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고통 공감하는 이기심…정당한 경쟁 통해 자기 이익 추구하는 심리
더 이기적인 사회를 꿈꾸며

대학 시절 가끔 듣던 말이 있다. “가끔 보면 넌 되게 이기적이야” 왜 가끔 보면 인정해주기 싫은 부류의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달변인 데다 누구 앞에서든 당당하고 능수능란한, 한마디로 정치적인 사람들. 그게 나라는 것이다. 실력으로 승부 보려 하지 않고 왠지 모르게 편법을 통해 자신의 목표를 성취하려는 사람처럼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나는 그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나의 이익에만 충실했고 이것이 잘못된 길이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상을 책으로만 배우던 학생 시절에는 '이기심’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여럿일 수도 있다는 건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이기적인 건 절대악, 이타적인 건 절대선이라고 배웠으니까. 어쩌면 이러한 낭만적 미신 때문에 '착한 아이 증후군’을 겪고 있는 환자들이 생겨났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이타적으로 보여져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인간의 본성을 인위적으로 거스른다. 수만 년에 걸쳐 형성된 인간의 유전자가 단기간에 교육이나 강압으로 바뀔 수는 없다. '이기심’은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이다. 이 세상 가장 이타적인 사람조차도 이기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이 '이기심’을 오해하면 안 된다.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정의한 '이기심’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이기심이었다. 남이 불행하기만을 바라고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는 것은 이기심이 아니다.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고 정당한 방식으로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심리다.

   
▲ 경쟁은 승자와 패자를 나누는 단순한 제로섬 게임으로 끝나지 않는다. 단절된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연결된 과정이다. 게임의 종류와 상대를 달리하여 경쟁은 무한 반복된다./사진=미디어펜


인간의 본성인 '이기심’이 세상을 발전시키는 힘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이기심’이란 사익추구와 분리될 수 없는 개념인데 이는 '경쟁’으로 이어진다. 애석하게도 다수의 사람들은 '경쟁’이라는 단어 자체를 불편해한다. 괜히 꺼림칙하고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경쟁이 고통스럽다고 한다. 친한 친구를 배신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다행히도 경쟁은 승자와 패자를 나누는 단순한 제로섬 게임으로 끝나지 않는다. 단절된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연결된 과정이다. 게임의 종류와 상대를 달리하여 경쟁은 무한 반복된다. 승자와 패자가 정해진 것도, 항상 같은 종류의 시합만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반복성과 비교우위를 통해 경쟁은 제로섬 게임이 아닌 사회적 협력의 기초로서 기능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기심'에 대한 개념적 돌파가 필요하다. '이기심’은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에 더 가깝다는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삶이 척박해질수록 사람들은 경쟁을 멀리하고 이타심에 호소하게 된다. '성장’, '경쟁’, '개인’, '자본주의’보다는 '분배’, '평등’, '공동체’, '사회적’이라는 단어에 눈을 돌리게 된다. 끊임 없이 자신과 비교해 나보다 더 잘생긴 사람, 나보다 돈이 더 많은 사람, 나보다 더 능력이 있는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하며 헐뜯는 불행한 인생을 살게 된다. 그들이 '평등하게' 자신과 같아지길 원하기 때문이다.

고대 중국의 사상가인 공자는 정명(正名)의 중요성을 일찍이 깨우쳤다. “이름이 바르지 못하면 언어가 순리로 통하지 않고, 언어가 순리대로 통하지 못하면 그 어떤 일도 성사되지 않는다. 일이 성사되지 못하면 문화·도덕이 일어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이름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세상은 혼탁해지고 서로 뜻이 맞지 않아 소통을 이룰 수 없으므로 이를 바로잡는 것이 모든 일의 첫걸음이다.

일본 식민지 시대, 해방과 분단, 그리고 전쟁, 군사 혁명과 경제건설, 새마을 운동, 중화학 공업화 성공, 민주화 요구 및 쿠데타의 악순환. 대한민국은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아픔이 있었고 그 과정을 통해 더 성숙해졌으며 더 견고해졌다. 하지만 나의 불행을 남의 탓이라 하는 사회, 성공한 사람들의 노력과 열정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 노력은 하지 않고 무엇이든 바라기만 하는 사회 풍조가 계속된다면 더 이상 이 나라엔 희망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기적일 필요가 있다. /이희망 영국 브리스틀대 경제학과

   
▲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정의한 '이기심’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이기심이었다. 남이 불행하기만을 바라고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는 것은 이기심이 아니다.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고 정당한 방식으로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심리다.



(이 글은 자유경제원 '젊은함성' 게시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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