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의 맹점이 '간짜장' 만들어...도서업계엔 어떤 변화 생길까
   
▲ 이원우 기자

중국 요리집에 들어가면 누구나 결단을 요구받는다.

“짜장면인가 짬뽕인가.”

흥미로운 사실은 이 어려운 양자택일의 선택에서 해방되고 나면 인간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단순해진다는 점이다.

짜장면을 고른 사람들의 단순함은 특히 그들이 ‘일반짜장이냐 간짜장이냐’를 결정하는 데 있어 거의 고민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극대화된다. 형이상학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두 짜장면의 차이점에 대해 별다른 망설임 없이 랜덤의 신에게 운명을 맡기는 것이다.

“뭘 먹어야 되나. 가격은 얼마 차이지? 늘 먹으면서도 무슨 차이가 있는지 정말 모르겠단 말이야.”

그러나 있다, 간짜장에는. 사회적·역사적·경제적 비밀이.

간짜장은 ‘정부’가 만들었다

해물이 들어간 삼선짜장, 맵게 나오는 사천짜장, 쟁반에 담아 나오는 쟁반짜장과 달리 간짜장과 일반짜장의 차이점은 좀처럼 알아채기 힘들다. 눈에 띄는 차이점이라 해봐야 춘장 소스와 야채를 별도로 내온다는 점 정도?

일반짜장과 달리 야채와 소스를 즉석에서 볶았다는 게 요리사들의 설명인데, 이 정도 차별화로 별도의 장르가 된다는 건 납득하기 힘들다. 겨우 이런 사소한 노력만으로 가격을 더 받아도 되는 건가? 간짜장은 대체 누가, 왜, 어떻게, 무슨 의도로 만들어 낸 것인가.

결론을 말하자면 간짜장을 만든 건 정부다. 정부(情婦) 말고 정부(政府) 말이다.

사연은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 짜장면이 정부의 가격통제를 받았다는 사실에서부터 출발한다. 1960년 짜장면이 처음으로 한국인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할 무렵의 가격은 15원 전후. 당시로서는 상당히 비싼 가격이었다.

이후 1970년대 짜장면 가격이 200원 대를 유지하면서 서민을 대표하는 음식 아이콘으로 자리를 잡는 데에는 정부의 가격통제 정책이 혁혁한 공(?)을 세웠다. 국민들에게 상징적 지위를 획득한 짜장면의 가격이 ‘자유롭게’ 움직여선 안 된다고 판단한 정부가 가격을 묶어뒀던 것이다.

일반 짜장면의 변종 메뉴로 등장한 간짜장은 가격통제 대상이 아니었다. 즉, 시장상황에 맞게 가격을 책정하기 위한 일종의 ‘사각지대 메뉴’로 등장한 게 간짜장의 흥미로운 탄생비화다. 짜장면의 종류가 유독 다양한 데에는 이처럼 규제의 풍선효과가 뒤에서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장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낸다. 원가의 희소성과 규제의 벽을 뛰어넘어 소비자 효용을 높이고 결국 이윤을 창출해낼 방법을.

짜장면 가격규제가 간짜장이라는 의외의 풍선효과를 냈던 건 정부가 ‘짜장면’ 한 종목에만 규제를 가했기 때문이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오히려 메뉴 다양화라는 포인트가 생겨난 흥미로운 규제 사례로 남을 만하다.

문제는 짜장면 규제 이후 반세기가 지난 21세기, 1960년대보다 훨씬 강력한 가격제한 규제가 시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책’이라는 종목 전체에 한해서. 모든 것은 실제상황이다.

‘책처럼 생긴 모든 것’을 규제하라

우리가 책이라고 부르는 물건의 형태가 처음부터 상형문자 책(冊)처럼 생겼던 것은 아니다. 고대 로마인들은 파피루스 종이에 필사한 두루마리에 글자를 적어 내용을 보존했다. 파피루스(papyrus)는 결국 종이(paper)의 어원이 되지만, 필요한 내용을 그때그때 찾아보기에 두루마리 책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긴 두루마리를 일정한 길이로 절단하고 등짝을 한 덩어리로 묶는 제책법을 생각해 낸 건 율리우스 카이사르로 알려진다. 정작 당대에 무시당했던 이 방법은 중세 수도사들에 의해 재발견돼 양피지 책을 만드는 방법으로 자리 잡는다. 종이의 질이 비약적으로 좋아진 현대까지 이어져오고 있음은 물론이다. 

2015년의 대한민국이 가격변동을 제한하고 있는 것은 ‘책의 형태를 하고 있는 모든 것’이다. 글자가 몇 개 없어도 冊의 형태를 하고 있기만 하면 여지없이 규제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은 최근 유행하고 있는 ‘컬러링 북’ 가격 규제를 통해서 드러났다.

   
▲ 2015년의 대한민국이 가격변동을 제한하고 있는 것은 ‘책의 형태를 하고 있는 모든 것’이다. /사진=연합뉴스TV 캡쳐

‘어른용 색칠공부 책’이라고 볼 수 있는 컬러링 북은 영국의 일러스트 작가 조해너 배스포드의 책 ‘비밀의 정원’이 2014년 여름 세계적인 히트를 하면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형태가 책인 만큼 베스트셀러 차트에도 올라가 있지만 글자 수는 제목과 광고 문구까지 합쳐봐야 500자도 채 되지 않는다. 그나마 책 안에는 “00를 칠해보세요” 류의 문장들이 대부분이다. 어쨌든 이것도 책은 책이므로 신·구간을 막론하고 할인 폭이 15%를 넘지 못하도록 한 도서정가제 규정을 적용받고 있다.

모두가 YES라고 말할 때 혼자 NO라고 말해볼 용기를 낸 것은 출판사 자음과모음이었다. 그들은 2015년 2월 ‘뉴욕 스케치’라는 컬러링 북을 내면서 국제표준도서번호(ISBN)를 받지 않고 13자리 표준상품식별코드를 부여 받았다. “미술 공부용으로 적합하다고 판단해 도서 대신 문구로 판매하기로 결정했다”는 게 출판사의 입장이었다.

출판계의 반발이 빗발친 건 어떤 의미에선 당연했다. 여타의 컬러링 북들이 따른 선례를 ‘뉴욕 스케치’가 혼자 거부했기 때문이다. 다른 컬러링 북들이 전부 책으로 분류되고 있음에도 혼자 문구류를 표방했으니 ‘꼼수’라는 비판을 면하기도 어려운 게 사실이었다.

결국 정가 1만2천원의 ‘뉴욕 스케치’는 여타 신간 도서들이 적용받는 ‘10% 이상 할인불가’ 규제를 적용받아 현재 온라인 서점에서 1만8백원에 판매되고 있다. 출판계의 간짜장이 되고자 했던 컬러링 북의 시도는 이렇게 무위로 돌아갔다. 자음과 모음이 몇 개 없는 이 책을 가지고 혼자 “NO”를 외치기엔 출판계 분위기상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같은 시간 미국과 일본은 다가오는 'e북 시대'를 진지하게 준비하며 미래에 대비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e북에 대해서도 도서정가제를 적용하며 가격규제를 하고 있다. 

여전히 안 읽는 대한민국… 주술에 불과한 도서정가제

도서정가제, 정확히는 출판문화산업 진흥법 제22조 개정안이 시행된 것은 2014년 11월 21일부터였다. 이 제도의 시행에는 더 이상의 바닥을 상상하기 힘들 만큼 침체된 도서출판계의 속사정이 숨어 있었다.

2013년, 대한민국 출판계의 상징적 존재로 인정받는 민음사가 처음으로 영업적자를 냈다. 단행본 출간 중심으로 영업을 하는 출판사의 절반 이상이 적자로 돌아서기도 했다. 이 무렵 천하의 교보문고도 영업이익 적자를 냈다.

   
▲ 자음과모음이 '문구'로 분류하려다 논란이 된 책 '뉴욕 스케치' 표지

통계청이 매년 봄 발표하는 가구당(2인 이상) ‘도서구입비’ 항목은 한국인들이 책을 사는 데 얼마나 인색한지를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2003년 발표된 자료에서 월 평균 2만6346원을 기록한 이 수치는 2011년 2만570원, 2012년 1만9026원, 2013년 월 1만8690원으로 하락하더니 2014년에는 1만8154원까지 떨어졌다. 1인당 비용이 아니라 가구당 비용이 이렇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최재천 의원 등 16인(최재천 윤관석 이상직 도종환 홍종학 배기운 김재윤 전병헌 강동원 이석기 신경민 이학영 최민희 박주선 남경필 정성호)은 “출판시장의 과도한 경쟁을 막고 대형서점 중심의 유통구조를 개선하며 동네서점을 살리겠다”는 취지로 본 개정안을 발의했다.

첫째, 출판시장의 과도한 경쟁을 막겠다는 이 법안의 취지는 현실에서 성공적으로 구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5년 1분기 월평균 도서구입비는 작년 대비 무려 12.1%나 감소했다.

온라인서점 예스24는 개정안 시행 후 6개월간 도서판매 권수가 약 17.6% 감소했으며 도서 매출액은 5.3% 줄었다고 밝혔다. 특히 구간 판매권수가 30.9%로 크게 줄어 구간 할인폭을 제한한 도서정가제가 판매에 직격탄으로 작용했음을 증명했다.

그로 인해 출판시장에는 이른바 ‘과도한 경쟁’이 사라지고 황량한 폐허의 쓸쓸함만이 감돌고 있다. 과도한 경쟁처럼 보였던 것이 사실은 ‘시장의 활기’였다는 점을 알기까지 우리는 얼마의 시간을 더 써야 할까.

둘째, 동네서점을 살리겠다는 본래의 취지는 전혀 구현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서점들이 제공하는 제휴카드 적용 할인, 배송비 무료, 경품 등의 옵션에 대한 규제는 도서정가제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꼭 책을 사야하는 상황이라 해도 사람들은 동네서점에 갈 이유가 없는 것이다.

   
▲ 출판시장의 과도한 경쟁을 막겠다는 이 법안의 취지는 현실에서 성공적으로 구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쟁 그 자체가 사라지고 황량한 폐허의 쓸쓸함만이 감돌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연합뉴스TV 캡쳐

심지어 출판사에서 서점으로 책을 공급할 때 적용하는 가격 역시 온라인서점이 훨씬 유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동네서점의 경우 정가의 70~75%로 책이 공급되는 반면 온라인 서점에 대해서는 40~60%의 공급가가 채택되고 있는 것이다. 대형마트를 규제한다고 전통시장이 살아나지 않고 있는 것과 비슷한 구조로 동네서점 역시 규제의 덕을 못 보고 있다는 게 도서정가제 시행 7개월의 현실이다.

시장은 방법을 찾을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기타노 다케시는 말했다.

“책을 살 때도 인터넷으로 사기보단 역서 서점에 가서 사야 제 맛이다. 서점에는 시시한 책이나 사고 싶지 않은 책도 진열되어 있다. 그 사이를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는 것이 중요하다.”

이 말은 2015년의 대한민국에는 제한적으로만 적용된다. 어슬렁거리다 눈에 띈 책이 아무리 오래 전에 출간된 것이라 해도 값은 신간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래서야 ‘맛’이 안 난다.

그렇다면 어슬렁거리는 즐거움은 어디에서 느껴야 할까. ‘중고서점’은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알라딘 중고서점은 먼지 쌓인 중고책방의 이미지를 한 순간에 일신하며 업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2011년 9월 서울 종로 한복판에서 처음으로 영업을 개시한 알라딘 중고서점은 현재 전국 18개 지점으로 뻗어나간 상태다.

깔끔한 인테리어의 서점 내부에는 수요자와 공급자의 구분이 없다. 더 이상 읽지 않는 책을 팔러 나간 바로 그 사람이 고객으로 변신해 서점을 ‘어슬렁거리는’ 풍경을 볼 수 있다.

알라딘은 도서정가제 개정안 발의 당시에 업계에서 유일하게 ‘나 홀로 반대’를 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신간에 대한 할인 제한을 구간에까지 확대하면 독자의 손해는 물론이고 판매권수 감소로 저자의 인세 수입도 감소한다”고 입장을 표명한 알라딘은 홈페이지에 성명서를 내고 반대여론을 모으기 위해 나섰다.

이런 알라딘에 대한 출판업계의 푸대접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알려준다. 급기야 김영사, 사회평론, 양철북, 창비, 돌베개, 마음산책, 뜨인돌, 현암사, 산지니 등의 출판사들은 알라딘에 책 공급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어쩔 수 없이 알라딘은 “출판계 다수의견을 받아들여 도서정가제에 협조하겠다”는 것으로 의견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 홀로 반대를 했던 알라딘은 도서정가제 개정안 시행 이후 업계에서 ‘나 홀로 호황’을 누리고 있는 듯 보인다. 인터넷 서점에서 사도 정가의 10% 이내로밖에 할인을 못 받는 책들이 알라딘 중고서점에선 반값에도 거래된다.

중고인 만큼 책들이 지저분하지 않느냐는 선입견이 있을 수 있지만 5쪽이 넘는 볼펜메모, 제본 탈착, 구성품 누락 등의 사유가 있으면 아예 매입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많은 책들이 새 책 못지않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알라딘의 마법’ 또한 규제의 사각지대 혹은 비겁한 꼼수로밖에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법이 규정하는 도식적인 삶을 국민들에게 기계적으로 적용하려는 설계주의가 여의도를 배회하는 한 ‘고객중심 사고방식’은 앞으로도 계속 왕따를 당할 수밖에 없다.

사무엘 베케트가 고도를 기다렸다면 마음껏 책을 읽고 싶은 소비자들은 지금 도서출판 업계의 간짜장을 기다리고 있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