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에 등 떠밀린 전례없는 판결…반재벌정서가 법의 잣대
   
▲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

항로에 대한 정의를 새로 내린 재판부

민심이 결국 해냈다. 노도와도 같은 민심에 힘입어 대한항공 땅콩회항을 야기한 조현아 전 부사장은 법의 심판을 받았다.

검사는 3년을 구형했고 재판부(서울서부지법 형사12부, 오성우 부장판사)는 12일 조현아 전 부사장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특히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가장 큰 쟁점이던 ‘항공보안법상 항공기항로변경혐의’에 관해 유죄로 판결 받았다.

유죄 판결을 둘러싸고 펼쳐진 법리 논쟁에서 가장 주요한 사안은 ‘항로’의 정의였다. ‘항로’의 정의에 따라서 조현아 전 부사장의 유무죄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조현아의 공방을 맡았던 검찰과 변호사가 가장 치열하게 다투었던 쟁점도 이것이었다.

   
▲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사진=뉴시스 

검사와 변호사의 공방을 들어본 재판부는 판결을 통해 ‘항로’에 대한 정의를 새로이 내렸다.

‘항로’는 항공보안법, 항공법 및 관련 법령에 정의되어 있지 않다. 단 국토부 고시인 '항공로공역설정기준'에 항로가 나와 있다. 여기서는 항로를 지표면에서 200m 이상의 공역(관제구)라고 정의 내린다.

그런데 재판부는 국토부에서 고시한 기준에서 내린 정의는 계기비행절차와 관련해 적용된다고 판단하고, 항로변경은 공로(空路)뿐 아니라 이륙 전 지상까지 포함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결국 재판부에 따르면, 항로는 지상까지 모두 포함한다. 지상이지만 항로다. 이 길 위에서 수백톤짜리 항공기를 십여 미터 움직이게 한 조현아 전 부사장은 마땅히 항공기의 항로를 변경한 것이다.

조현아의 위력, 다른 항공기와 충돌했을 수도?

조 전 부사장은 항공기안전운항저해폭행과 형법상 강요, 업무방해 혐의 또한 유죄로 인정받았다. 특히 재판부는 업무방해죄에 대해서 “만약 다른 항공기가 모르고 움직였다면 충돌했을 가능성도 있었을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조 전 부사장이 징역 1년형을 받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법조항은 항공보안법 제42조다. 제42조(항공기 항로 변경죄)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운항중인 항공기의 항로를 변경하게 하여 정상 운항을 방해한 사람은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재판부는 “조현아 전 부사장이 위계(속임수)가 아니라 위력으로 기장을 제압해 회항을 결정했다”고 판단했다. 조현아 전 부사장이 탑승한 것을 알고 있던 기장이 조현아의 위력에 제압되어 소위 ‘땅콩 회항’을 행했다는 설명이다.

조현아 땅콩회항과 유사한 판례는 없어, 그래서 다들 시원하신가

조현아 전 부사장이 말 한마디로 항공기를 되돌아가게 했다는 점에서 유사한 판례는 없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기장에게 직접 지시를 내려 회항시킨 경우는 오너 일가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전례가 없으며, 처벌 수위를 가늠할 수 있는 과거 판례를 찾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말 그대로 재판부의 이번 판결은 전례가 없는 결정이다.

물론 조현아 전 부사장은 분명히 잘못 했다. 조현아 전 부사장은 마카다미아를 제대로 서비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승무원과 박창진 사무장에게 폭언 폭행을 했고, 항공기를 돌려 박 사무장을 내리게 했다.

   
▲ 법원이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 대해 항로변경죄 유죄를 인정했다. /사진=채널A 캡쳐 

이후 사태는 일파만파였다. SNS를 통해 조현아의 ‘갑질’ 소식은 급속도로 전파되었고, 대한항공을 비롯한 조양호 조현아 오너 일가는 대중의 몰매를 맞았다. 수천만 국민이 혼연일치된 마녀사냥이었다.

사냥의 과정에서 조현아는 눈물을 흘렸고, 박창진 사무장은 병가를 내는 등 또 다른 고통을 호소했다. ‘을질’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마녀는 재판부를 통해 진짜 마녀로 낙인찍혔다. 조현아라는 재벌 상속녀에게 징역 1년형을 선고하기 위해 ‘항로’의 정의는 새로이 내려졌고, 십여 미터 앞뒤로 움직였던 항공기가 다른 항공기와 충돌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까지 제시되었다. 전례가 없는 판결이 내려졌다.

앞으로의 상황에 대하여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조현아 전 부사장이 징역형 1년을 언도 받은 것에 대해 항소해서 2심 고등법원까지 갈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힘들 것이다. 이미 여론에 의해 만신창이가 된 조현아 전 부사장은 포기하리라 본다.

민심이 기어코 해냈다. 재벌 오너의 특권을 잘못된 방법으로 행사한 오너 일가에게 응징의 벌이 내려졌다. 이제 남은 것은 재벌 상속녀에 대한 분노의 해소다. 재판 결과를 확인한 대부분의 분들은 다들 시원하시리라 생각한다.

편안한 하루가 되기를 소원한다. 당신들이 이겼다. 정의가 승리했다. 그 어떤 재벌이라도 정의라는 이름 앞에서는 추풍낙엽이다.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