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싸움 본질은 '항일'이라 쓰고 김일성이라 읽는다?
교육과학교를위한학부모연합, 21세기미래교육연합, 바른사회시민회의가 7일 광화문 한글회관 세미나실에서 공동개최한 ‘친일인명사전 배포, 어떻게 봐야하나’ 토론회에 참석한 패널들은 입을 모아 "조희연 서울시교육청의 친일인명사전 배포는 강제 예산 편성 등 학교장의 자율권 침해 소지가 크다"고 비판했다.

정부 누리예산편성을 거부했던 조희연 교육감의 서울시교육청이 학교의 친일인명사전 배포에는 강제 예산을 편성했고, 이는 4·13 총선을 앞둔 정치행위로 보인다는 지적이다. 친일인명사전을 제작한 민족문제연구소는 특정 이념을 지향하는 민간단체이다. 친일 기준에 대한 법적/사회적 합의 없이 친일인명사전이 민간단체 차원의 자의적이고 편향된 기준으로 제작되었다는 문제의식으로 이날 토론회가 마련됐다.

패널로 나선 김용삼 미래한국 편집장은 “친일 싸움의 본질은 북한의 항일 띄우기”라면서 “친일인명사전은 발간 당시부터 친일인사로 분류된 인물들의 전후사를 살피지 않고 단견적이며 주관적이고 편향적이어서 객관성과 공정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편집장은 “친일은 민족감정을 자극하는 무소불위의 힘과 권력이 있다”며 “친일인명사전을 학교에 보급하려는 세력들의 목표는 민족의 이름을 앞세운 ‘친일’ 낙인찍기 싸움을 통해 북한의 ‘항일’ 띄우기 작업을 수행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디어펜은 김용삼 편집장의 토론문을 상, 하편으로 나누어 연재한다. 아래 글은 상편이다. [편집자주]


   
▲ 김용삼 미래한국 편집장
 ‘친일’ 싸움의 본질은 북한의 ‘항일’ 띄우기
[상]
오늘의 남북 대결의 철학적 뿌리는 친일(親日)과 항일(抗日)이다. 친일이냐 아니냐, 항일을 했느냐, 안 했느냐. 이 프레임 싸움에서 수세로 몰리면 한쪽은 항일세력이 만든 국가라는 정통성과 민족적 권위를 선점하게 되고, 반대쪽은 친일 민족반역자들이 세운 국가라는 낙인과 오물을 뒤집어쓰게 된다. 

항일을 하되 외교적이고 문화적이고 교육적으로 했느냐, 아니면 화끈하고 선명하게 무장 투쟁의 방식으로 했느냐. 이것은 후자가 절대적 도덕적 권위를 쟁취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오늘날 ‘항일’이라는 문제를 둘러싼 이념 전쟁은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친일’ 프레임으로 표출되고 있다. 좌파, 좌익, 그리고 친북, 종북을 추종하는 세력들은 끝없이 친일 프레임으로 대한민국의 정당성을 공격해댄다. 그들이 친일 프레임으로 한국 사회의 지도부를 형성했던 인물들을 끝없이 공격해대는 논리적 근거는 간단하다. 

친일은 민족감정을 자극하는 무소불위의 힘과 권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친일’이라는 도끼에 찍혔다 하면 거의 인민재판에 가까운 비난이 쏟아져 도덕적으로 살아날 사람이 거의 없게 된다. 친일의 도끼를 휘둘러 대한민국 지도층의 도덕적 권위가 학살되면 될수록 ‘항일 무장투쟁’을 했다는 북쪽의 권위는 위엄을 발휘한다. 대한민국을 건국하는 데 앞장섰던 지도층과 그 후예들을 친일로 공격하여 무장해제를 시켜버리면 김일성과 항일 빨치산들이 세운 북한은 누가 뭐래도 항일 투쟁을 한 전력이 있으니 도덕적 정당성이 북쪽에 있다는 것이 자연스럽고 선명하게 드러나게 되어 있다. 

친일인명사전의 문제점

최근 들어 서울시교육청과 경기도 교육청이 국민 세금으로 예산을 편성하여 민족문제연구소라는 단체가 만든 ‘친일인명사전’을 서울·경기지역 중·고등학교에 보급하겠다고 나섰다. ‘친일인명사전’은 2009년 발간되었을 때부터 친일인사로 분류한 인물들의 전후사를 살피지 않고 단견적이며 주관적이고 편향적이어서 객관성과 공정성에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던 책이다. 

과연 이처럼 문제점들이 지적되고 있는 책들을 국민 세금으로 구입하여 중고교 학생들에게 읽도록 반강제적으로 배포하는 것을 중지하라는 여론들이 들끓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서울시의회는 ‘친일인명사전’ 비치를 거부한 일부 중·고교 교장들에 대해 시의회 상임위에 출석 요구해 지시거부 등의 이유를 묻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유는 이렇다.  

   
▲ 친일 문제. 이승만과 박정희의 대한민국은 김일성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게 완패를 당했다.


김문수 서울시의회 교육위원장은 “‘친일인명사전’ 비치를 거부한 것은 시의회의 예산 의결권을 무시하고 교육감의 지시사항을 거부한 것”이라며 “학생들에게 본을 보여야할 교육자이자 공직자로서 매우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다. 

교육전문가인 학교장 입장에서 내용에 상당한 문제가 있어 도저히 중고생들이 읽기에 적절치 않은 책이라고 판단하여 비치를 거부한 행위에 대해 교육 비전문가(정치인)인 김문수 서울시의원은 그런 판단을 한 교육 전문가를 향해 “교육자로서 국가관이 매우 의심스러우며, 공직자로서 지시거부 등 불법행위에 대해 서울시의회 출석요구와 징계조치요구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런 발언을 하는 정치인이 제 정신 박힌 사람인지 의구심이 든다. 

반민특위 논란

친일인명사전은 곧 친일파 사전이고, 여기에 등재된 사람들은 민족 반역자의 타이틀을 붙 이고자 만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친일인명사전’과 함께 친일 항일의 프레임 전쟁에서 도구로 즐겨 등장하는 것이 반민특위의 존재다. 

제헌국회에서 제정한 반민특위법은 탄생될 때부터 상당한 문제점이 지적되면서 위헌 소지 시비가 일었다. 1948년 9월 22일 공포된 법률 제3호 ‘반민족행위 처벌법’에 의하면 친일파는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제1조 : 일본정부와 통모하여 한일합방에 적극 협력한 자, 한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조약 또는 문서에 조인한 자와 모의한 자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하고 그 재산과 유산의 전부 혹은 2분지 1 이상을 몰수한다.
제2조 : 일본정부로부터 작(爵)을 수한 자 또는 일본제국의회의 의원이 되었던 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고 그 재산과 유산의 전부 혹은 2분지 1 이상을 몰수한다.
제3조 : 일본치하 독립운동자나 그 가족을 악의로 살상 박해한 자 또는 이를 지휘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고 그 재산의 전부 또는 일부를 몰수한다.
제4조 : 좌의 각호의 일에 하당하는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거나 15년 이하의 공민권을 정지하고 그 재산의 전부 혹은 일부를 몰수할 수 있다
1. 습작한 자
2. 중추원 부의장, 고문 또는 참의 되었던 자
3. 칙임관 이상의 관리 되었던  자
4. 밀정행위로 독립운동을 방해한 자
5. 독립을 방해할 목적으로 단체를 조직했거나 그 단체의 수뇌간부로 활동했던 자
6. 군 경찰의 관리로서 악질적인 행위로 민족에게 해를 가한 자
7. 비행기, 병기, 탄약 등 군수공업을 책임 경영한 자
8. 도, 부의 자문 또는 결의기관의 의원이 되었던 자로서 일정(日政)에 아부하여 그 반민족적 죄적이 현저한 자
9. 관공리 되었던 자로서 그 직위를 악용하여 민족에게 해를 가한 악질적 죄적이 현저한 자
10. 일본 국책을 추진시킬 목적으로 설립된 각 단체본부의 수뇌간부로서 악질적인 지도적 행동을 한 자
11. 종교, 사회, 문화, 경제 기타 각 부문에 있어서 민족적인 정신과 신념을 배반하고 일본 침략주의와 그 시책을 수행하는 데 진력하기 위하여 악질적인 반민족적 언론, 저작과 기타 방법으로써 지도한 자
12. 개인으로서 악질적인 행위로 일제에 아부하여 민족에게 해를 가한 자
제5조 : 일본치하에 고등관 3등급 이상, 훈 5등급 이상을 받은 관공리 또는 헌병, 헌병보, 고등경찰의 직에 있던 자는 본법의 공소시효 경과 전에는 공무원에 임명될 수 없다. 단 기술관은 제외한다. 

제헌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위원회(반민특위)를 조직했다. 그런데 졸속으로 입법된 반민법은 초안이 나흘 만에 만들어졌고, 소급입법이었으며, 재판을 3심이 아닌 단심으로 한다는 규정으로 위헌 논란에 휩싸였다. 그 결과 이인 법무장관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했는데, 이 대통령은 정치적 판단을 내려 이를 공포한 것이다. 

   
▲ 6.25 침략전쟁을 일으킨 북괴의 주역, 김일성과 박헌영


반민특위법의 위헌 소지

이승만 대통령도 반민특위법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었다. 이 법의 제정과 관련하여 이승만 대통령은 ‘반민족행위 처벌법’이 통과된 이틀 후인 1948년 9월 24일 「반민족행위자 처단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담화문에서 “법 운영은 보복보다 개과천선이 중요하다”라고 발표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왜적에게 아부하여 악질적인 반민족행위를 감행한 자를 처벌함은 민의가 지향하는 바이며, 우리가 다 같이 각오하는 바이므로 이번에 국회에서 반민족행위 처벌법에 대하여 본 대통령은 민의에 따라 서명 공포할 것이나, 다만 본 대통령은 이 법을 공포함에 제(際)하여 몇 가지 소감을 피력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에는 벌을 받은 자가 손자에까지 벌이 미치며 그 재산을 몰수한다는 규정이 있는 바, 이것은 소상한 해석이 없으면 중고(中古)시대의 일과 혼동될 염려가 있으므로 현대 민주주의 법치국가로서 이런 법을 적용한다는 오해를 피해야 될 필요가 있을 것이며, 또 고등관을 역임한 자들의 관등을 구별하여 처벌을 정한 것은 일정한 차별을 만들기에 필요한 것이지마는 법률은 문구보다 정신을 소중히 하는 것이니, 비록 등으로는 처벌에 해당한다 할지라도 정신적으로 용서를 받을만한 경우도 있을 것을 참작하여 일후 특별법원을 조직한 후 본 법 해당자를 재판하는 데 있어서는 이런 점에 특별 유의하여 억울한 일이 없도록 힘쓰기를 희망하며, 일반 동포도 이런 점을 양해하여 이 방면으로 주의하기 바라는 바이다.  

제6조에서… 본 법에 정한 죄를 범한 자가 개전의 정신이 현저할 때에는 그 형을 경감 또는 면제할 수 있다고 한 것은 관엄(寬嚴·너그러우면서 엄격하다는 뜻)을 구비한 규정이라 할 것이니 대개 법으로써 죄를 벌함은 범죄자에게 보복을 가하는 것보다는 범죄자를 선도하여 개과천선의 기회를 주려는데 목적이 있는 까닭이다. 

내가 자초(自初)로 주장한 것은 반민족 행위자를 처벌하는 것은 정부가 완전히 된 후에 하자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 정부가 비록 성립되었으나 정권 이양이 아직 진행 중에 있는 터이므로, 또 유엔총회의 결과도 아직 완정(完定)되지 못한 터이므로 모든 사태가 정돈되지 못한 이 때에 이 문제를 처리함에 있어서는 내외 정세를 참고하여야 할 점이 허다한 것이니, 지혜로운 모든 지도자들은 재삼 생각할 필요가 있음을 이에 선명하는 바이다.”1)

반민법의 문제는 너무 성급히 만들어진 결과 중대한 잘못들이 포함되어 있었고, 우리 사회가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았던 경험이 남긴 부정적 영향을 씻어내는 일을 어렵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우리 사회를 깊이 분열시켰다. 특히 국회 프락치 사건이 발생해 남로당 요원과 북한 간첩들에게 포섭된 국회의원 13명이 대한민국의 전복을 위해 국회에서 활동하다 체포되었는데, 이 가운데 주동자들인 김약수, 노일환, 이문원 등이 반민법 제정을 주도하고 반민특위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했다. 이것은 반민법과 반민특위가 남로당과 북한 공산집단의 사주에 의해 만들어지고 활동했음을 시사하는 증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판자들은 “반민특위는 조직과 동시에 친일파와 이승만 정권의 방해공작에 직면했고, 친일파 조사활동을 시작한 지 단 6개월 만에 해체되었다”(이강수, 『반민특위 연구』, 나남출판), “이승만의 집권은 친일파들에게는 다시없는 재생의 기회가 되었다. 국내에 이렇다 할 정치적 기반이 없었던 이승만은 그들의 행정능력과 정보 조직 자금을 필요로 하였다. 그리하여 반민특위가 설치되면서부터 이승만의 비호를 받는 친일세력은 조직적으로 특위활동을 방해하고 이를 와해시키려고 기도하였다”(김삼웅, 외 지음 『반민특위, 발족에서 와해까지』, 가람기획), “거듭된 백색독재, 군사독재와 악한 자, 기회주의자들이 득세하고 사회정의와 양식이 무너진 도덕적 아노미 현상은 바로 반민특위의 좌절에서 발원”(김삼웅 외 지음, 『반민특위, 발족에서 와해까지』, 가람기획) 등등 반민법을 걸어 이승만을 공격하는 레파토리로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반민족행의처벌법에 따른 반민족행위자들에 대한 공소시효가 완성된 1949년 8월 31일 반민특위 위원장 이인은 다음과 같은 담화를 발표했다.

“반민특위 사업에 대한 견해는 사람에 따라 달라서 일방에서는 용두사미로 그친다고 비난의 목소리도 높고, 다른 편에서는 시기도 아니요 너무 세밀히 한다고 불평을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가장 심했던 자만 처단하고 나머지는 관대히 할 것이 인정을 펴고 민심을 수습하는 도리가 되는 것이다. 사람을 벌하려는 것이 아니오 반민족 정신인 죄를 징계하는 것이 목적이니 이 정도의 처단만으로 족히 이일징백(以一懲百)의 효과를 거두어서 민족정기를 바로잡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38선이 그대로 있고 시국이 혼란하고 인재가 부족한 이때에 반민족 행위 처단을 지나치게 하는 것은 도저히 민족과 국가를 위해서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반민법은 이승만과 친일세력이 방해공작을 펴서 반민특위 활동을 제대로 못한 것이 아니라 이인 위원장은 “38선이 그대로 있고 시국이 혼란하고 인재가 부족한 이때에 반민족 행위 처단을 지나치게 하는 것은 도저히 민족과 국가를 위해서가 되지 못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죄질이 가장 심했던 자만을 처단하는 선에서 마무리 지은 것이다. 

   
▲ 오늘날 ‘항일’이라는 문제를 둘러싼 이념 전쟁은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친일’ 프레임으로 표출되고 있다. 좌파, 좌익, 그리고 친북, 종북을 추종하는 세력들은 끝없이 친일 프레임으로 대한민국의 정당성을 공격해댄다./사진=연합뉴스


친일 드라이브의 시초는 소련군정

해방 후 이승만을 친일 프레임으로 공격한 것은 소련에 의한 고도의 전략이었다. 북한의 친일 청산은 38선 이북 지역을 한반도에서 떼어내 소련을 추종하는 공산 위성국으로 만들겠다는 목적을 위한 방편으로 사용된 것이다. 『평양의 소련군정』의 저자 김국후는 소련군정이 북한에서 소비에트화 혁명을 진행하며 ‘일제 청산’을 가장 핵심적인 정신 전략으로 삼았다며, 1945년 9월 10일 평양주둔 소련군정사령부가 각 지역 위수사령부에 지령한 ‘독립 조선의 인민정부 수립 요강’ 6개 항을 제시했다. 6개 항 가운데 ‘일제 청산’과 관련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비일본적인 각층 인민을 중심으로 완전한 자주독립국가를 결성해야 한다. 소비에트연방은 끝까지 노동자 농민정권 수립을 미·영·중에 제안할 것이다.
2. 인구 수에 비례해 토지를 재분배해야 하며 토착 지주에 대해서는 자기가 경작하지 않는 토지를 몰수한다. 몰수한 일본인 소유 토지는 정부가 농민에게 분배한다.
3. 일본인 소유 공장은 일본적 요소를 없애고 공장 노동자와 기술자가 이를 관리하도록 한다. 기술 부문에서 일본인이 필요한 경우에는 과도적으로 사역하며 시급히 조선인 기술자를 양성한다.
4. 친일 분자는 철저히 소탕하고 각 분야의 불순분자를 엄정하게 숙청할 필요가 있다.

북한에 소련식 공산국가(그들의 표현에 의하면 민주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일본 군국주의 세력을 축출하고 일본 잔재 사상과 친일 인물을 철저히 소탕하고, 일제에 저항하며 희생적으로 투쟁해 온 혁명세력과 일제 착취 대상인 노동자와 농민을 정치 일선에 내세우는 전략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독립 조선 인민정부 수립요강’이 지령된 것이다. 

이것을 남한에서 실천에 옮긴 것은 박헌영과 공산당이다. 1945년 10월 환국한 이승만의 정치적 목표는 귀국 일성인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로 표출된 ‘대동단결, 자주독립’으로 요약된다. 그런데 당시 서울에 주재하고 있는 소련 영사관으로부터 지령을 받은 공산당 지도자 박헌영이 이승만의 노선에 반기를 들었다. 

박헌영은 10월 30일 “통일에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덮어놓고 한데 뭉칠 수는 없다. 조선에는 아직도 일제의 잔재세력이 남아 있다. 이러한 친일파를 근절시킨 다음 옥석을 완전하게 가려놓고 순전한 애국자, 진보적 민주주의 요소만을 한데 뭉쳐 통일해야 한다”면서 이승만의 대동단결 노선에 선을 그었다. 

이승만은 11월 7일 저녁 라디오 방송을 통해 공산당이 자기에게 부여한 인공의 주석 직을 사퇴한다고 선언하자 박헌영과 공산당들은 집요하게 이승만을 친일 프레임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특히 1945년 12월 28일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한국에 대한 신탁통치가 결정되자 우익진영은 찬탁을 외치는 조선공산당을 “외세에 의존한 매국적 괴뢰집단”으로 규정지었고, 조선공산당은 반탁을 주장하는 우익을 향해 “민족감정을 이용하여 친일 전력과 반동적 성격을 은폐하려는 정상배들”이라고 공격했다. 

1946년 1월 14일 이승만은 “공산당은 소련을 조국으로 하는 자들이니 너희 조국으로 가라”는 요지의 강경한 성명을 냈다. 그러자 공산당도 “당신은 미국에 금발 벽안의 미인이 기다리니 미국으로 가라”, “돈암장은 돈 많은 친일파의 소굴”이라는 성명을 싣고 비라를 뿌렸다.

   
▲ 최근 들어 서울시교육청과 경기도 교육청이 국민 세금으로 예산을 편성하여 민족문제연구소라는 단체가 만든 ‘친일인명사전’을 서울·경기지역 중·고등학교에 보급하겠다고 나섰다./사진=연합뉴스


친일 문제로 북한·좌파에 완패 당한 대한민국

누가 뭐래도 이승만과 박정희의 대한민국은 김일성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게 완패를 당했다. 1980년대 이후 거의 대부분의 대한민국의 학자, 지식인, 언론인, 일반인들은 만주벌판에서 온갖 고난과 고초를 당해가며 치열하게 전개됐다는 항일 무장투쟁의 선명성과 치열성, 웅장한 기상에 가위 눌리듯 꼬리를 내려버렸기 때문이다. 또 저들의 레닌과 스탈린식 선전선동술에 넘어가 단독 정권을 수립한 것은 이승만과 남한이라고 믿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김일성=항일 무장 독립운동의 주인공이자 민족의 영웅, 이승만=미국이라는 외세를 끌어들여 친일파들과 야합하여 분단을 야기한 매국노, 박정희=일제의 주구로서 항일 무장 독립운동가를 타도한 친일파라는 우상이 만들어졌다. 

오늘날 주체사상을 받아들여 한국 사회를 친북 혹은 종북의 소굴로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 온 주사파와, 좌익 운동권, 좌익 언론인, 그리고 ‘국사’라는 이름으로 김일성과 항일 무장 독립운동가들에게 월계관을 씌워준 국사학자들 덕분에 그 우상은 더더욱 ‘역사적 사실(historical fact)’인양 화석화되어가고 있다.

만주에서의 항일 무장 독립투쟁은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신화가 됐고, 금단 영역이 되었다. 이 부분을 잘못 건드리거나 그 정신을 훼손하면 가차 없이 ‘친일’의 주홍글씨가 새겨졌다. 따라서 이 주제는 거의 종교의 영역이나 다름없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었다. 

문제는 ‘친일인명사전’의 편찬을 주도한 사람, 그리고 국민 세금으로 이 책을 구입하여 학교에 보급을 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반미(反美), 반(反)대한민국, 그리고 친북 혹은 종북을 외치는 일단의 좌파세력이라는 점이다. 이들 좌파세력들의 공통점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애정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들이 친일로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대한민국 건국에 앞장섰다. 좌파세력들 입장에서 볼 때 이들 대한민국 건국 주도세력만 없었다면 북한 주도의 통일, 즉 공산통일(혹은 사회주의로의 통일)이 가능했을텐데, 바로 이 사람들 때문에 그 목표가 무너져버렸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친일’ 프레임으로 도덕적 공격을 가하는 행위는 대한민국의 토대를 허무는 행위로 치환된다. 이번에는 보다 조직적으로 거사를 행하기 위해 좌파 교육감이 당선된 서울시교육청과 경기도교육청이 나섰다. 이들은 국민 세금을 동원하여 중고생들에게까지 이 책을 읽히도록 하기 위한 치밀한 시도를 하고 있고, 교육적 관점에서 비치를 거부한 교장들에게 징계 협박을 가하고 있다. 이것은 교육에 대한 일종의 정치적 테러다. /김용삼 미래한국 편집장

1) 공보처, 대통령 이승만 박사 담화집(1) 12~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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