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선고 받은 세계화에 대한 변론…폐쇄경제보다 개방경제 효용성 입증
피고 '세계화'는 무고하다…그를 위한 변론

미국의 대선 진행 상황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착잡함과 우울감, 때론 참담함만이 내면을 지배한다. 트럼프의 막말과 성추문, 힐러리의 일구양설(一口兩舌). 그래, 이 모든 것들은 후보 개인의 저급한 도덕 수준 탓쯤으로 돌려볼 수 있다. 이 땅에 도덕적으로 완벽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으며, 특히 정치인 중엔 얼마나 희박하겠는가.

그러나 무역과 세계화에 대한 이들의 한결같은 근시안적 인식과 무지는 필자를 아연실색케 한다. "관세를 높이겠다." "무역협정을 파기하겠다." "탈출세를 매기겠다." 그들에게 느끼는 참담함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 세계를 번영으로 이끌어왔고, 또 그들의 조국 미합중국이 반세기 넘게 장려해 온 '세계화'를 이젠 버리겠다는 이 신고립주의의 선언 앞에 도무지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 당황스럽기만 하다. 사형선고를 목전에 두고 있는 피고 '세계화'를 위해 미약하게나마 변론을 해보고자 한다.

세계화로 인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중산층들의 상당수가 안정적인 일자리를 잃은 것은 사실이다. 특히 철강, 조선, 자동차 등 전통 제조업 분야의 일자리가 많이 사라졌다. 이들 산업의 상당수가 신흥국들에 추월당하고, 또 살아남은 기업마저도 값싼 노동력을 찾아 생산 기지를 신흥국으로 옮긴 탓이다.

그러나 우린 그러한 세계화 덕분에 지난 20여년 간 전세계 20억 명이 절대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었음을 잊어선 안 된다. 이달 초 세계은행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하루 1.9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극빈층이 2012년 8.8억 명에서 1년 만에 7.7억 명으로 줄어들었다. 세계 인구 기준 지니계수도 1988년~2015년 사이 0.05가량 낮아졌다. 세계화가 가져다 준 크나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 미국의 대선 진행 상황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착잡함과 우울감, 때론 참담함만이 내면을 지배한다. 트럼프의 막말과 성추문, 힐러리의 일구양설(一口兩舌) 때문이 아니다./사진=힐러리(좌), 트럼프(우) 각 페이스북 페이지


이러한 중산층의 증가는 단순히 인류애적 관점에서만 바라볼 일이 아니다. 빈곤층이 줄고 중산층이 늘었다는 것은 그만큼 수요와 시장이 확대됐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전통 산업의 쇠퇴에도 불구하고 미국, 독일 등 선진국들이 지속적으로 경제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었던 까닭은 신흥국들이 추격할 수 없는 '기술적 해자(moat)'를 구축해, 넓어진 시장을 공략해왔기 때문이다. 중국이 중저가 기계를 만들 때 미국은 최첨단 기계제어시스템을 만들어 냈고, 한국이 소나타를 만들 때 독일은 포르쉐를 만들어 냈다.

세계화가 없었다면 선진국의 경제 진보는 지금보다 훨씬 느리게 이뤄졌을 것이다. 시장의 규모는 제한되어 있었을테고, 혁신에 대한 압력도 덜 했을테니 말이다. 개방경제가 폐쇄경제보다 제공하는 효용이 훨씬 많다는 교과서 이론의 실증이다.

일부 좌파 경제학자들은 선진국 내부의 양극화 심화를 지적하지만, 이는 아무 의미가 없다. 선진국의 중산층들은 서비스업으로 넘어가며 상당수가 고용 안정을 포기해야 했지만, 신흥국과의 무역으로 좋은 제품을 낮은 가격에 소비할 수 있게 되었다. 선진국 내부의 기술 혁신 덕분에 엄청난 삶의 질 향상도 경험했다. 이들 국가에서의 양극화는 상위 계층이 세계화의 흐름 속에 남들보다 앞서 혁신 기회를 포착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긴 결과다. 하위 계층을 착취해 촉발된 것이 아니다.

특히 개방경제 하에서 얻어진 상위 계층의 부는 그 정당성이 매우 높다. 폐쇄된 경제에서 지대를 추구한 것이 아닌 치열한 글로벌 경쟁을 뚫고 기어이 성공을 일궈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부가 잘못된 것이라면 도대체 어떠한 부가 '올바른' 부란 말인가. 선진국의 양극화를 세계화 폄훼의 근거로 삼을 순 없다.

   
▲ 세계화 덕분에 지난 20여년 간 전세계 20억 명이 절대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었음을 잊어선 안 된다. 이달 초 세계은행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하루 1.9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극빈층이 2012년 8.8억 명에서 1년 만에 7.7억 명으로 줄어들었다./사진=한진해운


비개방 시대가 좋았다는 생각은 일종의 '기억 편향'이다. 고용의 안정성과 그리 치열하지 않았던 경쟁이 이러한 기억 편향의 뿌리다. 하지만 그 때보다 지금의 삶이 더 풍요로움은 개개인이 사용하는 각종 도구와 주변의 물리적/사회적 환경을 돌아보면 너무나도 명징해진다. 단지 그 때보다 고용이 불안하고 치열한 경쟁에 노출되며, 심리적인 부담감이 커졌을 뿐이다. 그 부담감은 지금 우리가 누리는 고도의 문명을 추동한 혁신의 원천이다. 힘들이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묵묵히 우리에게 번영을 가져다 준 피고 '세계화'에 온갖 누명을 씌워 기소한 트럼프와 힐러리, 그리고 좌파 경제학자들에게 고한다. "그에겐 죄가 없다. 죄가 있다면 그의 면전에서 저주의 굿판을 벌이고 있는 당신들에게 있을뿐." /박진우 리버럴이코노미스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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