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배소현 기자] 정부가 내년도 인공지능(AI) 예산을 9조4000억 원 규모로 편성하면서 기업들이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지원 사업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기술 개발에 필요한 연산 자원부터 제품 상용화와 판로 확보까지 기업의 성장 단계에 맞는 지원이 중요하다는 분석이다. 특히 자체적으로 고가의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확보하기 어려운 중소 AI 기업들이 정부 지원을 얼마나 활용할 수 있을지가 주목된다.
3일 업계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편성한 2027년도 AI 예산은 9조4211억 원으로, 독자 AI 모델 개발과 GPU 확보 등 핵심 기술 경쟁력 강화에 상당한 재원이 배정됐다.
예산안 가운데 최상위 AI 모델·기술 확보에는 5조5937억 원, AI 서비스·활용 분야에는 1조8611억 원이 편성됐다. GPU 확충에 배정된 예산만 3조8500억 원에 달한다.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확보하기 어려운 연산 자원을 국가 차원에서 마련해 기술 개발과 서비스 운영에 활용하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GPU는 AI 모델 학습과 서비스 운영에 필요한 핵심 장비지만 구매와 운영에 상당한 비용이 든다. 특히 자금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충분한 연산 자원을 확보하지 못하면 기술 개발이나 서비스 확대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정부의 GPU 확충이 기업 지원으로 이어지려면 실제 이용 가능한 자원의 규모와 배분 방식이 중요하다. 확보한 GPU가 일부 대형 연구개발 사업에 집중될 경우 일반 기업의 활용 기회는 제한적일 수 있다. 기업별 신청 자격과 이용 기간, 배정 물량에 따라 지원 효과도 달라질 수 있다.
◆ GPU 확보부터 제품 판매까지… 기업 지원의 실효성은
현재 정부는 중소 AI 기업의 기술 개발과 사업화를 위한 여러 지원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의 고성능 컴퓨팅 지원사업이다. 기업이 고가의 GPU를 직접 구매하지 않고도 AI 모델 개발과 서비스 실증에 필요한 연산 자원을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올해 사업에서는 국내 중소·벤처기업 등을 대상으로 약 505개 기업에 GPU 자원을 지원할 계획을 제시했다. 지원 유형에 따라 엔비디아 A100과 H100·H200 등을 제공하며, 별도로 약 100개 기업·기관을 대상으로 국산 AI반도체 기반 컴퓨팅 자원 지원도 추진됐다.
정부가 확보한 첨단 GPU를 산업계에 제공하는 사업도 운영되고 있다. 올해 3월 기업 등을 대상으로 활용 신청을 받았으며, 이후 배분 가능한 물량에 따라 추가 접수를 진행하는 방식도 마련했다. 실제 이용 가능 여부는 확보 물량과 신청 수요, 선정 절차 등에 따라 달라진다.
기업의 AI 도입과 솔루션 판매를 지원하는 사업도 있다. 올해 AI 통합 바우처 지원사업에는 276억2500만 원의 예산이 편성됐으며, 선정 과제에 최대 2억 원을 지원하도록 했다. 중소·벤처·중견기업과 소상공인 등이 AI 솔루션을 구매할 때 비용 일부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AI바우처는 솔루션을 공급하는 기업에 새로운 고객을 확보할 기회를 제공하고, 수요기업에는 초기 도입 비용을 줄여준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수요기업과 공급기업이 함께 신청해야 하며 사업비 일부는 민간에서 부담해야 한다. 기업의 자금 여력과 사업 준비 수준에 따라 참여 가능성이 달라질 수 있다.
현재 운영 중인 사업의 지원 규모와 조건이 내년에도 그대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내년도 예산안이 국회 심의를 거쳐 확정되면 세부 사업별 지원 대상과 규모, 신청 기준 등이 구체화될 예정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연산 자원을 확보하는 것과 개발한 기술을 실제 시장에 판매하는 것이 서로 다른 문제다. GPU 지원으로 AI 모델이나 서비스를 개발하더라도 이를 도입할 고객사를 확보하고 현장에 적용하는 과정에는 추가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기술 실증 이후 제품 고도화와 판로 개척 등을 지원하는 사업의 역할도 중요하다.
특히 중소 AI 기업은 대기업과 비교해 자체 인프라와 영업망이 제한적인 경우가 많다. 정부 지원 기간이 끝난 이후에도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고객을 확보할 수 있어야 지속적인 사업이 가능하다. 이에 업계에서는 지원 기업 수뿐 아니라 실제 매출과 사업화 성과까지 종합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아울러 업계에서는 내년도 AI 예산 확대가 기업의 기술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지원 사업의 접근성과 사업화 연계가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기업의 규모와 기술 개발 단계에 따라 필요한 자원이 다른 만큼 GPU 이용부터 제품 실증, 초기 시장 진입까지 지원 체계를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업계 내 한 관계자는 "AI 산업 지원의 실효성은 예산 규모보다 기업이 확보한 기술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사업화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며 "연산 자원 지원과 함께 실증 환경, 초기 수요처 확보 등을 연계하고 지원 종료 이후의 매출과 시장 안착 여부까지 성과 지표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