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와 반일감정 버무린 한국형 신파의 끝…빼앗긴 영화판 참담
   
▲ 최종부 자유경제원 연구원
왜 우리가 조선왕족의 눈물을 대신 흘려야 하는가

벌써 관객수가 550만 명을 넘었다. 한국영화 흥행순위 59위에 빛난다. 바로 영화<덕혜옹주>의 이야기다. 조선이라는 힘없는 나라의 옹주로 태어나서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본에 끌려가 살아야 했던 불쌍한 한 여인의 일생을 다룬 이 영화에 많은 사람들이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이 영화에 여러 논란이 붙기 시작했다. 그 중 가장 큰 논란은 ‘역사왜곡’ 문제이다. 

실화와 실존인물을 다루는 영화라면 종종 드러나는 문제가 왜곡이다. 특히나 조선말 고종과 민비와 같은 조선왕족이 등장하는 영화는 꼭 이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드라마<명성황후>, 영화<불꽃처럼 나비처럼>, 영화<가비>에 이어서 이번에는 고종의 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덕혜옹주>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니기 때문에 100% 실제를 재현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이 아닌 감성에 호소하는 역사왜곡은 받아들일 수 없지 않는가.

단순 역사왜곡도 문제지만 객관적인 역사관을 막는 것이 더 큰 문제

영화 <덕혜옹주>에 드러나는 역사왜곡은 사실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덕혜는 일본 옷을 거부하기는커녕 ‘하오리’와 ‘게다’ 차림으로 일본학교에 다녔고 독립운동에 가담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일본 정부의 품위유지비를 받으며 삶을 영위하기에 바빴다. 영친왕이 상하이로 망명하려고 시도하는 장면 또한 100% 거짓이다.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 고위귀족대우를 받았고 세계2차대전 때에는 일본군 중장의 자리까지 받았다.

말 그대로 영화의 흥행을 위해 역사적 사실을 의도적으로 왜곡한 것이라고 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단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바로 객관적 역사관을 막는 다는 것에 있다. 포스터 한 장을 보겠다. 

   
▲ 영화 덕혜옹주 포스터


"돌아오고 싶었습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

영화포스터에 있는 문구다. 말을 정확히 할 필요가 있다. 덕혜옹주가 돌아오고 싶어 했던 조국은 대한민국이 아닌 조선이다. 대한민국과 조선은 자유평등세상과 신분계급세상이라는 엄연한 차이가 존재한다. 천부인권설과 왕권신수설로 대변되는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라는 단어가 존재했느냐 아니었느냐 라고도 구분 지을 수 있겠다.

그래서 포스터 문구는 바뀌어야 한다. 
"돌아오고 싶었습니다. 내나라 대한제국"으로. 특이하게도 포스터에서부터 왜곡이 있는 영화다.

“일본이 망하고 난 다음 우리 왕가가 설 자리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 영화<덕혜옹주> 中 고수(이우 역) 대사 - 

“민족의 자긍심을 심기 위해 대한제국의 후손을 데려와야 한다.”
- 영화<덕혜옹주> 中 박해일(김장한 역) 대사 - 

와 같이 단순히 역사의 왜곡 문제를 넘어서서 조선왕가가 대한민국에 꼭 필요하고 그들이 지도자가 되었어야 한다는 식의 대사들 또한 객관적 역사관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된다.

일본이 망하고 난 뒤에 조선을 망하게 한 왕조는 당연히 물러가야 하는 것이며 민족의 자긍심이 생기려면 민족을 힘들게 한 왕조는 당연히 추방당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한국형 신파의 끝 <덕혜옹주>

영화<덕혜옹주>에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것은 ‘신파’다. 눈물을 쥐어짜내는 듯 한 신파만 반복되다 보면 영화가 재미가 없다. 그래서 영화<덕혜옹주>는 조금 다른 신파를 녹여내는데 그것이 바로 ‘반일감정’이다. 반일감정을 주제로 한 드라마와 한국형 신파로 영화는 알차게 채워져 있다. 그런 식이다 보니 역사적 사실과 이성이 아닌 허구와 감성이 관객을 지배하도록 만든다.

조미료도 음식 자체가 맛있을 때 가미되어 본연의 풍미를 더하는 것이지 조미료만 넣은 음식은 몸에 좋지 않을 뿐더러 먹을 수 없는 음식이 되지 않는가. 사카린도 조금만 넣어야 달지 사카린 자체는 쓰디쓰다. 그런 맥락에서 덕혜옹주는 그냥 조미료 덩어리일 뿐이다.

우리가 가진 보통의 생각을 달리해 볼 필요가 있다. 왕권세습이라는 것 자체가 옳지 못한 것이다. 조선땅이 버려진 것이 누구의 책임인가. 열심히 일만하다가 죽었던 민초의 책임인가 아니면 모든 특권을 누려가며 온갖 이득을 독식하던 왕족과 귀족의 책임인가. 일반적, 보통적 생각 그리고 조선에 얽매여 있는 역사관을 깨야한다. 객관적인 역사관을 가져야 하는데 지금의 영화 시장에서는 너무도 그런 점을 찾기 힘들다.

왕족이 정말로 불쌍했을까? 진짜 불쌍했던 것은 온갖 특권을 누리다가 그 특권을 빼앗긴 왕족이 아니다. 영화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들이 어떤 의복을 입고 어떤 곳에서 주거를 하고 어떤 음식을 먹는지 보면 답은 나온다. 내 나라는 내팽개쳐 두고 초호화 생활만을 즐긴 것이다. 진짜 불쌍하고 힘들었던 사람들은 왕족 때문에 고초를 겪다가 일제시대를 지내며 또 힘들었어야 했던 우리들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다.

   
▲ 영화 덕혜옹주는 반일감정을 주제로 한 드라마와 한국형 신파로 알차게 채워져 있다. 그런 식이다 보니 역사적 사실과 이성이 아닌 허구와 감성이 관객을 지배하도록 만든다./사진=영화 덕혜옹주 스틸컷

우리는 보통 친일파를 미워한다. 그리고 고종과 민비(명성왕후), 덕혜옹주에 대해서는 엄청난 연민을 가지고 있다. '나쁜' 일본이 '착한'우리 왕족을 멸하려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진짜 '나쁜'게 누구일지.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파들도 나쁘지만 나라를 망하게 하고 팔아먹게 내버려둔 왕족은 '더‘ 나쁘다.

조선말 왕족이 우리를 지키려고 목숨을 내놓았던가. 왜 우리가 조선왕족에게 미안함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 이러한 영화 때문에 조선왕족의 눈물을 우리가 대신 흘려야 하는가. 

진짜 우리가 미안하고 죄송하게 생각해야 하는 대상은 나라를 지키다 돌아가신 6.25참전용사들이 아닐까.

왕권시대가 유지 되었으면 우리는 지금 경복궁 야간 구경은커녕 한양 주변에 얼씬대지도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어야 한다. 말 그대로 신분제 유지는 당연한 것이고 상업은 상놈들이나 하는 짓이 되었어야 한다. 

지금과 같은 평등시대가 한반도 5천년 역사 중에 존재했던 적은 없다. 그래서 진짜 나쁘고 미운사람은 나라를 말아먹은 조선의 왕족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혁파하고 '자유'라는 가치를 제대로 실현하고자 했던 것이 이승만이었다. 1948년 8월 15일 이후 영국, 일본 그리고 여타 유럽국가와 같은 입헌군주국이 아닌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수립한 대한민국이다. 그걸 가능하게 한 사람이 이승만 대통령이었다. 평등국가를 만들려면 신분제 타파를 위해 왕권을 없애는 것은 당연한 절차였다.

이러한 사실에 대한 설명 없이 영화<덕혜옹주>에서는 이승만 정부가 조선왕조의 귀국을 막았던 것만 묘사된다. 영화가 잠정적인 비난만을 바라는 눈치다.

단순히 선과 악만을 나누는 이분법은 문제다. 하지만 선과 악을 나누려면 제대로 나눠야 한다. 

그렇지 못한 상태로 저런 영화가 나와서 '조선은 착해. 일본은 나빠. 조선왕족을 몰아내고 대한민국을 세운 이승만도 나빠' 라는 논리는 말 그대로 어불성설이다.

영화에 국회의원까지 달려드는 상황

영화<덕혜옹주>의 ‘역사왜곡’문제가 초반부터 붉어져 나왔으나 정치인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너도나도 단체관람을 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우상호 원내대표는 “우리 역사 속 비극적 인물인 ‘덕혜옹주’를 통해 잊혀진 역사를 되돌아보고 오늘날 닥친 여러 역사적 문제를 어떤 시각에서 바라봐야 할지 등을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하자”는 취지로 영화를 보았다고 한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영화를 보며 네 번 정도 눈물을 흘렸다. 불행한 역사를 피하려면 국민의당이 집권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 다음 “위안부 피해자 쉼터를 방문하겠다”며 영화를 현실 정치에 대입시켰다. 말 그대로 야당영화가 된 것이다.

이분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 그렇게 눈물을 흘릴 정도로 이 영화의 역사적 사실에 감동을 받았는지를. 혹시나 이상한 연민싸움을 통해서 친일프레임을 만들려는 것은 아닌지도 궁금하다. 영화를 정치 투쟁적 산물로 만들려는 아닌지 의문이 든다.

   
▲ 한반도 역사상 가장 부강한 역사를 이루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반일이라는 프레임에 갇힌 자들이 안타깝다./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이제는 한일관계를 객관적으로 보아야 할 때

국가 간 사이는 '힘’의 논리가 지배한다. 과거에는 무력이었고 지금은 무력에 경제력이 더해져 국가 간의 '힘’이 되었다. 그 '힘’은 다른 국가를 도와주는데 사용되기 보다는 우선적으로 본인들 국가에 이득이 되는 쪽으로 사용이 된다. 그 당시 '힘’을 쌓았던 열강이라는 국가들은 식민지를 개척하고 본인들의 배를 불리는 데에 혈안이 되어있었다. 말 그대로 그때의 세계사가 그렇게 흘러갔던 것이다. 강자에 대한 비난도 필요하지만 왜 약했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찰이 먼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일 문제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일제의 강제침탈을 옹호하고자 함이 아니다. 조선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 일본이 열강이 되도록 강해지는 동안 조선은 종묘사직을 논하고 예송문제로 시끄러워야 했다. 대국(중국)을 섬기는 것도 그랬다. 대국과의 사대를 조선백성의 안위보다 더 중요해서 벌어진 것이 병자호란이었던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절반에 가까운 인구가 노비였고 양극화라는 개념조차 없는 극심한 양극의 시대였다. 학문의 실용성 여부는 말 할 것도 없다. '경제(經濟)’나 '자유(自由)’라는 단어조차 없던 나라였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을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무조건적인 일본에 대한 반감만 갖는다고 해서 우리의 과거가 바뀌는 것도 아니고 미래가 나아지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를 침탈한 일본은 분명 잘못이 있다. 그러나 똑같은 시대를 살았으면서 일본보다 모든 면에서 뒤쳐졌던 조선에 대한 비판도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 단순히 일본이 나쁘고 조선이 착하다는 문제에서 탈피해야 한다.

지금의 역사교과서를 보든 역사 드라마를 보든 역사 영화를 보든 마찬가지다. 조선에 대한 비판은 전혀 없다. 특히나 왕족에 대한 이성적 비판은 더더욱 없다. 오직 일본에 대한 반감과 비난뿐이다. 나라 잃은 설움의 문제가 어디서부터 왔는지 제대로 생각해야 한다. 자성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모든 이에게 완벽한 양심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타인의 양심을 기대하기 전에 내가 올바르게 서야한다. 본인 스스로가 강해져야 하는 것이다. 특히나 국가 간의 문제에 있어서는 더하다. 중립국을 내세우고 싶다면 오히려 무척 강한 군대가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한반도 역사상 가장 부강한 역사를 이루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그러나 앞으로가 더 문제다. 과거에 대한 반성이 없이 다시 사농공상의 시대로 돌아가려는 모습도 간혹 보인다. 다시 중국에 기대려는 움직임은 정말로 한탄스럽다.
 
과거로의 회귀는 정말 안 된다. 경제가 성장해야 하고 그에 맞는 국민의 정서와 나라의 정책이 필요하다. 지금부터의 교육이 정말 중요하다고 본다. 단순히 누군가를 헐뜯는 교육, 국가 간의 관계를 단순히 착함과 악함으로 나눠버리는 교육으로는 어떠한 발전도 이끌어 낼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단순히 반도에 묶여 있는 역사관 보다는 세계사적 시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과거에 대한 반성을 통해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교육, 경제의 성장을 생각할 수 있는 교육, 지금에서 과거를 판단하는 교육이 아닌 그 당시의 상황에서 그 당시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교육이 정말로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한 교육을 도와줄 수 있는 한 가지 분야가 바로 영화다. 하지만 그 영화계라는 곳에서 너무도 큰 왜곡과 거짓을 일삼는다. 거짓도 사실이라고 한다. 왜곡이 정의라고 한다. 아니면 그러한 사실들 보다는 그 안에 담긴 슬픔을 같이 느껴보자고 한다. 이게 이런 류의 영화를 보자고 하는 논리다.  거짓을 일삼는 자들에게 빼앗긴 ‘영화들판’에도 ‘진실의 봄’은 오는가. 영화의 봄이 시급한 계절이다. /최종부 자유경제원 연구원


(이 글은 최종부 자유경제원 연구원이 8일 자유경제원이 주최한 ‘역사를 정직하게 보자, 덕혜옹주의 실상’에서 발표한 토론문 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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