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132)-검선합일(劍禪合一)의 궁극의 검법
미야모토 무사시(1584~1645) 『오륜서(五輪書)』

   
▲ 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초등학교 시절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 소설 <삼국지>와 <미야모토 무사시>였다. 누가 번역한 책인지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긴장과 흥분을 느끼게 하는 대목들이 많아 몇 번이나 읽었던 생각이 난다. 그런데 성장하면서 <삼국지>가 진짜 '삼국의 역사'와 거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미야모토 무사시의 일생 역시, 많은 부분이 덧붙여지고 꾸며진 픽션이란 걸 알게 된다.

하지만 이들의 영웅적 모습에 대한 잔상들이 병서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 준 것은 틀림없다. 30대 중반에 4년 동안 검도에 열중했던 것도 그 영향의 하나일 듯싶다. 죽도를 높이 쳐들고 기합소리와 함께 기세 좋게 내닫지만, 어느 순간에 사범의 날카로운 죽도가 먼저 내 투구의 앞머리를 치고 나가곤 했었다. 검도에서는 속도와 독심술, 기세, 기술, 자세, 정신력. 이 모든 것이 서로 절묘하게 융합될 때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 눈과 눈의 대결, 예리한 순발력이 승패를 가른다. 이러한 현대 검도의 연원이 된 책이 바로 <오륜서>이니 검도인들에겐 경전이나 마찬가지다.

<오륜서(五輪書)>는 세계 3대 병서의 하나로 꼽히는 어엿한 병서이다. 목숨을 놓고 싸우는 개인 간의 대결이 확대된 것이 전쟁이라고 본다면, 상대를 이기는 검법은 더 큰 전쟁에서 이기는 병법의 초석이 되기 때문이다. <오륜서>는 미야모토 무사시가 노년에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검법의 교과서이다. 다만 다른 두 권의 세계 최고의 병서인 손무의 <손자병법>이나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이 전쟁에서 이기는 군사 전략과 전술, 용병의 비법을 다룬 '대병서(大兵書)'라면, <오륜서>는 무사 개인의 검법의 수련과 병법에 초점을 맞춘 '소병서(小兵書)'로 볼 수 있다. 

미야모토 무사시는 열세 살부터 스물아홉 살에 이르기까지 총 60여 차례의 결투(무술시합)에서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어 일본인에게 천하무적의 검성(劍聖)으로 추앙받는다. 무사시는 평생 수련하여 터득한 자신의 검법과 병법을 <오륜서>에 담아 164O년대에 제자에게 전수하였다. 이후 막부 시대 이래로 이 책은 최고의 병서로 일본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무사시는 쌍칼의 고수였다. 그는 긴 칼인 다치와 단도인 와키자시를 동시에 사용하는 방법을 창안했다. 이른 바 '니텐이치류(二天一流)'라는 자신만의 검법을 만들어 낸 것이다. <오륜서>는 중국의 다른 병서에 비해 분량이 적고 압축적이다.

무사시는 선(禪)을 수련했다. 이는 무사로서의 그만의 독특한 경지를 개척하는 밑거름이 된다. 그는 오륜, 즉 우주의 5대 원소인 지(地), 수(水), 화(火), 풍(風), 공(空)에 견주어, 자신의 검법과 병법을 다섯 개의 장으로 나누어 제시했다.  

'지(地)의 권'에서는 병법의 도를, '수(水)의 권'에서는 니텐이치류의 연마 요소를, '화의 권'에서는 병법 실천의 깊은 깨달음을, '풍(風)의 권'에서는 다양한 검도 유파의 풍격의 장단점을 기술하고, 마지막 '공(空)의 권'에서는 "사물 안으로 들어갈 수도, 밖으로 나올 수도 있다"며 앞서의 모든 검법과 병법을 잊고 오로지 마음을 좇을 때 최고의 병법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무사시는 검법을 칼 쓰는 기교로서가 아니라, 정신 수양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지는 검선합일(劍禪合一)의 경지를 추구했다. 그가 마음의 평정심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이유다. 그는 표면적으로 칼과 칼의 대결이라는 국면을 결국 마음과 마음의 대결로 이해했고, 따라서 승리의 비법은 ‘마음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길이라 생각했다.

물론 무사시는 '병법의 도'는 '승리의 도'라는 냉혹한 진리를 잊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사물은 일정한 흐름을 갖고 있고 병법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각고의 연마를 통해 승패를 결정하는 흐름을 판별해 내고 상대방의 흐름을 제압하여 승리의 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니텐이치류의 아홉 가지 원칙도 평소 결투의 흐름을 제어할 수 있는 무사로서의 역량을 함양하기 위한 규율에 다름 아니다.

1. 의리가 있는 바른 도를 생각한다.
2. 각고의 노력으로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한다.
3. 여러 가지 재능과 기예를 접해 풍부한 경험을 쌓아 수련해야만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4. 다양한 직능의 도를 안다.
5. 세상일의 이해득실을 따질 줄 안다.
6. 매사에 현명한 판단력을 기른다.
7. 눈에 보이지 않는 곳까지 꿰뚫어 보는 안목을 기른다.
8. 사소한 일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9.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은 하지 않는다.  

'수(水)의 권'에서 무사시는 마음가짐이 평화롭고 온화해야 결투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평상심을 유지하는 지혜를 항상 갈고 닦을 것을 주문한다. 이를 바탕으로 무사의 격투 자세와 검을 잡는 법, 걸음법, 다치의 활용법, 몸 동작, 공격과 방어법 등을 세밀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가 제시하는 검법의 요체는 빠름과 교묘함을 적절하게 교합하고, 사람과 검이 하나가 되는 인도합일(人刀合一)을 추구한다. 

'화(火)의 권'은 적을 이기는 다섯 가지 방법으로 적정을 살피고 겁을 주거나, 적군을 동요시켜 사기를 떨어뜨리거나 아군의 의도를 모르게 하는 등 탐색, 공갈, 마비, 균형 깨뜨리기, 혼란의 병법과 함께, 위치 선점과 기선 잡기 등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는 책략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심리전으로 상대방을 이기는 것이 상책이라는 '공심위상(攻心爲上)'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라는 손자병법의 '부전이승(不戰而勝)'의 계책과 일맥상통한다. 

'풍(風)의 권'에서는 검도의 다양한 유파를 소개하면서 검의 길이, 검의 종류, 기술, 자세, 속도, 힘 등 다양한 요소 중 어느 것 하나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유파의 풍격을 맹신하지 말 것을 경계하면서, 상황에 맞게 다양한 요소를 적절하게 배합시킬 것을 주장했다. 승리를 위한 고정된 자세가 있을 수 없다는 '무구지구(無構之構)'를 강조한 이유다. 무사시는 병법에 묘수가 있을 수 없고 오로지 병법의 진수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오랜 동안의 정신의 수련과 체험으로 체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공(空)의 권'에서 무사시의 검법과 병법의 진수가 빛난다. 이제까지 4가지의 병법을 열거하고 나서 마지막 장에 와서 그 모든 것을 잊으라 한다. "병법 안으로 들어가 병법 밖으로 나오라"는 경지는 마음의 모든 미혹을 버린 투명한 공명의 경지에 도달하지 않으면 그 의미를 제대로 깨달을 수 없다. 무사시가 자신의 선의 철학을 검법에 녹여내어 하나의 '무도(武道)'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의 선학사상(禪學思想)이 짙게 배어 있는 것이 바로 임종 전에 쓴 독행도(獨行道)이다. 무사시는 한 사람의 검객을 넘어 끊임없이 자신의 인격을 완성하기 위해 정진하는 선자(禪者)의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을 다잡던 21가지 규율이다. 어느 것 하나 실천하기 수월한 것이 없어 보이고, 현대인에게도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을 만한 내용이 많다. 

1. 세상의 도리를 거스르지 않는다.
2. 평생 향락에 빠지지 않는다.
3. 모든 일에 타인의 탓을 하지 않는다.
4. 자신은 가볍게, 다른 사람은 중요하게 생각한다.
5. 평생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6. 행한 일은 후회하지 않는다.
7. 선이든 악이든 다른 사람을 시샘하지 않는다.
8. 이별을 슬퍼하지 않는다.
9. 모든 일에 원망하지 않는다.
10. 연모의 정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다.
11. 모든 일에 특별히 좋고 싫음이 없다.
12. 사치를 탐하지 않는다.
13. 제 몸 하나를 위해 좋은 음식을 탐하지 않는다.
14. 소장품이 될 오래된 물건을 갖지 않는다.
15. 몸에 해로운 일을 하지 않는다
16. 병기 외에 특별히 도구를 즐기지 않는다.
17. 도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
18. 늙은 몸에 재물은 필요 없다.
19. 불신(佛神)을 받들되 의존하지 않는다.
20. 죽더라고 명예는 버리지 않는다.
21. 항상 병법의 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미야모토 무사시는 자신의 삶과 <오륜서>를 통해 무사로서의 기술과 철학을 여실히 보여줌으로써 후대 무사들이 추구할 경지를 제시했다. 생사를 가르는 결투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오로지 칼과 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수양과 깨달음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일본의 '무사도' 정신의 근원이 되었던 것이다.

'무사의 시대'가 막을 내린 이후 무사시의 검법은 현대 스포츠로서의 검도로 맥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오륜서>의 무사도와 선(禪)사상은 어려운 경영환경을 헤쳐 나가는 경영인들에게도 많은 시사를 주는 하나의 정신문화이자 경영철학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다만 <오륜서>가 개인 간의 검법과 결투에서 승리하기 위한 내면의 수양 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대규모 전투와 전쟁의 전술과 전략으로 활용할 만한 요소가 상대적으로 미흡하다는 점은 이 책이 갖는 근본적인 한계인 동시에 특장점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무사시가 군대의 지휘관이 아니라 평생 방랑과 결투, 검법의 사범으로서의 일생을 살았던 것과 무관치 않다. /박경귀 대통령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 ☞ 추천도서: 『오륜서』, 미야모토 무사시 지음, 류서우징 풀어씀, 노만수 옮김, 일빛(2011), 472쪽.

[박경귀]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