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 정체성 흔들…여론에 휘둘려 '눈치'
   
▲ 박한명 미디어그룹 '내일' 대표·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안철수의 철수 정치가 다시 시작됐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반대하던 안 의원이 조건부이긴 하지만 최근에 언론 인터뷰에서 사드 배치에 찬성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다시 철수를 하긴 했으되 잘못된 기존 판단을 정정하는 바람직한 철수라 그나마 다행이다. 그래도 지적은 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야권의 대권주자라는 사람이 안보 문제에 대해 쉽사리 입장을 바꾸는 것은 처신이 너무 가볍다는 인상을 준다.

사드가 어디 하루 이틀 된 문제인가. 안 의원은 7월 한·미 양국이 사드 배치를 결정하자 "사드 배치로 잃는 것의 크기가 더 크고 종합적으로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 한다"고 반대했다. 성명까지 발표하면서 "사드 배치는 한반도의 평화와 국민의 생존, 나아가 국가의 명운을 결정할 국가적 의제"라며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도 심각하게 검토해봐야 한다"고 했다. 사드가 국회 비준을 받아야 할 문제라는 얘기도 했다.

사드반대 철수 명분이 고작 중국인가

그렇게 사드를 반대하던 안 의원은 "사드 배치 문제는 단순히 군사·안보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 외교 그리고 국민의 삶과 대한민국의 미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문제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고려해서 결정해야 한다"고 반대의 이유를 설명했다. 요컨대 자신이 사드를 반대하는 것은 이런 모든 종합적인 면들을 충분히 고려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런데 불과 두 달여가 지나 말이 전혀 달라졌다.

며칠 전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하면서 "핵(核) 개발을 거듭하고 있는 북한 제재에 중국을 끌어들이기 위한 도구로 써야한다"며 "중국이 대북 제재를 거부한다면 자위적 조치로서 사드 배치에 명분이 생기는 것"이라고 입장을 바꿨다. "현재 대북(對北) 관계는 명백한 제재 국면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며, 이런 제재가 효과를 발휘하려면 중국의 참여가 필수적"이라 그렇단다. 참 궁색하다. 김정은이 5차 핵실험을 한 이후 사드 여론이 찬성으로 급격하게 바뀌니 눈치를 본 것인가.

   
▲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입장에서 출구를 모색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잘못된 판단을 정정하는 것은 바람직하나 대권주자의 신분을 감안한다면 안보 문제에 대해 쉽게 접근한 가벼운 처신은 그의 '철수 정치'에 대한 또 다른 생각을 가지게 한다. /사진=연합뉴스

안 의원은 우리 대북관계가 7월이 다르고 9월이 다른 것처럼 얘기하는데 분명히 해두자. 7월에도 화해국면이 아니라 분명히 제재 국면이었다. 두 달 사이 변화라면 한 차례 핵실험을 더 했다는 것뿐이다. 그리고 중국은 대북제재에 제대로 참여한 적이 없다. 중국은 6월에 유엔 안보리에 제출한 대북제재 결의 이행보고서에도 대북제재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고 딱 잘랐다.

북한이 사고를 칠 때마다 미국이 그렇게 대북제재 동참을 요구해도 한반도 평화와 안정 운운하면서 실상으론 거부해 왔다. 안보리 대북제재를 찬성할 때조차 개별국가의 일방적인 제재는 반대한다는 둥 어쩌고 하면서 미국이 북한을 제재하는 걸 그렇게 막으려 애썼다. 중국은 대북제재에 찬성할 때도 뒤꽁무니로는 반대한 표리부동 국가다. 이런 사정을 일반 국민들도 알고 있는데 중국이 대북 제재를 거부한다면 사드 배치에 명분이 생긴다고 말하는 것은 좀 우습지 않나.

지금 실력으로는 누굴 배제할 주제가 못 된다

그리고 하나 더, 안 의원은 사드 배치 명분으로 중국을 핑계 대는 것이 구차스럽고 굴욕적이라는 생각은 안 드나. 사드는 우리의 필요에 의해 배치하는 것이다. 안 의원은 만일 중국이 대북제재에 찬성하면 다시 사드 배치를 반대할 건가. 중국이 어떻게 나오느냐 그때그때마다 눈치보고 입장을 바꿀 생각인가. 차라리 그동안 사드 배치에 대해 생각이 짧았다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이 훨씬 낫다.

사드가 국가적 의제라 신중하게 반대하는 것처럼 굴더니 몇 달도 못 가 입장 바꾸면서 중국 눈치를 핑계 대는 것은 최악 중 최악이다.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라는 안 의원이나 이 사람 저 사람 사드에 관해 말이 다른 국민의당이나 한심하긴 매 한가지다. 안보까지 정략적으로 좌충우돌하는 집단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나. 정치 철학도 주체성도 없이 여론에 따라 조변석개하는 게 중도가 아니다. 시류를 쫓는 것이 실리행보가 아니다.

안 의원은 얼마 전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양극단 세력과의 단일화는 절대 없다"고 선언했다. 많은 국민은 이걸 안 의원의 대권선언으로 받아들였고, 제3지대 세력화, 비박-비문 연대론을 제안한 것이라는 언론의 해석도 나왔다. 그런데 지금 현실에서 안 의원과 국민의당이 누굴 배제할 처지는 아닌 것 같다는 게 필자의 솔직한 생각이다. 중심도 못 잡고 시류나 여론만 뒤쫓는 세력은 자칫 배제당하거나 흡수당하는 운명으로 끝날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제3지대 세력화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지금 사드 논란에서 보여주는 안 의원의 실력으로는 주인공이 되기 어렵다. '양극단을 배제한 플랫폼 정당' 말은 그럴 듯하다. 하지만 안 의원 본인이나 국민의당에는 말의 성찬만 차고 넘친다. 진실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사드 반대에서 철수하는 김에 대권허상만 보는 가짜 정치에서도 좀 철수하기 바란다. /박한명 미디어그룹 '내일' 대표·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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