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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자본전쟁③] 은행 대신 사모자본이 돈 댄다…AI가 키우는 ‘1조달러 금융시장’

입력 2026-10-22 10:25:45 | 수정 2026-10-22 10:28:30
이원우 차장 | wonwoops@mediapen.com
[편집자주] AI 패권 경쟁의 다음 전장은 ‘돈’이다. GPU와 데이터센터, 전력망과 발전소까지 AI 인프라 구축에는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다. 현금부자 빅테크는 자체 자금으로 투자하지만 신생 AI 기업들은 회사채·사모대출·프로젝트금융을 통해 천문학적인 돈을 끌어오고 있다. 이제 GPU와 데이터센터, 미래 컴퓨팅 계약까지 금융자산으로 변하는 시대다. 하지만 고금리가 길어질수록 누가 더 싸게, 더 오래 자본을 조달하느냐가 AI 산업의 승패를 가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미디어펜은 [AI 자본전쟁] 5부작을 통해 AI가 만들어낸 새로운 자본시장의 구조와 월가의 돈 흐름, 위험과 기회, 한국 반도체 산업에 미칠 영향을 추적한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AI 데이터센터 투자 경쟁이 커지면서 월가의 돈줄도 바뀌고 있다.
과거 초대형 인프라 사업의 주된 자금 공급자는 은행이었다. 하지만 AI 데이터센터와 전력 인프라에 필요한 투자 규모가 수십억달러에서 수백억달러로 커지면서 전통 은행대출만으로는 자금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빈틈을 빠르게 파고드는 곳이 사모신용(private credit), 인프라펀드, 보험사, 연기금 등 비은행 금융자본이다.

과거 초대형 인프라 사업의 주된 자금 공급자는 은행이었다. 하지만 AI 데이터센터와 전력 인프라에 필요한 투자 규모가 수십억달러에서 수백억달러로 커지면서 전통 은행대출만으로는 자금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지고 있다./이미지 생성=미디어펜 AI룸



로이터에 따르면 모건스탠리는 AI 인프라 구축에 2028년까지 최대 1조5000억달러의 외부 금융이 필요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엔비디아 GPU와 서버뿐 아니라 데이터센터 건설, 발전설비, 송전망, 냉각시설까지 동시에 투자가 이뤄지면서 AI 산업이 글로벌 자본시장의 거대한 신규 차입처로 떠오르고 있다는 의미다.

국제결제은행(BIS)도 AI 투자 붐이 기업의 자체 현금흐름보다 부채와 사모신용을 통해 조달되는 비중이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AI가 반도체와 소프트웨어 산업을 넘어 글로벌 금융시장의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는 셈이다.

▲은행 밖으로 나온 돈…블랙스톤·블랙록·칼라일이 AI로 몰린다
사모신용은 은행이 아닌 자산운용사나 사모펀드 등이 기업에 직접 돈을 빌려주는 시장이다. 은행대출보다 금리가 높은 경우가 많지만 대출 조건을 유연하게 설계할 수 있고, 수십억달러 규모의 자금을 빠르게 집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AI 데이터센터 사업자에게는 특히 매력적인 자금원이다. GPU를 먼저 확보하고 데이터센터를 지은 뒤 고객에게 컴퓨팅 서비스를 판매하기까지 많은 돈이 선투입돼야 하기 때문이다. 은행 규제와 신용등급만으로는 자금을 충분히 조달하기 어려운 신생 AI 인프라 업체에게 사모신용은 사실상 성장 속도를 결정하는 핵심 금융수단이 되고 있다. 블랙스톤, 블랙록, 칼라일 같은 글로벌 대체투자 운용사들이 AI 인프라 금융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블랙록은 최근 12개월 동안 사모시장 투자를 위해 약 680억달러를 모집했으며 이 가운데 250억달러가 사모신용용 자금이었다.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은 AI 컴퓨팅 용량 자체가 향후 새로운 금융자산군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AI 인프라가 커질수록 단순히 엔비디아 GPU나 데이터센터 지분에 투자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출이자와 장기 컴퓨팅 계약에서 발생하는 현금흐름까지 투자상품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월가 입장에서는 AI가 새로운 대출 수요와 수수료 시장을 동시에 만들어주는 셈이다. AI 붐의 최대 수혜자가 반드시 반도체회사만은 아닐 수 있다는 얘기도 여기서 나온다. AI 기업들이 수천억달러의 자금을 계속 빌리는 한, 그 돈을 공급하는 금융회사 역시 장기간 이자와 운용보수를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돈줄 커질수록 위험도 커진다…BIS가 ‘불투명한 금융’을 경고한 이유
문제는 사모신용시장이 은행보다 상대적으로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상장채권처럼 거래가격이 실시간으로 공개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개별 대출의 담보구조와 차주의 실제 재무상태를 외부 투자자가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AI 데이터센터 금융은 더욱 복잡하다. GPU 가치, 데이터센터 부동산, 전력계약, 미래 컴퓨팅 매출, 마이크로소프트나 오픈AI와 맺은 장기계약 등이 하나의 금융구조 안에 함께 들어갈 수 있다. AI 수요가 계속 늘고 고객이 계약대로 돈을 지불한다면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금리가 높아지거나 GPU 가치가 예상보다 빨리 떨어지고, 고객이 계약을 줄이거나 데이터센터 가동이 지연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대출의 전제가 됐던 미래 현금흐름이 줄어들면서 금융회사도 손실을 떠안을 수 있다. 최근 시장은 이미 이런 위험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아시아 데이터센터 관련 인수합병(M&A)은 올해 213억달러로 지난해 전체의 두 배 이상을 기록했고, 대출·채권을 통한 부채조달도 223억달러에 달했다. 반면 주식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은 54억달러에 그쳤다.

투자자들이 AI 데이터센터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대신 장기 고객계약과 안정적인 매출이 있는 사업자와, 미래 성장 전망에 의존해 차입을 늘리는 신생 사업자를 훨씬 엄격하게 구분하고 있다.

AI 금융시장의 질문도 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AI 수요가 얼마나 커질 것인가”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누가 돈을 빌렸고, 누가 그 위험을 들고 있는가”가 중요해지고 있다.

AI 인프라가 수조달러 시장으로 성장할수록 반도체뿐 아니라 세계 금융시장의 부채 구조도 함께 커진다.
그래서 AI 자본전쟁의 또 다른 승자는 돈을 빌리는 기업이 아니라, 돈을 빌려주는 금융회사일 수 있다.
반대로 AI 투자수익률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가장 먼저 충격이 번질 수 있는 곳 역시 이 사모신용 시장일 가능성이 있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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