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덤핑조치·WTO·OECD…올바른 철학 재정립·경쟁의 순기능 살려야
무역과 경쟁, 서로 다른 경기장에서 같은 규칙 적용하기

인류의 후생 증대와 지속 가능한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보호무역 보다는 자유무역이 이론적 및 실증적으로 더 우수하다는 결론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무역과 경쟁은 국제통상에서 가장 복잡한 의제들 중 하나다.

경쟁은 혁신을 촉진하고, 소비자의 이익을 보호하며, 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통한 성장을 이루게 하는 원리로서 그 이면에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자유가 있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는 독과점으로 인한 과도한 시장 집중, 기업 간 담합, 불투명하고 공정하지 못한 사업 관행, 높은 진입 제한 등으로 인하여 경쟁의 순기능이 억제되면서 시장 작용이 실질적으로 원활하게 작동하지 못해 부정적인 효과가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각국은 시장을 절대적으로 방임하는 대신 경쟁법을 통해 경쟁 제한 행위를 금지 혹은 억제시키고 있다.

국제무역은 법률, 언어, 문화 등이 서로 다른 국가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거래로 기업들은 일국 내 거래에서 보다 경쟁 제한적 요소에 쉽게 부딪힌다. 배타적 표준 설정, 카르텔을 통한 시장 분할, 설비 및 시설 독점, 시장을 실질적으로 봉쇄하는 폐쇄적이고 수직적인 제한 거래 등이 대표적인 경쟁 제한적 요소들이다.

더불어 다자간 라운드를 통해 이루어진 관세율 인하는 각국으로 하여금 자국의 이익을 위해 다양한 비관세장벽을 구축하는데 집중하게 했으며, 세계화로 인해 상품 교역을 넘어 여러 유형의 교역에서 이루어지는 한층 더 자유로운 자본의 국경간 이동은 국가간의 통상 마찰 유발에 일조했다. 이로 인해 무역과 연계된 경쟁 논의는 단순한 차별 해결이나 원칙 준수의 문제를 넘어 국가간 협력을 통한 경쟁 조건의 세계적인 평준화 달성을 목표로 하게 되었다.

그러나 무역과 연계된 경쟁 논의에 대한 각국의 입장은 첨예할 뿐만 아니라 비슷한 입장을 지향하는 국가간에도 적용 방법에 관해서는 서로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1996년 12월,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제1차 WTO 각료회의에서 무역과 경쟁 작업반을 설치하기로 합의하고 다자간 협정 체결을 위해 관련 분야를 검토하게 되었지만, 경쟁 논의에 대한 미국과 개발도상국들의 강력한 반대 의견과 한국, 일본 등의 적극적인 지지 의견이 서로 충돌하였다.

   
▲ 무역과 연계된 경쟁 논의에 대한 각국의 입장은 첨예할 뿐만 아니라 비슷한 입장을 지향하는 국가간에도 적용 방법에 관해서는 서로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경쟁 논의 중에서도 反덤핑(Anti-dumping)조치가 국제무역에 미치는 반경쟁적 효과에 대한 검토는 가장 뜨거운 부문이다.

수입국은 수출품이 정상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수입국에 수출될 때, 반덤핑조치를 통해 정상가격과 덤핑가격의 차이만큼 추가 관세를 부과한다. 수출품의 덤핑가격이 수입국 소비자의 후생을 증대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무역에서 반덤핑조치를 허용하는 이유는 1) 덤핑수출이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비교우위 확립 대신 인위적인 비교우위를 조장하여 국제무역의 질서를 왜곡시키고 문란하게 할 수 있다는 점, 2) 덤핑수출이 수입국 생산자들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 3) 덤핑가격으로 인한 수출품의 수입국에서의 독점이 장기적으로는 수출품의 급격한 가격 인상 등으로 인해 수입국 소비자들에게까지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점, 4) 이상과 같은 이유들로 인해 덤핑수출이 국제무역을 통한 세계 평화 달성과 모든 국가들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구한다는 WTO 정신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반덤핑조치의 표적이 되는 국가들인 한국, 일본 등은 반덤핑조치를 경쟁정책의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1) 반덤핑조치가 불공정한 무역을 상쇄하지 않는다는 점, 2) 반덤핑조치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수입국과 생산자 간의 수출품 가격 인상 합의는 가격카르텔을 유발한다는 점, 3) 반경쟁적 요소를 검토하는 것이 WTO의 모든 조항에 대한 재협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닐뿐더러 다자간 무역체제를 손상시키지 않는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

이에 반해 미국, EU, 호주, 아르헨티나 등의 국가들은 1) 경쟁정책적 관점에서 재검토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점, 2) 반덤핑조치는 합리적이고 정당하며, 또한 무역을 왜곡시키는 수출국 정부의 조치까지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 3) 단일 시장에서 적용되는 경쟁정책과 국경간 거래에서 적용되는 반덤핑조치는 서로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에 같이 논의될 수 없다는 점 등을 근거로 반덤핑조치의 경쟁정책의 관점에서의 검토를 반대하고 있다.

비록 다자 체제에서의 논의는 지지부진한 편이지만, 타국에 대해 공격적인 법으로 유명한 통상법 301조(일명, Super 301)를 가진 미국은 여러 국가들과 쌍무적 협상을 통해 반경쟁적 요소 제거에 힘을 기울이고 있으며, 선진국 클럽인 OECD에서도 무역위원회와 경쟁위원회의 공동 작업을 통해 무역과 경쟁정책의 상호작용 연구, 각국의 경쟁정책 비교분석, 시장접근차원에서 경제 행위의 포괄적인 검토 등을 수행하고 있다.

폭과 깊이 두 차원에서 동시에 이루어지는 매우 빠른 국제통상환경의 변화는 WTO의 여러 협정들에 산재해 있는 기존의 무역과 경쟁 의제가 무역관련 지식재산권 협정(TRIPs; Agreement on Trade-Related Aspects of Intellectual Property Rights)처럼 하나의 별도 협정으로 제정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논의 방향과 실재적 필요성을 볼 때 논의는 주로 강한 반경쟁적 성격을 보이는 경성카르텔 문제 해결에 집중될 것으로 보이며, 절차적 차원에서의 경쟁 관련 조사, 협조 등도 더불어 활발히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 무역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경우 Global Standard에 맞지 않는 후진적인 영업관행 등의 문화적 요소들을 찾아 점진적으로 개선하여 불필요한 통상마찰 유발을 줄여야 한다./사진=한진해운


무역과 경쟁 논의는 투명하고 공정한 경쟁 규범 확립 및 경쟁 촉진을 통한 경제 성장 및 발전, 외국에서의 反경쟁적 요소 제거로 인한 무역 환경 개선 등으로 인해 장기적으로 한국에 失보다 得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독자적인 정책 수립의 어려움, 무역장벽 제거로 인한 경쟁력 있는 선진국 기업들의 급격한 한국 시장 진입에 대한 대책 마련은 큰 숙제로 남아 있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경우 무역과 경쟁 의제를 피할 수도, 수세적 입장에서 소극적으로 대응할 수도 없다. 국제통상과 경쟁정책, 이 양자를 아우를 수 있는 전문가들을 양성하고, 국제통상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한국의 입장을 개진하는 동시에 국내 경쟁정책과 비교분석하여 조화를 이루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또한, Global Standard에 맞지 않는 후진적인 영업관행 등의 문화적 요소들을 찾아 점진적으로 개선하여 불필요한 통상마찰 유발을 줄여야 한다.

이상의 해결책들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한국인들의 경쟁에 대한 의식의 제고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에서는 경쟁이 의문을 제기할 필요조차 없을 만큼 너무나 당연하며 만병통치약이라고 생각하는 시각과, 경쟁은 인간을 피폐하게 만들고 사회를 야만적인 정글로 만드는 惡이라고 생각하는 시각이 서로 심하게 대립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물론 경쟁 자체가 유토피아로 가는 지름길은 아니다. 또,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잔혹한 행위도 아니다. 경쟁의 순기능이 무엇이며, 이 순기능을 어떻게 제도적 및 문화적으로 체화시켜 자유로우면서도 건전한 질서를 가진 사회를 만들 수 있을지에 관한 심도 깊은 고민과 이에 따른 적절한 실행의 병행이 이루어져야 한다. 올바른 경쟁의 철학을 재정립해야 한다. /황성훈 자유기고가

(이 글은 자유경제원 '젊은함성' 게시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황성훈]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