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뱅이에 짚신 신은 채 외적-내부의 적 상대할 순 없어
대한민국은 미생(未生)국가이며, 자유민주주의라는 체제는 위험천만한 상황에 놓여있다는 지적을 지난 글에서 밝혔다. 미디어펜 주필 조우석은 그런 구조적 흠결이 1948년 건국부터 노정됐던 한계였는데 지금껏 보완되지 않았다는 진단도 곁들였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문제제기는 정치권은 물론 언론과 지식사회에서 제대로 등장한 바 없었다. 공허한 선진화란 구호, 민주화의 헛소리만이 반복됐다. 이에 조우석은 ‘지속가능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하여’시리즈를 상중하 세 편으로 나눠 싣는다. 본래 상하 두 편으로 기획했으니 풍요로운 논의를 위해 확대했다. 국제사회 봉쇄에도 불구하고 5차 핵실험을 공언한 북핵 위기 속에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과, 반(反)문명집단 평양의 상반된 운명이 초읽기에 들어간 게 지금이다. 이 상황이야말로 대한민국 체제수호와, 한반도 신질서 정착을 위한 올바른 정치철학을 점검을 해볼 좋은 기회다.  <편집자 주>

'지속가능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하여'- ②
                  
   
▲ 조우석 주필
방어적 민주주의의 모범국 독일이 어떻게 체제수호의 철갑옷으로 완전무장했는가를 예전 잠시 언급한 바 있다. 오늘은 그걸 더 섬세하게 복기하려 한다. 그래야 비유컨대 베잠뱅이에 짚신 신은 꼴로 히말라야 K2봉을 등반하려는 대한민국의 허장성세가 잘 들여다보인다.
 
독일은 기본법(헌법)에서 체제방어 장치가 이중삼중으로 철저한 대표적인 국가인데, 일테면 대표적인 기본권인 학문의 자유부터 단서를 붙였다. 즉 헌법에 대한 충성을 전제로 학문의 자유를 허용한다(제5조 3항). 대한민국은 체제부정을 능사로 하는 종북좌파가 대학사회에 득시글거리는데 그런 소지 자체를 없애버린 강력한 장치다.
 
당연히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를 반대하는 내용을 대학 강의실에서 가르치는 건 위헌에 속하는데, 그 맥락에서 결사의 자유나 거주이전의 자유도 제한을 뒀다.(제9조 2항, 제11조 2항) 제한의 기준은 헌법질서, 즉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를 위협하는가의 여부다. 통신비밀에도 제한을 둔다는 명문규정도 있다.(제10조 2항)

독일헌법의 체제수호조항 8개, 한국은 단 두 개

이 네 개의 기본권 제한 장치에 더해 제18조에는 이런 조항도 뒀는데, 저들의 철두철미함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의견발표의 자유 특히 출판의 자유, 교수행위(학문)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재산권 또는 망명자 비호권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공격하기 위해 남용한 사람은 기본권을 상실한다."
 
그 바로 뒤에 위헌정당 해산 조항이 등장한다(제21조 2항). 독일에서는 개인에 대한 기본권 제한 명문규정에 이어 자연스럽게 위헌정당 해산 조항이 등장하니 일목요연하고 체계적이다. 이 대목은 통진당 해산 때 국내에서 널리 알려졌던 대목이기도 하다.
 
즉 독일헌법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해치거나 독일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려는 정당은 위헌이며, 위헌 여부는 연방헌재(憲裁)가 결정한다"고 못 박았다. 대한민국 헌법에도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방어하는 조항이 딱 두 개 있다. 위헌정당 해산 규정(제8조 4항)이 그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본질적 내용에 대한 침해는 안 된다고 단서를 달았지만,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국가안보-질서유지-공공복리를 위해 법률로 제한할 수 있다는 조항도 있다.(제37조2항)
 
독일에 비해 우리가 거의 무제한의 자유, 무책임한 자유를 허용하고 있다. 이렇게 헐렁해도 될까? 우리헌법과 독일헌법을 1대1로 비교해 봐도 그게 금새 드러난다. 자유민주주의를 방어하는 장치가 우리의 경우 딱 2개 조항인데 비해 독일은 무려 8개 조항이다. 내용에선 비교할 수 없이 독일이 강력하다.
 
조금 전에 설명한 게 학문의 자유 제한을 비롯한 기본권 제한 조항이 6개 인데, 별도로 2개 조항을 추가해 이중삼중의 잠금장치를 해뒀다. 즉 제20조의 경우 국민저항권을 명시했다. 이게 실로 경이롭다.
 
   
▲ 지난 4일 오후 계룡대에서 열린 2016년 장교 합동임관식을 마친 신임 장교들이 모자를 던지며 자축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저항권이란 어떤 정치세력이 다수결 등의 합법절차를 거쳐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를 없애버렸을 경우 국민이 이에 저항할 수 있는 포괄적이고도 초법적 권리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뒤엎으려는 공산화 물결이나, 나치 같은 파시즘의 등장 자체를 결코 용납지 않겠는다는 의지다.
위헌단체 해산할 법적 무기 ‘사회단체법’

그에 못지않은 게 제79조 3항이다. 독일헌법 제1조("인간 존엄성은 불가침이다. 이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이 국가권력의 책무다")와, 앞서의 제29조에 대한 개정은 허용하지 않는다고 또 한 번 '대못' 박아뒀다. 어떠신지? 이쯤 되면 철갑옷 독일과, 베잠뱅이 대한민국이 더욱 더 대조적일 것이다.
 
지난 번 글에서 나는 "이런 허술한 체제로 건국 이후 지금까지 70년 가까이 버텨온 것이 기적이다."이라고 지적했다. 우리와 독일은 냉전 속에 체제 경쟁을 해야 했던 같은 처지인데,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얼마 전 여의도 정치판에서 벌여졌던 게 무엇이던가?

헌법 재정비도 아니고 법률(테러방지법) 제정 하나에도 필리버스터니 뭐니 하며 저토록 소모전을 벌였던 우리 모습을 보면 '미생(未生)국가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왜 이 꼴인가? 이런 문제제기 없이 민주팔이에 코 박고 있는 지식 야바위꾼들에 대한 우리의 분노는 너무도 당연한 게 아닐까?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을 쥐고 흔드는 김정은의 위협 앞에서도 평화협정 체결을 애걸하는 중앙일보 등 일부 정신 나간 우파, 우리민족끼리의 햇볕정책과 민주화 구호를 반복하는 철면피 좌익세력은 대체 뭐란 말인가? 저들은 단연코 반역세력이거나, 아니면 내부의 적에 불과하다.
 
독일 얘기를 하나 더. 저들은 헌법에서 체제수호의 철갑옷을 여러 겹 걸쳤지만, 그걸로 그치지 않는다. 연방헌법보호청의 법적 근거인 연방헌법보호법을 포함해 사회단체법, 연방공무원법, 국가공무원 징계에 관한 법 등 무려 10여 개의 각종 법령을 운용하며 헌법과 자유민주체제를 다시 옹호한다. 그 중 몇 개만 예를 들어보자.
 
사회단체법의 경우 좌파 등 위헌단체를 헌재의 결정을 거칠 것도 없이 행정조치 하나로 간단하게 날려버릴 수 있다. 한국도 독일처럼 사회단체법이란 무기만 하나 가져도 그 수많은 종북좌파 이적단체들에게 모조리 해산을 명령할 수 있을텐데 말이다.
 
독일의 연방공무원법, 국가공무원 징계에 관한 법도 강력하다. 대한민국에서는 공무원이 '정치적 중립'을 핑계로 미래권력이라는 야당 눈치를 보며 일을 하지 않지만, 독일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저들은 법조문에서 국가와 헌법질서 긍정을 공무원에게 의무화하고 있다.
 
헌법질서를 비방하거나 공격하는 반헌법적 단체에 명확하게 반대할 것도 공무원에게 요구한다. (상식이지만, 정치적 중립이란 대한민국 헌법에 충성하는 정당들 사이에서의 중립을 뜻한다. 즉 위헌정당 통진당이나, 애매한 정당 더불어민주 그리고 새누리 사이에서 적당히 기계적 중립을 유지하려는 건 기회주의적 태도에 불과하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2016년 정부업무보고(외교안보분야)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한국의 국가보안법은 왜 국보법(國寶法)인가

그럼 대한민국은 완전 무방비인가? 그것만은 아니다. 독일에 무려 10여개의 체제수호 관련법이 있다면, 그 막중한 임무를 한국 땅에서 맡은 유일한 법이 국가보안법이다. 오늘 이 글을 쓸 수 있도록 자료를 넘겨준 분인 원로 정치학자 양동안 명예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는 "특히 제5~8조의 존재로 인해 한국의 자유민주의는 방어적 민주주의의 성격이 분명해졌다"고 밝히고 있다.
 
체제수호의 헌법 조항이 부실하고, 관련법의 뒷받침도 없는 상황을 국가보안법 하나가 가까스로 보완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국가보안법은 국보법(國寶法)인데, 좌파가 총동원돼 이걸 흔드는 것도 그런 이유다. 유감스럽게도 이에 대한 강력한 대응이 드문 것도 한국적 살풍경이 아닐 수 없다.
 
오늘 글의 마무리다. 길게 봤을 때 박근혜 정부는 태생적으로 한국정치사에서 숙명적이다. 건국 이후 거듭되어온 민주주의의 타락을 막고, 허술했던 체제수호를 정비할 역사적 사명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사실 그동안 해온 굵직한 치적도 모두 그쪽이 아니던가?
 
통진당 해산에 이은 개성공단 폐쇄, 한일위안부협상 타결 그리고 국사교과서 단일화란 이 정부가 의도했던 하지 않았건 흔들리는 대한민국의 체제수호를 위한 것이었다. 임기 2년이 남은 상황이지만 보다 큰 그림 속에서 움직여야 하며, 그걸 위해 '지속가능한 자유민주주의', '완생국가 대한민국'의 비전을 독일을 사례연구 삼아 제시해봤다. 다음 한 차례 칼럼에서 이 문제를 추가로 논의할 것을 약속한다.
 
첨언 하나. 대한민국 체제수호의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는 국가보안법을 한사코 해코지하려는 위인이 서울시장 박원순이라는 걸 기회에 확인해 둔다. 실은 그의 뒤틀린 신념체계의 핵심에 이 문제가 똬리 틀고 있다. "국가보안법의 존재는 국민생활 전체에 걸친 족쇄였으며, 국가의 진취적 발전을 가로막는 쇠사슬"이라는 게 그의 주장인데, 그의 저술 <국가보안법 연구>, <야만시대의 기록>등에 노출돼있다. 그게 얼마나 헛소리인지는 이번 칼럼에서 이미 증명됐다고 나는 믿는다. /조우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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