 '13'을 그대로 살린 점이 눈에 띈다. 기존 단지 번호를 아라비아 숫자로 직접 표기한 이름을 제안한 점이 눈에 띈다.
목동10단지 시공사로 선정된 현대건설이 '디에이치 목동 에세르'를 내놓은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에세르'는 히브리어로 숫자 10을 뜻한다. 디에이치는 현대건설의 하이엔드 브랜드다.
조합원들이 기존 이름의 상징성을 새 단지명에 직접 반영한 사례도 있다.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조합은 이달 9일 총회에서 '디에이치 클래스트'를 '디에이치 반포124'로 변경했다. 10년 가까이 사용해온 기존 이름을 버리고 구역 번호를 살린 것이다. 조합원 투표에서 6개 후보 가운데 58.78%의 지지를 얻었다.
목동10·13과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는 하이엔드 브랜드를 강조하기보다 기존 단지의 역사와 상징성을 새 이름에 담는 쪽을 택했다고 볼 수 있다.
아예 건설사 브랜드를 떼 버리는 경우도 있다. 압구정이 대표적이다. 현대건설은 압구정3·5구역 입찰제안서에 자사 하이엔드 브랜드 '디에이치' 대신 '압구정 현대'를 단지명으로 내걸었다.
1970년대 중반 강남 개발과 함께 들어선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반세기 가까이 강남을 넘어 국내 고급 아파트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새로운 브랜드를 내세우기보다 오랜 기간 축적된 이름의 상징성을 계승하는 편이 유리하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9월 현대건설이 시공권을 따낸 압구정2구역(신현대 9·11·12차)도 '압구정 현대'라는 이름을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기존 단지의 이름을 지우고 새로운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사업지도 적지 않다. 여의도가 대표적이다. 지난 16일 여의도 시범아파트 시공사로 선정된 삼성물산은 새 단지명으로 '래미안 소넬리'를 제안했다. 소넬리는 기준(Standard)과 유일무이(One & Only)를 결합한 이름이다.
시범아파트는 1971년 준공 당시 엘리베이터와 중앙난방, 입식 주방 등을 갖춰 국내 아파트 주거문화의 변화를 이끈 단지로 꼽힌다. 하지만 새 이름에서는 '시범'이라는 기존 단지명을 찾아볼 수 없다. 삼성물산은 단지의 상징성을 이름으로 직접 계승하기보다 설계를 통해 재해석하겠다는 입장이다.
삼성물산이 앞서 여의도에서 수주한 대교아파트와 목화아파트도 각각 '래미안 와이츠'와 '래미안 와이니티'라는 새 이름을 제안받았다. 여의도(Yeouido)의 머리글자 'Y'를 반영했지만, 기존 단지명과의 직접적인 연결고리는 남기지 않았다.
지역명은 남기면서 건설사 브랜드를 결합하는 절충형도 있다. 롯데건설은 성수4지구에 하이엔드 브랜드 '르엘'에 성수(Seongsu)의 머리글자와 전체 층수 70층을 담은 '성수 르엘 S70'을 제안했다. 삼성물산은 성수3지구에 스웨덴어로 '절대적 가치의 영역'을 뜻하는 '레비르'를 활용해 '래미안 레비르 성수'를 내놨다. 지역 정체성은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브랜드를 통해 고급화 이미지를 더하려는 방식이다.
업계 관계자는 "재건축 단지명은 기존 단지가 쌓아온 역사와 상징성을 계승할 것인지, 새로운 브랜드를 통해 차별화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라며 "지역 내 인지도가 높은 단지는 옛 이름 자체가 경쟁력이 될 수 있지만, 새로운 주거 이미지를 강조하려는 곳은 기존 이름 대신 독창적인 브랜드를 앞세우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때문에 정비사업장에서는 단지명에 대한 고민이 많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디어펜=서동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