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뒤면 국회의원들을 새로 뽑는 선거가 있다. 시대정신에 맞는 국회는 어떤 모습을 해야 하는가?

이런 모색은 19대 국회에 대한 성찰에서 시작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번 국회에 대한 평가가 유난히 낮으므로, 그런 낮은 평가를 받게 된 까닭들을 살피면, 보다 나은 국회를 꾸미는 데 도움이 될 교훈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국회가 유난히 문제적이었던 근본적 이유는 국회선진화법이다. 위헌이라는 지적이 나올 만큼 문제적인 법이다. 헌법재판소는 이 법의 위헌 여부에 대해 곧 판결하리라 한다. 다른 편으로는, 문제의 근원은 법 자체가 아니라 운용의 미숙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따라서 위헌 여부를 떠나, 이 법의 문제점에 대한 이론적 고찰도 필요하다.

집단적 결정을 도출하는 데는 당연히 비용이 든다. <동의의 계산(The Calculus of Consent)>에서 뷰캐넌(James M. Buchanan)과 털럭(Gordon Tullock)은 이 비용에 대해 자세히 살폈는데, 그들의 분석에 따르면, 그 비용은 두 요소들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집단적 결정 때문에 구성원들이 손해를 볼 가능성을 뜻하는 외부비용(external costs)이고 다른 하나는 합의 과정에 드는 의사결정비용(decision-making costs)이다.

이 두 요소들 사이엔 맞바꾸기(trade-off)가 존재한다. 외부비용을 줄여 소수의 이익을 보호하려면, 합의에 필요한 찬성 비율을 높여야 하므로, 자연스럽게 의사결정비용이 커진다. 외부비용이 전혀 없는 만장일치에선 의사결정비용이 비현실적으로 커진다. 만장일치가 가장 바람직하고 완벽한 정당성을 확보하는 제도이지만, 공적 집단에서 거의 채택되지 않는 것은 이런 사정 때문이다.

그래서 외부비용과 의사결정비용을 합친 총비용이 가장 작은 수준에서 의결에 필요한 찬성 비율을 정하게 된다. 흔히 쓰이는 것은 단순과반수다. 단순과반수는 사람의 천성에 맞고 최소한의 정당성도 갖추었다.

국회선진화법은 몸싸움을 막으려고 의결에 필요한 비율을 단순과반수 이상으로 높인 법이다. 소수당의 외부비용을 줄이려고 의사결정비용을 늘린 것이다. 여야의 세력이 비슷한 우리 국회에서 이런 조치는 실질적으로 만장일치를 강요한다. 국회가 실질적으로 마비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비현실적으로 설계되었으므로, 이 법은 헌법재판소의 판결과 관계없이 폐기되어야 한다.

식상할 만큼 자주 언급된 것처럼, 박근혜 대통령의 군주적 지도력도 국회의 마비에 한몫 단단히 했다. 여야 지도자들이 협상을 통해서 의사 일정을 마련하지 못하면,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 실은 여야 관계가 좋을 때도,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입법이 제대로 된다.

남성들이 압도적인 정치계에서 여성 지도자는 아무래도 정치인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다. 지도력이 뛰어났던 영국 대처 수상도 그 점에서 작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박 대통령은 야당 지도자들과의 소통에서 너무 소극적이었다. 반면에, 국회의 무능과 비협력적 태도를 비판하는 발언은 어느 대통령보다 많았다. 이런 조합은 행정부와 입법부 사이에 차가운 기류가 흐르도록 했고 박 대통령의 입법 계획은 좀처럼 나아가지 못했다.

20대 국회가 열리면, 박 대통령은 새로운 면모를 보일 기회를 얻는다. 의회의 비협력적 태도로 속이 썩지 않은 정치 지도자는 세상에 없었다는 사실을 박 대통령은 새겨야 한다. 

19대 국회의 낮은 성적이 실은 입법의 부진이 아니라 악법의 양산에서 나왔음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우리 사회처럼 법들이 너무 많고 거친 사회에선, 법의 부재로 나오는 혼란보다 잘못 설계된 법들의 억압이 훨씬 해롭다. 일반적으로, 사회가 원숙해지면, 이익 집단들의 활동으로 사회의 건강을 해치는 법들이 많아진다.

게다가 국회선진화법이 여야의 흥정을 강요하면서, 법마다 야당의 민중주의적 성향이 깊이 스며들었다. 대표적인 것은 면세점법 개정이니, 면세점 사업권 기한을 느닷없이 10년에서 5년으로 줄였다. 대기업들만 참여하는 분야라서 특혜를 줄인다는 논리였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추산에 따르면, 이 조치로 연간 1조 5천억 가까운 경제적 손실이 나오고 이미 2천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이런 민중주의적 법안 넷이 연간 8조원 가량의 손실을 끼치고 경제 성장률을 0.7백분점(pp) 낮춘다 한다. 곧 통과될 3개 법안들은 더 큰 해를 끼치리라 한다.

이런 상황을 개선할 길은 마땅치 않다. 민중주의는 어느 사회에서나 인기가 높다. 자연히, 우리 사회의 원리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려는 노력은 보답이 작다. 의원들이 유권자들의 민중주의 성향을 무시하고 나라의 이익을 생각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이번 총선거에서도 이미 각 정당은 민중주의적 공약을 내놓았다.

민중주의적 법들을 만든 의원들이나 정당을 응징할 길도 없다. ‘면세점법 개정안’은 야당 의원 한 사람이 1분 동안 우겨서 만들었다는데, 그는 이번엔 출마하지 않는다. 그의 정당을 응징할 길도 없다. 이 일로 지지 정당을 바꿀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긴 연간 3조 2천억 원이 넘는 손실을 끼친다는 ‘단통법’은 새누리당 중진 의원이 발의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경제민주화’라는 구호를 공약으로 내걸어 선거에 이기고 임기 초에 실제로 그것을 실행하다가 경제를 큰 혼란에 빠트린 것은 박근혜대통령이었다. 심지어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사회적 경제’라는 구호를 내걸고 입법을 추진했었다.

사정이 조금이라도 개선되려면, 시장경제를 비난하는 의원들이 줄고 옹호하는 의원들이 늘어야 한다. 면세점법 개정을 주도한 의원이 좌파 시민단체 소속 경제학자였다는 사실은 아프게 일깨워준다, 중요한 것은 경제학 지식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원리에 맞는 사회 철학임을. 대기업들만을 대변한다는 비난과 경멸을 견디면서 시장경제를 옹호할 만큼 심지 굳은 의원들이 단 몇이라도 있다면, 나오는 법마다 경제를 해치는 상황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시민들이 유념해야 할 사항들 가운데 이 점이 가장 중요하다. 다른 고려사항들은, 장기적 관점에서 살피면, 부차적 중요성을 지닌다.

걱정스럽게도, 이번 총선거에 나선 새누리당 후보들 가운데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을 드물다. 20대 국회에서 경제학 지식을 갖춘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이 연합해서 민중주의에 물든 법안들을 걸러내도록 하는 일은 긴요하다. 그 일을 위해서 자유주의 지식인들이 나서야 할 것이다. /복거일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