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소희 기자] 올여름 우리나라의 강수 양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전국적으로는 평년보다 비가 적게 내렸지만, 일부 지역에는 짧은 시간 동안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강수량의 시·공간적 편차가 커지면서 한쪽에서는 가뭄 우려가, 다른 한쪽에서는 집중호우에 따른 홍수 위험이 동시에 나타났다.
이처럼 예측하기 어려운 기상 여건 속에서도 정부는 기존 수자원 시설을 활용한 홍수조절용량 확보와 인공지능(AI) 기반 홍수예보 고도화, 도시침수예보 제도 도입 등을 통해 선제적인 대응에 나섰다. 정부는 이 같은 대책을 바탕으로 올여름 기록적인 국지성 집중호우에도 홍수로 인한 인명·재산 피해를 최소화했다고 밝혔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3일 발표한 ‘2026년 여름철 홍수 대응 성과’에 따르면 올해 전국 여름철 강수량은 558.6㎜로 평년(727.3㎜)의 76.1% 수준에 머물렀다. 강수일수 역시 31.2일로 평년보다 7.3일 적었으며, 장마철 강수량도 평년의 60.3%에 그쳤다.
하지만 일부 지역의 상황은 달랐다. 8월 15일부터 18일까지 경남 거제시에는 1시간 최다 강수량 124.5㎜가 기록돼 기존 극값인 104.0㎜를 경신했다. 나흘간 누적 강수량은 968.1㎜로 평년 연 강수량의 절반을 넘어섰다. 8월 30일부터 31일까지는 충청·전라 지역을 중심으로 많은 비가 내렸으며, 전남 보성과 영광에는 시간당 100㎜ 이상의 재난성 호우가 발생했다.
반면 비가 일부 지역에 집중되면서 남부지역에는 가뭄도 나타났다. 올해 1월 1일부터 8월 15일까지 남부지역 누적 강수량은 571㎜로 평년의 63% 수준에 불과했다. 9월 26일 기준 섬진강댐 저수율은 예년 대비 31.9%, 운문댐은 38.7%에 그쳤다. 홍수와 가뭄이라는 상반된 재난이 동시에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우선 추진한 대책은 기존 수자원 시설의 활용도를 높이는 것이었다. 기후부는 농림축산식품부 등 관계기관과 협력해 농업용 저수지와 발전댐, 하굿둑 등 본래 홍수조절을 목적으로 설계되지 않은 시설까지 홍수 대응을 위한 '숨은 물그릇'으로 활용했다.
이를 통해 추가로 확보한 홍수조절 여력은 총 10억4000만 톤이다. 한탄강댐 약 3개 규모에 해당하는 양이다. 신규 댐 건설에 약 4조 원의 예산과 장기간의 공사가 필요한 것과 비교하면 기존 시설을 연계 활용해 단기간에 홍수 대응 능력을 높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시설 본래의 용수 공급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운영해 홍수 대응과 가뭄 대비를 함께 고려했다.
기존 다목적댐 등도 강우 상황을 고려해 사전 방류를 적극적으로 실시했다. 그 결과 댐 수문 방류 횟수는 지난해 69회에서 올해 23회로 줄었다. 다목적댐은 22회에서 3회로, 용수댐은 4회에서 0회로 감소했다. 발전댐은 43회에서 20회로 줄어 하류 지역의 홍수 부담을 낮추는 데 기여했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홍수예측 체계도 한층 촘촘해졌다. 정부는 AI 기반 홍수예보를 통해 국가하천뿐 아니라 홍수에 취약한 지류·지천까지 예측 범위를 확대했다. 전국 223개 홍수특보지점의 수위를 AI가 10분 간격으로 자동 예측하고, 홍수 예보관이 실제 수위 변화와 물리 모형 분석 결과 등을 비교·검증하는 이중 확인 체계를 운영했다.
올해 발령한 홍수특보는 총 38회로, 주의보 31회와 경보 7회다. 관계기관에는 홍수 정보 1532건과 홍수취약지구 관련 정보 233건을 전달했다. 특보 발령 시 문자와 음성 메시지, 안전안내문자 등을 통해 정보를 신속히 전파해 지방정부와 관계기관의 사전 대응을 지원했다.
도시지역의 침수 위험을 사전에 알리는 제도도 올해부터 시범 운영됐다. 기후부는 2024년 3월 시행된 ‘도시하천유역 침수피해방지대책법’을 근거로 서울 강남역·신대방역 일원 등 침수 위험이 높은 6개 자치구에 도시침수예보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시스템은 침수 범위와 깊이를 예측해 침수가 예상되면 ‘침수주의보’를, 침수가 발생했거나 발생이 확실시되면 ‘침수경보’를 발령하는 방식이다. 예보가 내려지면 지방정부와 경찰·소방 등 관계기관이 출입 통제와 차수판 설치 등 현장 조치에 나서도록 대응체계도 마련했다.
실제 지난 7월 9일 낮 12시 40분께 도림천 신대방역·신림역·보라매역 인근의 하천과 하수도 수위가 상승하자 제도 도입 이후 처음으로 침수주의보가 발령됐다. 해당 자치구 주민들에게는 안전안내문자를 통해 관련 정보가 전달됐다.
정부는 올해 시범 운영 성과를 평가하고 연말까지 전국 확대 종합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 이후 2030년 홍수기 전까지 6개 광역시에 시스템을 확대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취약지역에 대한 사전 점검과 시설 정비도 병행됐다. 홍수취약지구는 지난해 799곳에서 올해 893곳으로 확대 지정됐으며, 홍수기 전후로 총 1,790회의 점검이 이뤄졌다. 제방 등 하천시설 5,248곳과 댐 63곳도 점검 대상에 포함됐다.
전국 약 423만 개 빗물받이는 반복적인 청소와 준설을 통해 누적 898만 회 정비됐으며, 우수관로도 1만59㎞ 구간을 대상으로 총 1만7688㎞의 준설이 이뤄졌다. 하천 내 불법 점용시설 356건 가운데 260건도 정비됐다.
올여름 집중호우 대응 과정에서는 접경지역의 북측 댐 방류에 대한 감시와 대응도 이뤄졌다. 정부는 위성영상 모니터링 횟수를 하루 2회에서 최대 4회로 늘려 황강댐 방류 징후를 감시했다. 7월 20일부터 30일까지 집중호우 기간 중 북측 황강댐 방류로 임진강 수위가 상승하자 관련 정보를 신속히 전파하고 군남댐과 한탄강댐을 연계 운영했다. 하류 하천 순찰 29회와 행락객 등 30명에 대한 위험 안내를 통해 안전한 대피를 유도했다.
올여름의 대응 성과가 있다지만 앞으로의 홍수 위험까지 해소된 것은 아니다. 기후부에 따르면 거제시 집중호우 당시 정전 1907세대, 단수 6967세대와 공공 하수처리시설 침수 등의 피해가 발생했다. 관련 복구는 모두 완료됐지만, 극한호우에 따른 기반시설 피해 가능성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정부는 앞으로 홍수와 가뭄이 동시에 발생하는 복합재난에 대비해 댐과 저수지, 하굿둑 등 수자원 시설 간 연계를 강화할 방침이다. 기후변화로 강수의 불균형과 극한 기상현상이 심화할 가능성에 대비해 관계기관 간 협업 체계도 지속적으로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올여름 강수 현황은 더 이상 전국 평균 강수량만으로 홍수와 가뭄 위험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줬다.
기존 수자원 시설의 활용, AI 기반 예측, 도시침수예보 제도는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적 시도다. 앞으로는 확보한 홍수조절 여력과 예측 시스템이 실제 재난 현장에서 얼마나 신속하고 정확하게 작동하는지, 또 시범 도입된 제도가 전국으로 확대돼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실질적인 안전망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