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유착' 성장은 오해에 불과…1965년부터 지금까지 살아남은 기업, 손꼽혀
   
▲ 권혁철 자유경제원 자유기업센터 소장
권박사의 기업바로알기: 대규모 기업집단은 진화의 산물

한국에서 기업에 대한 비판의 대부분은 '재벌’이라고도 불리는 대규모 기업집단을 향하고 있다. 반기업정서의 근원이 그렇듯이 대규모 기업집단에 대한 비판도 뚜렷한 근거가 없거나 기업에 대한 이해의 부족과 부(富)에 대한 질시에서 비롯된 것이 적지 않다.

대규모 기업집단의 출현 및 성장과 관련된 논의부터가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 대규모 기업집단이 정경유착을 통해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그런 면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을 지라도, -대부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것만으로는 대규모 기업집단의 실제 모습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특히나 기업의 성장ㆍ발전을 정경유착과 연계시켜 보는 시각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장이라는 생태계, 그리고 그 속에서 적응과 진화를 거듭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생명체’로서의 기업을 포착하지 못하게 만든다. 

   
▲ 시장이라는 변화무쌍한 생태계, 그리고 그 속에서 적응해야만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기업은 시장에서 퇴출된다. 대규모 기업집단, 소위 재벌은 그 진화의 산물이다./사진=미디어펜


“1965년 (우리나라) 100대 기업 중에서 1997년 100대 기업으로 생존한 기업은 13개에 불과하며, 1997년 외환위기 이후 30대 그룹 중에서 16개 그룹이 도태되었다.

한국뿐만 아니라 1960년 이후 세계 100대 기업의 30년 간 생존율은 38%, 미국과 일본은 20% 정도에 불과하다.

세계에서 창업 후 100년이 넘은 기업은 미국 152개, 영국 41개, 독일 24개 등이다. 한국은 두산그룹, 동화약품, 신한은행, 우리은행, 광장주식회사, 몽고식품 등 6개다.

시장이라는 변화무쌍한 생태계, 그리고 그 속에서 적응해야만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기업은 시장에서 퇴출된다.

이러한 사실은 아래에 있는 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50년 간의 우리나라 대규모 기업집단의 순위 변화를 보여주는 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많은 대규모 기업집단이 생겨났다가 사라졌다.

상위에 올라와 있는 대규모 기업집단의 면면을 보면, 관건은 정경유착이 아니라 시장에서의 경쟁력이라는 점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우리나라 기업들이 시장, 특히 국제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유지·강화하는 데 있어 대규모 기업집단이 보다 유리한 여건을 조성해 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 표. 지난 50년 간 우리나라 대규모 기업집단(대기업, 재벌)의 순위 변화


첫째, 대규모 기업집단은 판매자와 구매자 간의 정보 부족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구매자는 지명도가 낮은 판매자보다는 브랜드의 평판이 높은 판매자를 선호한다. 대규모 기업집단은 브랜드의 평판을 높이는 데 유리하며, 이렇게 해서 높아진 평판은 새로운 사업 진출에도 큰 도움이 된다. 

둘째, 특히 해외시장에 진출하는 경우 해외시장에 관한 정보는 많은 비용을 들여야만 획득할 수 있다. 이렇게 많은 비용을 들여 일단 획득한 정보를 여러 가지 상품에 활용하는 것은 정보획득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다. 시업의 다각화와 대규모 기업집단으로 발전하는 것은 이러한 합리적 선택의 결과이다.

셋째, 자본시장에서의 정보 문제도 마찬가지 이유로 해소될 수 있다. 선진국의 자본시장과 달리 신흥국가의 자본시장은 정보 부족과 제도적 장치의 미비로 특징지어진다. 이런 환경에서 대규모 기업집단은 앞서 말한 높은 평판을 바탕으로 외부 자본을 보다 용이하게 조달할 수 있다.

또한 외부 자본이 아니더라도 대규모 기업집단은 새로운 대규모 사업에 진출할 경우 내부적으로 자본을 조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인다. 이렇게 해서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의 반도체 사업 진출이다. 

넷째, 노동시장에서의 정보 부족 문제도 일반 기업에 비해 대규모 기업집단이 보다 수월하게 해소할 수 있다. 부족한 고급인력을 사내교육을 통해 충원하고, 훈련된 경영자와 근로자를 새로운 사업 분야에 배치하여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는 이점을 갖고 있다.

다섯째, 시장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상태에서 대규모 기업집단은 거래에 따르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즉 시장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상태에서 거래에 따르는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는 새롭게 포착한 사업기회를 기존 기업에 내부화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런데, 여기서 발생하는 한 가지 문제는 내부화에 따르는 경제계산의 어려움이다. 다시 말해 시장거래가 활발하지 않기 때문에 대규모 기업집단 내부의 상호 거래에서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자원의 기회비용을 잘 알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이런 경우 법적으로 독립적인 계열기업을 만들어 서로가 서로에게 외부 시장의 기능을 함으로써 시장 정보를 만들어 내고 활용할 수 있다. 

이런 경제적 이점들이 있기 때문에 대규모 기업집단이 형성되는 것이며, 또한 그렇기 때문에 대규모 기업집단은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신흥시장은 물론 선진국에도 존재하는 생산구조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대규모 기업집단이 나름의 경제적 이유들을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 시장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상태에서 대규모 기업집단은 거래에 따르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사진=미디어펜


대규모 기업집단은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생존하기 위해 진화해 온 결과이다. 그리고 그 진화의 결과 우리나라가 성공적인 경제성장을 이루는 데 든든한 바탕이 되어 왔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진화해 왔다는 것이고, 또 앞으로도 진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이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대규모 기업집단은 시장에서 퇴출되는 운명을 맞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일부 '재벌개혁론자들’처럼 진화의 결과를 이미 알고 있다는 식의 '지적 오만’을 경계해야 한다.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환경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는 온전히 기업과 기업가의 몫이다.

다양한 방향으로의 변화, 그리고 이렇게 해서 탄생된 다양한 생산구조들의 경쟁 속에서 성장과 퇴출을 거침으로써 우리나라 기업들의 경쟁력은 한층 높아질 것이다. /권혁철 자유경제원 자유기업센터 소장

참고문헌
김영용, 『기업』, 프리이코노미스쿨, 2014, pp. 84-93.


(이 글은 자유경제원 '세상일침' 게시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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