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들 의기투합 비응항으로…'봄 주꾸미, 가을 낙지' 맛의 향연
[하응백의 낚시여행]-문인들의 주꾸미 낚시

   
▲ 하응백 휴먼앤북스 대표·문학박사
주꾸미 낚시 시즌이 시작되었다. 해마다 8월 중순 이후면 서해의 원산도, 연도 등지에서 주꾸미가 선보이고, 오천항, 대천항, 홍원항, 비응항 등지에서 수백 척의 주꾸미배가 출조를 시작한다. 주꾸미 낚시의 인기는 낚시를 하지 않는 분들의 상상 이상이다. 주말은 한 달 전에 배 예약이 다 차버려 배 예약하는 것도 대단히 어렵다.

8월 27일, 소설가 조용호와 시인 장석남과 의기투합 주꾸미 낚시를 가기로 했다. 조용호는 기자이자 소설가. 김제 출신으로 전통적이고 서정적인 소설을 꾸준히 써왔다. 필자와는 10여 년 전부터 가끔씩 우럭낚시를 다녔다. 새로운 서정시를 추구하는 시인이자 교수인 장석남은 덕적도 출신. 그래서인지 그에게는 낚시꾼의 DNA가 있다. 오래전 덕적도에서 망둥이 낚시를 같이 해본 적이 있다. 당시 망둥이가 잡히지 않자 장 시인은 "그 많던 망둥이가 어디로 갔을까?"하고 탄식을 한 적이 있다.

   
▲ 소설가 조용호, 전북 김제가 고향으로 감성적이고 서정적인 소설을 노래처럼 쓴다.


   
▲ 시인 장석남, 인천 덕적도가 고향이고, 신서정시의 기수로 평가된다.

장시인은 필자가 90년대 초반 갓 등단했을 때 당시 문학정신이라는 월간 잡지의 편집장이었다. 당시만 해도 메일이 활성화되기 전이라 집 전화로 원고청탁을 받고 직접 원고를 가져다 줄 때였다. 잡지사가 동숭동이라 원고 마감 날이 되면 원고를 가지고 잡지사로 갔다. 그러면 으레 몇 명의 문우들을 만나는 것이라 반갑게 조우를 하고 곧장 술집으로 가곤했다. 그때 장시인이 늘 끼게 마련이었으니, 그때 나눈 술잔이 얼마나 될까? 한 달 한 달의 글 속에는 그 만큼의 술잔이 겹겹이 쌓이던 시절이었다.

성북동에서 장시인을 태우고 매송에서 조작가와 합류, 차 한 대로 군산 새만금 방조제 입구 비응항으로 달린다. 장시인과 조작가도 잘 아는 사이라, 이야기는 화기애애하다. 사실 출조 때 가장 즐거운 시간은 고기를 잡을 때보다 고기를 잡으러 함께 갈 때 차 속에서 이야기의 꽃을 피울 때이다. 갖은 '뻥'과 에피소드가 난무한다. 문학 이야기도 하느냐고? 안합니다. 단 한 마디도.

비응항 입구에서 백반으로 아침을 먹고 미리 비응항으로 간다. 비응항은 새벽부터 인산인해다. 넓은 비응항 주자장이 꽉 차서 주차를 이면도로에 해야 할 지경이다. 예약해 둔 군산 대호피싱호에 올랐다. 대호피싱호 김성철선장은 별명이 헐크다. 왜 헐크인지 모르지만 배사나이답게 배포가 크고, 배를 잘 댄다.

   
▲ 군산대호피싱호의 김성철선장, 별명이 헐크다.

우럭낚시와는 달리 주꾸미낚시는 정밀한 포인트가 있는 것이 아니어서 대충 포인트에 배를 대충 진입해도 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물때와 바람의 방향을 살피고 낚시꾼들이 낚시하기 좋게 배를 대고 줄을 잡아주어야 한다. 조류나 바람에 줄이 날리면(사선으로 내려가면) 옆 사람과 십중팔구 채비가 엉키기 때문에 낚시의 효율성이 줄어든다. 때문에 선장은 줄이 뻗는 방향을 보고 반대쪽으로 수시로 배를 조금씩 옮겨주어야 꾼들이 편하게 낚시할 수 있는 것이다. 헐크선장은 그런 점에서 썩 숙달되어 있다.

폭염이 8월 내내 지속되더니 거짓말 같이 출조 전날 갑자기 가을이 되었고, 그러더니 아침부터 바람이 많이 분다. 바람이 불면 배가 흐르기 때문에 낚시하기가 힘들고 파도도 많이 치기에 좀 걱정이 되었다. 장시인이나 조작가가 다른 낚시는 많이 해보았지만, 주꾸미낚시는 처음이기에 적응할 수 있을까 내심 걱정이 되는 것이다. 

   
▲ 멀리 주꾸미 배들이 바다 위에 가득하다

배가 비응항을 벗어나자 과연 바람이 심했다. 파도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어르릉거린다. 배는 10여분을 달려 비응항 북쪽 긴 방파제 부근에서 낚시를 시작한다. 방파제가 있어 바람이 비교적 완화되는 곳이다. 채비를 넣자마자 장시인이 흥분해서 릴을 무지막지하게 감는다. 바로 주꾸미 한 마리를 올린다. 낚시꾼의 DNA가 바로 작동하는 모양이다.

사실 주꾸미 낚시의 요령은 간단하다. 채비 아래에 봉돌과 에기를 달고 내리서 바닥을 확인하면 된다. 살짝살짝 고패질을 하다가 미세한 무게가 채비에 얹어지면 확실하게 챔질을 하고 일정한 속도로 릴을 감으면 된다. 단 이때 흥분한 나머지 릴을 바짝 감아올리면 애기가 코앞에 오게 되어 다칠 위험이 있고 주구미를 떼서 망에 넣는 것도 불편해진다. 때문에 숙달된 꾼들은 잡고 잡은 주꾸미를 망에 넣고 다시 채비를 내리는 동작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다. 그 절제된 동작이 스포츠의 한 동작을 보듯 매끄럽고 우아하다.

   
▲ 바다가 거칠어도 낚시삼매에 빠진 꾼들

바람이 불고 파도가 심하니 자연히 채비가 밀린다. 이래서는 다수확은 불가능하다. 잡히는 대로 따문따문 잡는다. 제법 망에 주꾸미가 쌓여가기 시작한다. 사무장에게 부탁해 몇 마리는 데치고, 몇 마리는 회를 친다. 사실 이 맘 때의 주꾸미는 '처가에도 안 준다'는 낚시군들 사이의 속설이 있다. 이때의 주꾸미가 가장 야들야들하고 맛있기 때문이다. '봄 주꾸미, 가을 낙지'라는 속설은 틀린 말이다. 봄에 어부들이 주꾸미를 다량으로 잡고 각 산지에서는 주꾸미 축제가 열리니 그런 말이 유포되었을 뿐이지 8, 9월의 주꾸미가 가장 부드럽고 맛있다.

이윽고 근사한 한바탕 선상 파티가 시작된다. 주꾸미회를 먹어 본 조작가와 장시인은 이구동성으로 '죽인다'를 연발한다. 데침이 인기가 없을 정도다. 주구미회는 초장보다는 기름소금에 찍어 먹어야 제 맛이다. 간만에 행복한 표정으로 바다를 즐기며 한 잔씩을 나눈다.

   
▲ 주꾸미 데침과 회. 가끔 맛있는 음식은 영혼을 울린다. 주꾸미회가 그랬다.

   
▲ 입안 가득 주꾸미를 넣고 음미하고 있는 두 조사.

   
▲ 바다가 즐거운 장석남 시인

12시가 지나니 바람이 잔다. 이때부터다. 연신 주꾸미가 올라온다. 필자 바로 뒤에 있는 꾼의 줄이 여러 번 내 줄에 엉키기 시작한다. 그 꾼의 채비를 보았더니 3단 채비다. 작은 10호 봉돌에 에기를 무려 3개를 아래와 위에 달고 있다. 에자를 많이 달면 주꾸미가 잘 잡힌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시즌 초반 주꾸미만 노릴 때는 에기 한 개만 다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봉돌과 함께 아래에 다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정 섭섭하다면 아래에 애자 하나, 위에 에기 하나를  달아도 괜찮다. 그런 충고를 해 주어도 그 꾼은 채비를 바꿀 생각을 않는다. 갯바위 낚시 한 30년 했다는 분인데, 갯바위와 달리 배낚시는 한 배에 탄 사람들간의 협동심이 상당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자기가 못 잡는 것은 상관없지만 봉돌을 가볍게 쓰고 에기를 여러 개 다니 물 저항을 많이 받고 당연히 다른 사람의 채비와 엉키게 되는 것을 이해 못한다. 아니 하려들지 않는다. 낚시는 과학이다. 수온이나 바람, 선장의 솜씨 등 많은 변화요소가 있지만, 기본은 물리학의 법칙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다고 한바탕 설교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 꾼의 습성을 파악해 요령껏 잡아 나간다. 금방 마릿수가 찬다. 100여 마리 이상 잡은 것 같다.

오후 3시 철수 시간이다. 잡은 주꾸미를 서울까지 살려가기 위해 비장의 무기를 준비했다. 다용도 밑밥통에 휴대용 산소공급기(기포기)를 달아 산소를 공급한다. 수온이 높으면 주꾸미가 살기 어렵기에 얼린 생수통을 통에 넣는다. 이렇게 하면 서울에서도 살아있는 주꾸미를 구경할 수 있을 것이다.

   
▲ 날 노익장을 과시한 한 낚시꾼의 조과물. 부부가 출조한 이 분은 나이 65세란다.
   
▲ 바람이 부는 중에도 다들 많이 잡았다. 이날의 총 조과.

시인과, 소설가, 평론가. 누가 가장 많이 잡았을까? 그건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간만에 문우들이 뭉쳐 늦여름 바다로 나가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그것으로도 좋다.

돌아와서 세 명은 카카오톡 단체방을 개설하고 농담을 주고받다가 낚시회를 조직하기로 한다. 그리하여 얼떨결에 낚시회를 조직했다. 이름은 '전조선문학가조사동맹(全朝鮮文學家釣士同盟)'으로 정했다. 통일 후를 대비한 원대한 이름이다. 서기장에는 필자가, 두 동맹원은 서기로 취임했다. 장난이고 농담이다. 그래도 회원들은 늘 것이다. /하응백 휴먼앤북스 대표·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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