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없는 복지 없어…정치권 '무상시리즈' 국가 부도 위기 자초

증세 논의에 앞서 포퓰리즘 자성과 무상복지 구조조정을


   
▲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1. ‘예고된 재앙’ 그리고 ‘여·야 대리전’으로의 확산
인기를 끌기 위해 충분한 재원조달 대책 없이 확대됐던 각종 무상복지 프로그램이 재원 부족으로 좌초될 위기에 처해 있다. 이른바 ‘복지 디폴트(부도)’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디폴트라는 최악은 피할 수 있겠지만 그에 따른 혼란과 갈등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복지대란은 돌출된 것이 아니다. 충분히 예견되었던 것으로 경기 부진과 세수 부족으로 그 시기가 앞당겨졌을 뿐이다. 이달 5일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도(道) 교육청에 대한 무상급식 예산 지원 중단을 선언하면서 무상복지는 파열음을 내기 시작했다. 파열음은 무상교육과 기초연금 등으로 파급되었다.

서울시 구청장협의회는 지난 13일 내년 무상보육과 기초연금 증액분에 들어가는 1,182억원에 대해 예산을 편성하지 않겠다고 결의했다. 국고보조사업에 구비 부담금을 반영하면 사회기반 시설 유지관리비조차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이 각 구청들의 주장이다.

무상보육 국비 지원율을 20%에서 40%로 인상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관철되지 않아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지자체 외에 서울 등 일부 교육청들도 어린이집 무상보육 예산을 내년엔 3개월분만 지원하겠다고 밝혀 파행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재원부담을 둘러싼 중앙정부와 지자체, 교육청 간의 갈등은 ‘여·야’로 전선이 확대되었다. 여당은 정부 편에서, 야권은 지방정부와 교육청 편에서 일종의 ‘대리전’을 치르고 있다. 여당은 무상 보육비와 급식비를 법에 정해진 원칙대로 지방 정부와 교육청에서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야당과 지방정부·교육청은 정책의 지속성 차원(또는 대선공약 차원에서)에서 정부가 부족분을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야당은 만약 여당과 정부가 야당 입장을 수용하지 않으면 2015년 예산 중 ‘박근혜 표’ 예산을 분리해 삭감 의지를 밝힘에 따라 무상복지를 둘러싼 갈등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2. 복지재원 마련을 위한 법인세 인세 주장
 

야권은 무상복지 재원마련을 위해 ‘부자증세’ 논쟁에 불을 지피고 있다.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0일 비대위 회의에서 “무상급식과 무상보육 모두를 지속하려면 증세로 갈 수밖에 없다”며 이를 위해 사회적 대타협기구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새정치연합 우윤근 원내대표도 MBC라디오 인터뷰에서 “2008년 이전으로 법인세율을 환원, 소위 부자감세를 철회하면 연 5조원 이상의 세수가 확보될 수 있다”면서 법인세 인상을 통한 부자증세를 촉구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도 지난 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소득주도성장' 2차 정책토론회 기조연설에서 “장기적으로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증세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면서 “당장이라도 부자감세를 철회해 복지재원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대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정부와 여당의 입장은 다르다. 무상복지 파탄은 기본적으로 세수부족에서 오는 만큼, 지금은 경제 활성화를 통해 ‘세수기반’을 확대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것이다.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을 확대하고 금리를 인하하는 총력전을 펼치는 중에 갑작스러운 증세는 경기부양을 가로막는 극약처방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특히 법인세 인상은 외국자본의 국내유입에 손사래를 치는 셈이라는 것이다.

3. 포퓰리즘에 대한 고해성사가 앞서야

포퓰리즘은 민주주의 시스템의 병이다. ‘페로니즘’ 이후 포퓰리즘이 득세한 중남미 9개국에서 집권했던 전직 대통령들의 공통된 ‘고해성사’다. 지난 19일 파라과이 아순시온에서 열린 ‘글로벌피스컨벤션 2014’에 참석한 14명의 전직 중남미 대통령은 “빈곤층에 대규모 무상지원을 했지만 빈곤은 계속되고 있다”며 “대통령 재직 시 포퓰리즘을 제대로 막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남겨진 유산은 ‘재정적자와 빈곤탈출의 실패 그리고 저성장“이라는 것이다.1) 카를로스 메사 전 볼리비아 대통령은 “포퓰리즘은 사람들에게 생선을 잡는 법을 가르치지 않고 생선을 나눠주는 방식”이라며 “포퓰리스트는 부(富)가 어떻게 생산되는지와 정당한 소득 분배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고 비판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무책임한 정치와 당장의 당근에 현혹되기 쉬운 유권자는 민주주의를 변질시키는 최악의 조합이다. ‘공짜 복지 시리즈’의 파탄은 오래 전부터 예고돼 있었다. 기초연금을 포함한 3대 무상복지 지출은 올해 21조원, 그리고 2017년에는 30조원까지 늘어나게 돼 있다. 지난해엔 지방채 발행 등으로 카드빚 막듯이 간신히 돌려 막았으나 더 이상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이제 정치권과 우리 사회는 무상 포퓰리즘의 전반을 되돌아봐야 한다. 복기(復棋)해 보면, 선거철마다 정치권이 세금이 들어가야 할 복지 공약을 ‘무상’으로 포장했던 것이 문제였다. 파티가 끝나고 감당할 수 없는 계산서가 돌아오자 ‘정치 공방’으로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책임공방으로 무상복지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차제에 누수 많고 주먹구구인 복지 전달체계를 대폭 손질하고, 선거를 앞두고 급조된 불요불급한 복지 지출를 ‘구조조정’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낙인효과’를 피하기 위해 고소득층 아이들에게까지 공짜 점심을 주어야 한다던 좌파의 주장은 지나쳐도 한참을 지나친 것이다.

저소득층의 경우 국가가 주는 급식이 부끄러울 이유는 없다. 그렇게 느꼈다면 이는 ‘교육’이 잘 못된 것이다. 그리고 전업주부에게까지 근로여성(워킹맘)과 똑같은 수준의 보육을 지원하는 것은 ‘형평을 위해 효율을 희생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증세 논의 이전에 정치권의 고해성사와 불요불급한 복지지출의 구조조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4. 정치권만 모르는 ‘무상복지에 대한 국민인식’


한국갤럽이 최근 실시한 무상복지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는 실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3) 무상보육 및 무상급식과 관련해 국민들은 ‘보편적 복지’보다 ‘선별적 지원’을 더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상급식에 대해서는 <그림-1>과 같이, ‘재원을 고려해 소득 상위 계층을 제외한 선별적 무상급식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전체의 66%를 차지한 반면, ‘정부 지원을 늘려서라도 소득에 상관없이 전면 무상급식을 계속해야 한다’는 응답은 31%에 그쳤다. 영유아 무상보육에 대한 여론도 비슷했다. <그림-2>에서와 같이 전체 응답자의 64%가 ‘선별적 실시’를 지지한 반면, ‘전면 무상지원을 계속하기 위해 정부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응답자는 33%에 불과했다.

무상보육과 무상급식 예산 간 우선순위는 <그림-3>에서와 같이 무상보육이 무상급식보다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상보육이 더 시급하다고 본 응답자는 전체의 52%로 무상급식(38%)보다 많았다. 이는 무상보육이 출산율을 높이는 일종의 ‘사회적 투자’로 인식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미취학 자녀를 둔 응답자의 61%가 ‘무상보육 전면 실시’를 원했고, 초·중학생 자녀를 둔 응답자의 경우 전체 응답자 비율인 52%보다 적은 40%만이 무상보육이 더 우선한다는 의견을 나타냄으로써, 복지 수혜자의 ‘복지 제도 변경에 대한 저항’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통상적으로 ‘보편적 복지’ 혜택을 누리려는 성향이 있음을 감안할 때, ‘선별적 복지’의 손을 들어 준 설문응답 결과는 의미심장하다. 추측컨대, 선거가 끝나고 복지대란이 예상되는 시기에 행해진 설문조사라 응답자들이 이런 저런 인기영합적인 선동에 휘둘리지 않고 냉정하게 설문에 응답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다면 오직 정치권만 “무상복지를 구조조정할 수도 있다”는 여론 동향을 읽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5. 정쟁에 포획된 부자감세 논쟁
 

부자감세는 야권의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이다. 부자감세는 이번 말고도 과거에도 수시로 등장한 단골메뉴다. 다음은 2012년 18대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민주통합당 대표 한명숙의 발언 일부를 인용한 것이다. “이명박 정권 4년 동안 1%의 특권층에게는 100조원의 가까운 세금을 왕창 감세해줬다.

재벌기업들에게 특혜를 줬다. 그러나 우리 서민들에게는 너무나 추운 겨울이었다. 그동안 고통 받고 힘들었다.” 부자감세는 그 진위를 떠나 일반대중을 분노하게 한다. 부자가 소득에 걸맞은 세금을 내지 않아 자신의 세금부담이 커진 것으로, 그리고 저소득층인 자신의 복지혜택이 줄어든 것으로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국가 권력’과 ‘경제 권력’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결탁한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부자감세의 ‘프레임’ 효과는 이렇게 위력을 발휘한다.
 

2012년 한명숙이 주장한 ‘민주당의 부자감세 100조원’의 논거는 <표-1>로 요약된다. 노무현 정부 조세제도가 유지됐을 경우의 ‘가상’ 조세부담률(A)과 이명박 정부 조세부담률(B) 간의 차이를 경상 국내총생산(GDP)에 곱해 계산한 것이다. 조세부담률을 기준으로 5년 동안 99조5000억원의 부자감세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감세도 아닌 부자감세’ 논리는 저급한 견강부회가 아닐 수 없다.
 

   
 

이번에도 새정치연합은 ‘전가의 보도’인 부자감세를 주장하고 있다. 복지파탄이 일어난 것도 부자감세로 세수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부자 감세를 원상회복 시키면, 즉 증세를 하지 않더라도 복지재원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 인식과 주장은 ‘사실(fact)’과 동떨어진 것이기에 ‘정치 과잉’으로 본질을 놓치고 있다. <표-2>는 감세가 이루어진 2008년부터 2013년 세수효과와 세부담 귀착을 정리한 것이다.
   
 
<표-2>에서 보듯이 대기업은 2008년에만 부담이 줄었을 뿐, 그 후 지난해까지 5년 동안 2008년 감소분을 메우고도 10조9000억 원을 더 부담했다. 대기업의 ‘최저한 세율’이 최근 5년 동안 14%에서 17%로 단계적으로 올랐고, ‘고용창출 투자세액 공제’ 등 비과세·감면 혜택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반면 중소기업의 세 부담은 같은 기간 모두 11조9000억 원이나 줄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소득세 최고 세율을 내린 적이 없다. 중·저소득 구간의 세율을 내렸고 오히려 최고소득 구간의 세율을 38%로 신설해 ‘부자 증세(增稅)’를 단행했다. 그 결과 2008년부터 5년 간 고소득층은 누적액으로 4조2000억 원을 더 부담했고, 중산·서민층은 누적액으로 30조6000억 원을 경감 받았다.
 

세금은 세율에 의해 기계적으로 걷히지 않는다. 연도에 따라 세금이 적게 걷힌 것은 부자감세가 아니라 성장이 지체됐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세수실적을 보면 경제성장률이 5%를 넘었던 2006·2007·2010년에는 세수가 목표치를 웃돌았지만, 신용카드 대란(2003), 글로벌 금융위기(2009), 대선과 총선(2012) 등으로 성
장률이 뚝 떨어진 해에는 예외 없이 세수가 목표치에 미달했다.

6. 법인세 증세 논리의 타당성 검토

법인세율을 올려 복지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주장은, 법인세를 부자에게 부과하는 세금으로 오해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법인세는 직접세지만 소득세와 달리 상위 계층을 타깃으로 부과하는 세금이 아니다. 또 그렇게 할 수도 없다.

따라서 ‘고통 분담과 국민통합’ 차원에서 법인세율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법인세가 부과되면 그 부담은 결국 주주·근로자·납품업자·소비자 등 이해관계자 모두에게 전가된다. 이처럼 법인세는 소득재분배 기능을 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나라에서 단일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그러면 한국은 법인세를 충분히 걷고 있는 가. <그림-4>는 GDP 대비 법인세 비중을 OECD평균에 비교해 나타낸 것이다. <그림-4>에서 보듯이,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증가한 우리나라의 GDP 대비 법인세수 비중은 2000년 3.2%를 기록하고 그 이후 추세적으로 증가해 2008년 4.2%를 기록함으로써 OECD 평균을 상회하고 있다.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GDP 대비 비중이 하락해 2010년에는 3.5%로 낮아졌지만 2011년 4.0%로 반등해 여전히 OECD 평균을 상회하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은 한마디로 OECD 평균 보다 법인세를 더 내고 있다.

   
 

우리나라의 법인세 부담 분포는 어떠한 가. <표-3>은 총부담세액 규모별 평균실효세율 및 법인세 부담 분포를 나타낸 것이다. 표에서 보듯이 법인들이 부담하는 총부담세액 규모가 커질수록 해당 법인 수 비중은 축소되고 총부담세액 비중은 확대되며, 평균 실효세율은 지속적으로 확대되다가 5,000억원 초과 구간에서 크게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법인세 ‘실효세율’은 1,000억원~5,000억원 구간에서 가장 높은 19.3%를 보이고 있으며 이후 5,000억원 초과 구간에서 14.7%로 낮아지고 있다. 총법인세부담액이 5,000억원을 넘는 대기업의 법인세 실효세율이 중소.중견기업들보다 낮게 나타나는 사실을 포착해 일각에서는 대기업의 법인세 부담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하지만 기업규모가 커짐에 따라 법인세 실효세율이 낮아지는 것은 미국이나 호주와 같이 우리나라 보다 높은 수준의 법인세율을 부과하는 국가들의 경우에도 평균 실효세율이 낮아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각종 투자 및 R&D지출세액공제를 받아서 인 것으로 판단된다.
 

   
 

우리나라 법인세 부담의 ‘집중도’는 매우 높게 나타나고 있다. 법인 수 비중이 가장 높은 총부담세액 구간은 5,000만원 이하 구간으로 전체 법인의 47.55%인 21.9만개 법인들이 총 4.19%의 법인세를 부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반면 법인세 부담액이 10억원을 초과하는 기업들은 전체의 0.61%에 불과한 2,818개로, 이들이 부담하는 법인세 비중은 전체 총부담세액의 82.67% 수준이다. 총부담세액이 1,000억원을 초과하는 법인수는 53개로 전체의 0.01%에 불과하지만 총부담세액 비중은 39.6%에 달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법인세 부담이 일부 대기업에 편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법인세 부담의 극단적인 집중도를 감안할 때, 새정치연합이 구상하듯이 법인세율을 높여 “추가로 법인세를 더 징수할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세금은 세율을 올린다고 더 걷히는 것이 아니라 세금이 포착되는 과세기반이 넓어질 때 비로소 더 걷히는 것이다.

한편 법인세는 조세왜곡이 여러 세목 중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교과서적 지식이다. 조세의 ‘효율비용’(efficiency cost)은 “법인세-소득세-소비세-관세” 순이다. 많은 나라들이 법인세에 손을 대지 않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무상복지재원 조달을 위한 법인세 인상”은 가장 큰 정책 패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 소득세를 올릴 수 있는 가를 검토해 보자. <표-4>는 2013년 세법개정에 따른 증세안을 정리한 것이다. 소득세율과 소득구간을 변경하지 않고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해 증세하는 안이다. 원안대로 하면, 총급여 4,000만원~7,000만원 구간에서 ‘연 16만원’을 더 걷는 것이다. 하지만 “중산층 범위 설정과 봉급생활자 유리지갑 논쟁”을 거치면서 원안은 수정안으로 후퇴했다. 한국적 현실에서 증세는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선택지는 ‘무상복지의 구조조정’이다.

   
 

7. 무상복지 현황 및 지속가능성
1 무상보육

   
 
<그림-5>는 2011년 이후 무상보육 예산 추이와 2013년 기준 지방교육재정 사업별 지출 비중을 나타낸 것이다. 2014년 무상보육 예산은 2011년 대비 4.0배 증가했다. 누리과정은 어린이집과 유치원 등 보육기관에 다니는 3~5세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무상 보육을 의미하는 바, 애초에는 소득 하위 70% 이하인 만 5세 아동에 대해서만 지원을 했다.

그러던 중 2011년 정부가 누리과정을 모든 소득계층으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하고 2012년 3월에 해당 아동 모두에게 매달 20만원씩 지원하기 시작하면서, 보육예산이 급팽창했다.
 

누리과정과 무상 급식으로 대변되는 ‘무상 복지’에 들어가는 교육재정은 전체 교육청 예산의 9.1%에 달한다. 이는 시설보수 등 학교개선 사업에 들어간 재정비율(7.8%)보다 큰 값이다. 교육예산이 교육 사업이 아닌 무상복지라는 ‘정치적 공약’에 더 많이 투입되는 모순이 발생한 것이다. 지금까지 누리과정 예산은 지방자치단체에서 30%, 각 시도교육청에서 70%를 부담해왔는데 2015년부터는 정부와 교육청 합의에 따라 전액을 교육청에서 부담해야 한다.

무상보육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소득하위 70%의 소득계층에 대해 선별적 보육으로 구조조정을 꾀하고, “0~2세 영아 돌봄과 3~5세 누리과정”을 분리 운영하되, 0~2세 영아는 부모돌봄을 원칙으로 할 필요가 있다. 또한 3~5세 누리과정도 근로여성(워킹맘)을 중심으로 운영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7.2 무상급식
 

2014년 무상급식에 쏟아부은 예산은 2조6천억원으로 4년 사이에 5.4배 증가했다. 무상급식에 소요되는 예산은 2020년에는 약 4조원으로 불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무상급식은 학생들에 의해 상당정도 거부당하고 있는 바, ‘잔반처리’ 비용도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다.

무상급식은 최근 교육청 재정 악화에도 불구하고 확대일로에 있다.10) 진보 성향 교육감들은 누리과정 중 어린이집 지원을 끊겠다고 하면서도 무상급식 예산은 오히려 올려 빈축을 사고 있다. 무상교육 예산이 늘면 정작 필요한 교육개선 예산이 후순위로 밀려 학생들만 피해를 보게 된다.
 

무상급식은 구조조정 대상 1순위 무상복지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다. 원래 운영되어 오던 대로, 국가의 도움이 필요한 학생에게만 지급되는 현물급여로서의 무상급식으로 되돌릴 필요가 있다. 밥은 부모가 먹이는 것이 원칙이므로 소득하위 50%계층으로 까지 수혜범위를 좁히는 것도 고려해 볼만 하다.
 

   
 

7.3 기초연금
 

박근혜정부 핵심 복지공약인 기초연금은 65세 이상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월 10만~20만원을 지급하는 사업이다. 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인 노인 빈곤률을 낮추기 위해 기존 ‘기초노령연금’을 개선한 제도로 지난 7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노인연금은 ‘연금’으로 표현되었지만, 전적으로 세금에서 지급되는 일종의 노령수당이다.
 

기초연금은 정부 주요 복지공약 중에서도 예산 소요가 가장 큰 사업이다. 정부는 내년 기초연금 시행을 위해 예산 10조3300억원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소득 상위 30%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하지 않고 국민연금 수령액에 따라 연금액을 차등하는 등 재정을 아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지만, 노인인구가 늘면서 장기재정에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기초연금 재원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분담한다. 올해 기준으로 중앙정부에서 76.9%, 지방자치단체에서 23.1%를 분담하고 있다. 현재의 분담율을 그대로 유지한다고 가정하면 2040년에는 지자체가 23조원을 기초연금 사업에 투입해야 한다. 당장 내년 기초연금 시행을 위한 지방비(2조4000억원) 마련조차 어렵다는 지자체들이 이런 정부 정책에 계속 협조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노인연금은 세금으로 운영되는 노인수당의 성격을 가짐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노인연금은 국민연금에 통합되는 것이 맞다. 따라서 노인연금은 국민연금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노령 인구의 복지 사각지대를 보충하는 선에서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맞다.

노인연금을 국민연금과 결합해, 국민연금 수령액이 늘어나면 노인연금이 자동적으로 ‘가파른 기울기’로 줄어들게 설계했어야 했다. 장기적으로 국민연금이 성숙하고 노인 빈곤율이 떨어진면 저소득 취약 노인에게 더 많은 금액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기초연금 제도가 구조 조정되어야 한다. <표-5>는 이상에서 기술한 무상복지 구조조정의 큰 방향을 정리한 것이다.
 

   
 
8. 에필로그
 

우리경제는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11)의 위기상황에 놓여있다. 미국 경제만 회복되고 있을 뿐 유럽도 어렵고 중국도 경착륙에 가까운 성장률 저하를 경험하고 있다. 대(對) 중국 수출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중국 경기가 좋지 않고 동시에 중국이 우리를 추격하고 있어 이중으로 중국 수출이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

일본의 아베노믹스 역시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다, 엔저가 지속되면 우리 제품의 가격 경쟁력은 그만큼 떨어진다. 대외환경이 나쁘다는 이야기다. 국내 경기도 각종 규제와 높은 가계부채로 투자와 소비가 살아나지 않고 있다. 내수 역시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는 재정지출을 늘리고 금리를 내리는 수요 진작책으로 경기를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수요 중심 부양 정책으로는 경제를 살릴 수 없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공급 효율화에 힘써야 한다.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기술력을 키우고 기업을 혁신하고 신성장 동력을 발굴해야 한다.

퍼펙트 스톰의 상황에서 우리 정치권은 유감스럽게도 무상복지, 법인세 인상 논쟁에 파묻혀 있다. 위기 극복을 위한 대책 마련에 힘을 모아야 한다. 복지가 지속가능하려면 세수를 확보해야 하고 그러려면 세수기반이 넓어져야 한다. 조급한 마음에 세율을 올리면 오히려 세수기반이 축소되어 세금이 더 적게 걷힐 수 있다. 결국은 성장잠재력 회복으로 모든 것이 모아진다.
 

그러면 잠재성장률을 어떻게 회복시킬 것인가의 문제로 환원된다. <그림-8>은 지난 20여년간 실질경제성장률과 실질투자증가율의 추세를 표시한 것이다. <그림-8>에서 보듯이 경제성장률과 투자증가율은 정확히 동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성장률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활발한 투자가 필수 불가결하다. 최근의 ‘저성장의 구조화’ 조짐은 바로 투자부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림-8>에서 보듯이 투자추세선은 2010년에 ‘가로축’을 끊고 지나감을 알 수 있다. 결국 “투자활성화, 성장률제고, 성장여력 비축”의 선순환구조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선순환관계는 경제학의 정설이다.
 

   
 
무상복지는 용어 자체가 잘 못 정의된 것이다. 세금복지가 맞는 개념이다. 사회보장체계를 1)사회보험. 2)공적부조, 3)사회복지서비스로 구분할 때, 사회복지서비스는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의 자원을 이전 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개념적으로 ‘선별적’ 복지가 맞다. 사회복지 서비스에서 보편적 무상 복지는 “기여한 것을 따지지 않고, 필요한 정도를 고려하지도 않고 무차별적으로 퍼주는” 무차별 복지인 것이다.

무상복지의 지속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상복지를 일차적으로 구조 조정해야 한다. 불요불급한 무상복지, 선거를 앞두고 졸속으로 만들어진 복지, 형평을 위해 효율을 희생시킨 복지의 옥석을 가려야 한다. 그렇지 않고 복지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증세를 논하는 것은 거위의 배를 가르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복지재원 마련을 위해 법인세를 올린다면 이는 여러 가지 이유에서 최악의 ‘정치적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때 마침 ‘페로니즘’ 이후 포퓰리즘이 득세한 중남미 9개국에서 집권했던 전직 대통령들의 ‘고해성사’가 있었다. 파라과이 아순시온에서 열린 ‘글로벌피 스컨벤션 2014’에 참석한 14명의 전직 중남미 대통령은 “빈곤층에 대규모 무상지원을 했지만 빈곤은 계속되고 있다”며 “대통령 재직 시 포퓰리즘을 제대로 막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남겨진 유산은 ‘재정적자와 빈곤탈출의 실패 그리고 저성장“이라는 것이다. 우리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이 글은 바른사회시민회의가 25일 개최한 '무상복지, 출구전략은?' 정책토론회에서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가 발표한 주제 발표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