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법률준수 집중…"경제적 타격 불가피" 우려
28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인 이른바 ‘김영란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이 내려지면서 대다수 기업 등 재계는 앞으로 불이익을 받지 않게 위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재계는 그동안 공직자와 공공기관·유관단체, 언론 종사자 등이 1회에 100만원 이상의 금품을 수수할 경우 직무관련성이 없더라도 형사처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김영란법에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부정청탁금지법)'이 합헌으로 결정난 28일 서울 헌법재판소 앞에서 한국농축산연합회 함태수 사무총장이 김영란법을 적용한 한우선물세트를 5만원어치를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29일 재계에 따르면 기업 홍보·대관 담당자들은 헌재 결정에서 배우자 신고의무나 언론인·사립교원 포함 여부 등 그간의 쟁점에 관해 모두 합헌이 난 것에 대해 일단 ‘법률 준수’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삼성, LG 등 주요 기업은 “김영란법이 헌법재판소에서 원안대로 통과한 만큼 법을 지키는데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면서 “다만 김영란법 시행 이후 업무수행 과정에서 부득이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는 기업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길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지금까지 무심코 관행적으로 해오던 일이 문제가 되지 않는지 관련된 임직원들이 전반적으로 다시 체크를 해봐야 할 상황”이라며 “세부내용을 들여다보고 법에 저촉될 만한 소지가 있다면 관행을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법 적용 대상이 너무 광범위한 반면 시행세칙 등 구체적인 내용은 불명확한 부분이 많아 준비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그동안 대관 파트 등의 관행이 많이 바뀌어서 이제는 100만원이 넘는 금품을 주는 사례가 거의 없는 것 같다. 실제로 법 적용이 많이 될 것 같지는 않다"면서도 "일부 후미진 부분이나 규모가 좀 작은 기업에서는 법에 어긋날 가능성이 있는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했다.

김영란법의 처벌 기준이 불명확한 부분이 있어 현업에서 대관, 홍보 등을 담당하는 실무자들이 혼란을 겪을 수 있으며, 업무수행에도 애로사항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현대기아차, SK, 현대중공업 등 주요 기업은 법무팀을 중심으로 관련 부서에서 김영란법 시행에 대비해 다방면의 준비에 돌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내부적으로 김영란법 위반 시나리오를 만들고, 경조사비 등에 대한 매뉴얼을 정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않는다.

재계를 대표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최근 회원사 임원협의회를 대상으로 '부정청탁금지법과 기업의 대응전략' 설명회를 개최하고 금품수수액과 과태료 부과 등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지난달에는 국민권익위 간부를 초청해 김영란법 세부 적용 범위 강의를 들었고, 이달에는 대형법무법인 김앤장 변호사를 초청해 강의를 들었다.

이와 관련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28일 강원도 평창에서 개막한 전경련 CEO 하계포럼에서 김영란법과 관련해 “(김영란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의견을 존중한다”면서 “다만 (김영란법에) 문제가 생기면 빨리 개정해야 한다. 그래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허창수 회장은 또 “법을 시행한 후 6개월 이내에 무슨 문제가 나타나면 국회가 빨리 법 개정을 해서 보완해나가야 한다”며 “지켜지기 어려울 법은 결국 바뀌게 돼 있다. 과거 법을 보면, 나중에 유명무실하게 되는 케이스를 많이 봤다. 나는 그런 케이스가 되지 않을까 우려한다"고 말했다.

이날 포럼에 동석한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은 “헌재 결정을 보고 우리나라가 어려운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김영란법에 대한 헌재의 합헌 판단이 경제 현실을 외면한 채 명분을 중시한 결정이라는 취지로 언급하기도 했다.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주요 경제단체 역시 경제위축 등에 대한 우려 속에서도 헌재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들 경제단체는 “청탁금지법 위헌여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내용을 존중한다”며 “기업들이 앞장서 실천함으로써 한층 투명하고 깨끗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가는 데 힘써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청탁금지법 시행에 따른 혼란을 줄이고 어려운 경제 상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주무부처인 국민권익위원회가 법 적용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나 김영란법 시행으로 인한 내수경기 위축과 모호한 법 내용으로 인해 정상적인 기업 활동에 제약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대한상의는 “합법과 위법의 경계가 여전히 불분명해 자칫 정상적인 친목교류와 건전한 선물 관행마저 위축될 것으로 우려된다”며 “소비위축과 중소상공인 피해 등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해 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경총은 장기불황을 겪고 있는 경제 현실을 감안할 때, 현행대로 법과 시행령이 시행될 경우 발생할 심각한 내수경기 위축 등 경제적인 타격을 우려했다.

경총 관계자는 “헌법재판소의 결정과는 별도로 향후 개념의 모호성, 경제적 타격 등 법 시행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할 후속대책이 논의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매출 감소 등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중소기업계는 소상공인 등 영세 사업자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중기중앙회는 “법 제정의 목적을 달성하되 직접적인 피해가 예상되는 소상공인과 농림축수산인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며 “법의 취지가 좋더라도 전반적인 사회 현실에 맞는 충분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김영란법 제정의 목적을 달성하되 직접적인 피해가 예상되는 소상공인과 농림축수산인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미디어펜=김세헌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