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짜 볼락 5짜 감성돔과도 안 바꿔…현지 소비 수도권선 맛볼 기회조차 없어
하응백의 낚시 여행- 밤 볼락을 찾아서

   
▲ 하응백 휴먼앤북스 대표·문학박사
장마철 낚시란 예측하기 어렵다. 날짜를 맞추어 놓으면 비가 오거나 주의보가 떨어지곤 하여 기대했던 출조가 무산되는 경우가 많다.

지난 7월 15일 금요일 밤이 그랬다. 7월 한치 오징어 낚시를 하려고 통영 낚싯배를 예약해 두었었다. 충북 오창에 사는 친구 권재배군과 출조하기로 하고, 오징어 채비를 준비하고 수백 마리를 잡는 영상을 머릿속에 그려가며 전날 준비를 마쳤다. 일찍 일어나 회사로 가서 금요일 일처리를 아침에 마무리하고 오전 10시쯤 통영으로 출발하려고 오전 7시 조금 넘어 회사에 도착해 이것저것 일처리를 하는데, 오징어 배에서 전화가 왔다. 오늘 밤 샛바람이 불 것 같아 출조 취소란다.

이런!

기상이 좋지 않아 배가 뜨지 못한다면 당연히 출조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만 몸이 근질근질하다. 재빨리 인터넷 검색을 한다. 통영권에서 나가는 다른 배는 없을까? 다행히 있다. 밤 볼락 낚시 출조하는 배가 있는 것이다. 전화를 하니 자리가 있단다.

계획을 급 변경하여 볼락 낚시를 하기로 한다. 수도권 사람들에게 볼락은 생소한 물고기다. 하지만 통영이나 삼천포 사람들은 볼락하면 입맛부터 다신다. 3짜 볼락은 5짜 감성돔과도 바꾸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볼락은 인기 어종이다. 생산지에서 다 소비가 되니 수도권으로 올라올 볼락이 없기에 수도권 사람들은 볼락 맛 볼 기회조차 없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럭이라 부르는 놈의 학명은 조피볼락이고, 열기는 불볼락이다. 볼락은 볼락이다. 그렇기에 볼락은 볼락류 물고기의 대표라고도 할 수 있지만 크기가 작고, 대량 포획이 안 되기에 그만큼 덜 알려져 있는 물고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볼락구이의 맛은 대단하다. 여수 사람들이 본서방에게 주지 않고 샛서방에게만 준다는 고기 군평선이 구이에 필적할 만하다.
 
부지런히 차를 몰아 오창에서 권재배군과 합류한다. 권재배군은 대기업에서 이사로 일하다가 얼마 전 은퇴하고 오창에서 자영업자로 변신했다. 가게가 자리를 잡아 제법 쏠쏠하니, 취미로 낚시를 다니기로 하였기에, 요즘은 자주 동행 출조를 한다. 집중력과 열의가 있어 조만간 나의 조과를 추월할 기세다. 둘이서 교대로 운전하여 통영 미륵도 삼덕항에 도착한다. 바람이 살랑거리는 삼덕항의 햇빛은 찬란하다. 배에 올라탄다.

   
▲ 배에서 바라본 통영 삼덕항 전경. 여기에서 욕지도나 연화도로 가는 여객선이 출항한다.

오늘 밤 볼락 낚시를 나갈 배는 통영 아이비호다. 20명의 낚시꾼이 타는 배에 오늘은 9명밖에 손님이 없어 자리가 많이 남는단다. 우리는 우측 선미에 자리를 잡는다. 조금 있으니 현지 꾼인듯한 한 분이 배에 올라타서 우리에게 그 자리가 좋지 않으니 앞으로 옮기라고 한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선장의 어탐기는 선장실 바로 옆으로 조준이 되어 있으니, 선장 바로 옆자리가 명당이란다. 그러면서 밤낚시는 조명도 중요한데, 집어등이 밝은 곳에 자리를 잡아야지 뒤로 가면 조과가 많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어디서 오셨느냐고 물었더니 거제도에서 왔다, 서울에서 회사 다니다가 은퇴하고 거제도에 집짓고 사는데 낚시가 취미라고 한다. 볼락 어초 낚시는 사실 조명과는 크게 관계가 없다는 것이 나의 낚시 상식이라 그의 행동이나 말이 어설프게 보이기도 하지만, 그의 말을 일단 믿기로 하고 앞자리로 옮겼다.(사실 갈치나 우럭 낚시 같은 경우 배의 어디에 자리 잡느냐가 크게 조과를 좌우할 때가 있다. 그래서 꾼들 사이에서는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그래서 최근에는 추첨으로 자리를 정하는 배도 많다.)

6시에 출항 예정이건만 배는 출항하지 않는다. 미풍이 부는 항구는 평화롭다. 이런 평화로움 때문에 먼 남쪽까지 천리 길도 머다 않고 달려오는 지도 모른다. 이윽고 꾼들이 모두 배에 탔다. 사무장은 얼음을 아이스박스마다 반 정도나 차게 부어준다. 얼음을 이렇게 과다하게 주는 이유는 손님들이 잡은 고기를 신선하게 보관해서 가라는 의미도 있지만 사실 다른 목적도 숨어 있다.

출항이 지연되자 꾼들이 왜 늦어지느냐고 보챈다. 호남형인 젊은 선장은 분주하게 움직이다가 해경에 출항 신고하러 갔더니 파출소장이 밥 먹으러 집에 가버려서, 다시 집까지 갔다나 어쨌다나. 한적한 시골 동네니까 가능한 이야기다. 선장이 소장 집에 가서 출항신고를 마쳤는지 이윽고 배는 항구를 빠져나간다.

장마철, 바다의 황혼 풍경에 넋을 놓는다. 저 풍경은 끝은 어디일까? 저 끝은 물론 사천 쪽이겠지만, 시간의 끝은 밤이겠지만. 더 깊은 끝이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지. 나의 낚시는 더 깊은 끝을 찾아다니는 흔적이라는 생각을 잠시 한다.   
 
   
▲ 통영 미륵도 앞바다의 황혼 무렵.

욕지도 가기 전, 배는 포인트에 진입한다. 조그만 섬 주위를 멤돌며 낚시가 시작되는 것이다.
야행성인 볼락 밤낚시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갯바위에서 집어등을 켜 놓고 하기도 하고 인조미끼를 달아 던지는 루어 낚시도 있다. 물론 대개 배낚시의 조과에는 미치지를 못한다. 배낚시도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일명 '털털이 낚시'라 해서 집어등을 켜고 볼락을 모아 잡는 낚시다. 집어등을 켜면 불빛을 좋아하는 플랑크톤이 모여들고, 이 플랑크톤을 먹으려는 멸치 같은 베이트 피쉬가 모이고, 그러면 그 멸치를 먹으려는 볼락이 모여드는 원리를 이용한 낚시다. 오징어나 갈치 낚시가 다 이러한 먹이사슬의 습성을 이용해 고기를 잡는 낚시다. 작은 봉돌과 예민한 낚싯대로 한두 마리씩 잡아내는 낚시지만 손맛이 있어 상당히 재미있는 낚시에 속한다. 몇 년 전에 통영에서 이 낚시로 재미를 본 적이 있기도 하다.

오늘 볼락을 잡는 방법은 낮에 하는 우럭 낚시나 열기 낚시와 거의 같다. 바늘이 6개나 7개 달린 카드채비에 갯지렁이를 끼워 다수확을 노리는 낚시다. 볼락이 서식하는 바위지대(자연초)나 인공어초를 찾아가 몽땅걸이를 노리는 것이다. 때문에 이 낚시는 선장의 배대는 실력과 낚시꾼의 실력이 합쳐져야 좋은 조과를 올릴 수 있다.

포인트에 진입하자말자 배 뒤쪽에서부터 두어 마리의 볼락이 올라온다. 나에게도 입질이 온다. 볼락 특유의 탈탈거리면서도 앙칼진 입질이다. 볼락 낚시는 이때 올리면 안 된다. 왜냐하면 볼락은 먹이 경쟁을 하므로 한 마리가 물면 다른 녀석들도 따라서 무는 경향이 많기 때문이다. 지형에 따라 낚싯대를 오르락내리락 하기도 하고 연이어 올리기도 하면서 여러 마리를 동시에 붙이는 게 볼락 낚시의 요령이다.

하지만 이게 말은 쉽지만 해보면 상당히 어렵다. 물밑 지형을 알 수 없기도 하려니와 모든 일이 그렇듯이 공식대로 되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경험이 많은 현지꾼들은 다섯 마리 정도 줄을 태운다. 나는 기껏 한 두 마리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 장마철에 귀한 볼락을 잡을 수 있는 것만도 천운이다, 라고 생각하며 오늘은 오십 마리만 잡자고 생각한다. 옆에서 낚시하는 권재배군은 오늘이 볼락 낚시는 처음이라 서툴지만 열심히 낚시를 하고 있다.

갯지렁이를 통째로 끼우고 채비를 바닥에 내려 바닥을 확인하고 조금 올려서 기다리다가 탈탈거리면 요령껏 다른 개체의 입질을 유도하는 것. 이것이 상당한 숙달이 필요하다. 채비가 바람에 날려 엉키기도 하고 옆 사람과 걸리기도 하고 바닥에 봉돌이 걸려 채비를 아예 새로 해야 되기도 하기 때문에 그런 함정들을 피해 세련되게 채비를 운용해야 하는 것이다. 열댓 마리 잡았을까? 나는 볼락으로 뼈회를 친다. 겨울 볼락이 맛있다고들 하지만 회를 쳐서 먹어보니 오히려 지금이 더 달다. 볼락회 맛은 부드럽고 고소하고 달다.
 
   
▲ 선상에서 즐기는 볼락회. 고소하고 달다.

최근 선상에서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으면 벌금 100만 원이라고 한다. 잘한 일이다. 그런데 선상에서 음주를 하면 역시 벌금 100만 원이라 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일어난 해난 사고의 원인 중의 하나에 승객의 음주 때문인 적이 있었던가? 이런 것을 두고 탁상 행정이라 한다. 낮술이라도 한 잔 하시고 정한 모양이다. 과도한 음주는 물론 금물이지만, 가벼운 술 한 잔은 선상 낚시의 활력소다.

권재배군과 나는 소주 한 병으로 선상회 파티를 끝낸다. 벌금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볼락을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볼락이 붙기 시작한다. 선미에 자리 잡은 꾼의 초릿대부터 탈탈거리기 시작하면 곧이어 나의 낚싯대에도 신호가 오고 권재배군의 낚싯대도 앙탈을 부린다. 열기나 볼락 낚시의 묘미가 바로 이것이다. 한 마리가 붙으면 기다리면서 그 긴장을 즐기는 것. 어느 정도 줄을 태웠다 싶으면 채비를 회수한다. 권재배군도 한꺼번에 다섯 마리를 올린다. 그가 만세를 부른다.

   
▲ 볼락 다섯 마리를 잡은 권재배군. 통영 음식점에서 볼락 구이 두 마리에 1만 5천원을 하니 3만원치를 한 번에 낚은 셈이다. 만세다.

그 후로도 조금 소강 상태를 보이다가 잡히기도 하다가 그렇게 밤이 홀딱 지나간다. 2시 30분경이 되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밤새도록 하고 싶지만 선장은 철수하자고 한다. 늘 철수 시간이 되면 아쉽다. 더 많이 잡고 싶은 욕심도 욕심이지만 낚시 그 자체가 재미있는 것이다. 낚시가 끝나고 선장은 아이스박스를 배 앞으로 모아 사진을 찍는다. 그 사진을 낚싯배 홈페이지 조황정보란에 올려 낚싯배를 홍보하려는 것이다.

이때 대개의 선장들은 낚은 고기를 정리한다. 큰 고기를 위에 놓아 가급적 조황이 잘 나오게 하려는 것이다. 얼음을 많이 채워준 것도 고기가 아이스박스 가득 차게 보이게 하려는 깊은 의미도 숨어 있다. 다들 그렇게 하니 따라서들 하지만, 꾼들은 또한 대개 안다. 그렇게 해서 부풀린 조황 사진을 찍는 장면에 익숙하기에 그런 사진을 보면 아 밑에 반은 얼음이구나 하고 짐작하는 것이다.

이날 선장은 부지런히 배를 잘 대어주었고, 포인트 선택도 좋았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요즘 철은 인공어초보다 자연초(바다 밑이 바위인 곳)에 볼락이 주로 서식한다고 한다. 씨알이 약간 잔 것이 흠이지만 그러도 썩 훌륭한 조과였다.

   
   
▲ 쿨러 가득 담긴 볼락. 아래 얼음을 감안하더라도 이날 조과는 썩 좋았다.

철수할 때 보니 현지꾼들은 상당히 많이 잡았다. 선미에 자리 잡은 꾼은 거의 150마리를 잡은 듯하다. 그 자리에 그냥 있었을 걸 하는 후회도 한다. 귀가 얇은 나의 탓이다. 나는 한 80여 마리 잡았을까? 하지만 이것으로 대만족이다. 주말 회로, 초밥으로, 구이로, 탕으로 즐길 것이다.

3시가 조금 넘어 우리는 부지런히 운전을 해서 푸짐한 전리품을 안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토요일 아침 서울에 도착해 한 숨 자고 난 뒤 오후, 맛의 파티가 시작되었다. /하응백 휴먼앤북스 대표·문학박사
   
   
▲ 볼락 초밥. 작은 볼락 한 마리에서 회 두 장이 나온다. 위 초밥은 10마리의 볼락.

   
▲ 볼락 회. 좀 큰 녀석은 회로. 회를 치고 남은 서더리와 내장을 모아 푹 곤 뒤 뼈를 걸러낸 국물은 비린내가 거의 없어 미역국 베이스로 매우 훌륭하다. 이렇게 하면 볼락은 버릴 게 하나도 없는 생선이다.

   
▲ 볼락 맛의 결정판. 볼락구이. 고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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