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차만별 동네 쌀값·더 저렴한 수입쌀…단군 이래 가장 풍요로워
   
▲ 신중섭 강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자유 중 으뜸은 경제자유: 넘치는 쌀과 경제적 자유

동네 슈퍼의 쌀값은 천차만별이다. 10kg 한 포대에 19,800원부터 47,600원까지 다양하다. 쌀이라고 모두 같은 쌀이 아니다. 싼 쌀은 최저 임금을 받아도 3시간 조금 더 일하면 살 수 있다. 수입쌀은 이것보다 훨씬 더 저렴할 것이다. 나는 쌀을 보면 어릴 때 생각이 난다. 가난한 시골에서 자란 나에게 '쌀밥’은 낯선 것이었다.

가을 추수가 끝난 직후에도 쌀밥을 먹었는지 아니면 보리쌀이 섞인 쌀밥을 먹었는지 기억은 분명하지 않지만, 쌀을 보면 어머니가 큰 주걱으로 밥을 푸던 큰 밥솥이 생각난다. 당시만 해도 대가족이라 아침에는 큰 밥솥에 밥을 지었다. 원형의 무쇠 밥솥에는 중간에는 쌀밥과 보리밥의 경계가 분명했다. 쌀밥을 지을 정도로 쌀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리쌀을 솥에 먼저 넣고 나중에 쌀을 중간에 조금 넣으면 쌀밥과 보리밥이 한 솥에 공존한다.

어머니는 항상 큰 주걱으로 쌀밥과 보리밥을 적당히 섞어 밥을 남녀노소 순으로 밥그릇에 담는다. 밥 푸는 순서는 할아버지, 아버지, 삼촌, 형 순으로 이어진다. 앞에서 뒤로 갈수록 쌀밥의 양은 줄고 보리밥의 양은 늘어난다. 맨 마지막으로 가면 거의 보리밥이다. 그렇다고 할아버지 밥에도 쌀이 반 이상 섞인 것은 아니다.

쌀이 귀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하루 3끼 가운데 이런 식사가 항상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점심은 학교에서 옥수수 죽을 배급받아 먹었고 저녁은 국수나 수제비를 먹었다. 초등학교에 다녔던 1960년대 이야기다. 유독 우리 집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온 동네가 그러했다. 가난을 가난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살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중 ·고등학교에서는 혼식이 강제되어 항상 담임선생님은 도시락 검사를 했다. 혼식이 국정 목표였고, 건강에 좋다는 이유로 혼식이 장려되었지만 실제로는 쌀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쌀 막걸리도 금지했다. 공식적으로 쌀 막걸리가 시중에 판매되기 시작한 것은 내가 대학을 졸업한 이후다.   

나는 슈퍼에서 쌀값이 참 싸다고 느낀다. 만일 쌀의 수입이 자유롭다면 쌀값은 이보다 더 내려갈 것이다.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가 아직 수입쌀의 유통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이 정도의 쌀값이 유지되는 것이다. 동네에 이런 슈퍼 등장한 것도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슈퍼에서는 다양한 무게의 쌀이 유통되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동네 재래시장의 쌀집에서 쌀을 샀다. 작은 종이 봉지에 쌀을 담아 조심스럽게 집으로 들고 오던 기억이 새롭다.

쌀에 대한 기억이 추억이 될 정도로 우리 사회는 변했다. '정부미’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젊은이들이 많다고 하니 부모 세대의 쌀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부모 세대의 쌀 이야기 속에는 우리의 현대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기아가 사회 문제였던 가난한 나라가 '정부미’가 무엇인지 모르는 세대가 주류를 이룬 부강한 나라로 어떻게 변모했는가를 설명하려면 우리 현대사를 알아야 한다.  

   
▲ 동네 슈퍼의 쌀값은 천차만별이다. 10kg 한 포대에 19,800원부터 47,600원까지 다양하다. 쌀이라고 모두 같은 쌀이 아니다. 싼 쌀은 최저 임금을 받아도 3시간 조금 더 일하면 살 수 있다. 수입쌀은 이것보다 훨씬 더 저렴할 것이다./자료사진=미디어펜DB


어떻게 한 나라가 이렇게 빨리 경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경제 성장의 의미는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경제 성장은 사람들의 자존감을 높여주고,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키우고, 문화를 융성하게 한다. 동양은 '정신’ 서양은 '물질’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정신과 물질이 분리되는 것은 아니다. 물질은 '정신’없이 성장할 수 없지만, 물질 없는 '정신’도 없다. 물질과 정신은 서로 밀고 당기며 공진화한다. 적어도 통계적으로는 경제적으로 잘 사는 나라일수록 사회적 자본이 풍부하고 문화가 꽃을 피운다. 

우리가 오늘처럼 번영할 수 있었던 것은 경제적 자유가 우리 사회에도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60년대와 70년대 우리의 산업화가 국가 주도로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국가 주도의 경제도 경제적 자유의 구성 요소들이 상당 부분 실행되었기 때문에 성장이 가능했다. 우리는 산업화가 추진되기 이전에는 경제적 자유를 누리지 못했다. 경제적 자유가 없어 가난과 궁핍을 벗하고 살 수밖에 없었다. 가난과 궁핍이 안빈낙도로 미화되었지만, 보통사람들에게 가난이란 고통이고 오래 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경제적 자유(economic freedom)란 무엇인가?

월스트리트 저널과 헤리티지 재단(The Wall Street Journal and The Heritage Foundation)과 프레이즈 연구소(Fraser Institute)는 해마다 각국의 경제 자유도를 측정하고 발표하고 있다. 경제자유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정부 지출, 재정 건전성, 재산권 보호, 부패 정도, 통화 건전성, 무역 자유, 시장 규제, 법의 지배 등이다.

정부 부분의 비중이 낮을수록, 재산권이 잘 보호될수록, 물가가 안정될수록, 무역이 자유로울수록, 금융 규제·노동규제·기업규제 등이 낮을수록 경제 자유가 높다. 어느 나라나 경제 자유를 높이기 위해서는 작은 정부를 구현해야 한다. 방만한 재정 지출을 줄이고 세금 증가를 중단해야 한다. 수도권 규제나 기업 규제와 같은 규제를 완화해야 국내 자본의 해외 이동을 막고 외국 자본을 유치할 수 있다.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위해서는 정규직에 대한 과도한 보호를 완화하고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낮추어야 한다. 

우리는 경제 자유가 높아지면 경제적으로 더 잘 살게 된다는 것을 알고, 경제 자유를 높이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 논리와 포퓰리즘이 경제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행복의 달성은 개인의 몫이지만, 경제적 자유를 확장하여 행복의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은 국가의 역할이다. 

오늘날 우리는 단군 이래 가장 풍요로운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가난과 질병, 무지는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이렇게 된 것은 모두 경제적 자유가 진전되었기 때문이다. 경제적 자유의 확장이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발전을 가능하게 하였다. 경제적 자유는 모든 사람이 각자 자신의 노동과 재산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이다.

경제적 자유가 보장된 사회에서는 모든 개인은 자유롭게 노동하고 생산하고 소비하고, 자신이 가진 것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투자할 수 있다. 경제적 자유가 보장된 사회에서 정부는 노동과 자본, 상품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을 보장한다. 정부는 자유 자체를 지키고 유지하기 위한 경우가 아니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

헤리티지에서 발표하는 각국의 경제자유도가 보여주고 있듯이 경제적 자유는 그것을 실행한 모든 나라에게 더 큰 번영을 보장한다. 경제적 자유가 높은 나라일수록 사회가 건전하고, 개인들의 삶의 만족도가 높다. 경제적 자유가 높은 나라일수록 환경이 깨끗하게 보존되고, 일인당 국민소득이 높고, 인간 개발 지수가 높고 민주주의가 발전하였으며, 가난은 사라졌다.

이러한 경제적 자유에 대한 사상은 18세기 후기 아담 스미스의 정치 경제학에서 출발하였다.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시민 사회에서 바람직한 정부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논의하였다. 그는 국가가 시민들의 경제 활동을 폭넓게 제약하는 행위를 정당화한 중상주의를 비판하였다. 16세기와 17세기를 지배한 경제사상인 중상주의는 수출은 장려하고 수입은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경제 활동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고무하였다. 이런 시대정신에 맞서 아담 스미스는 국가가 간섭하지 않을 때 경제는 가장 잘 작동한다는 원리를 내세웠다.

   
▲ 나는 슈퍼에서 쌀값이 참 싸다고 느낀다. 만일 쌀의 수입이 자유롭다면 쌀값은 이보다 더 내려갈 것이다.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가 아직 수입쌀의 유통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이 정도의 쌀값이 유지되는 것이다./자료사진=K-Water


아담 스미스는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시장이라고 보았다. 그는 시장의 작동 원리를 자유로운 개인의 경제적 선택에서 찾았다. 선택의 자유를 가능하게 하는 곳이 시장이라는 것이다. 기업은 어떤 물건을 만들 것인가를 결정하고, 노동자는 고용주를 선택하고, 소비자는 자신이 구매할 상품과 서비스를 결정한다. 시장에서 고용주와 피고용자, 판매자와 소비자의 관계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의 자발적인 계약에 의해 형성된다. 소비자들은 즐거움을 부의 획득 및 소비와 동일시한다. 

아담 스미스는 각각의 개인은 자신의 물질적 이익을 위해 행동하지만, 경제 자체는 '시장의 힘’에 의해 작동한다고 믿었다. 이 '시장의 힘’은 자연스럽게 경제적 번영과 복지를 가져온다. 이러한 '시장의 힘’ 때문에 어느 생산자도 자신의 상품 가격을 자신의 마음대로 결정하지 못한다. 가격은 다수의 공급자와 구매자가 존재하는 시장에서 결정된다.

시장은 외부의 지도(guidance) 없이도 작동하는 자기-규제 메커니즘이라는 것이다. 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정되기 때문에 정부의 간섭 없이 자유로워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아담 스미스의 자기-규제적 시장은 사회 안에 존재하는 상충하는 이익의 갈등 속에 존재하는 자연스러운 조화에 대한 자유주의적 믿음을 반영한 것이다. 

자유시장의 이념은 19세기 영국과 미국에서 경제적 교의가 되었다. 자유 시장에 대한 믿음은 '무간섭(laissez-faire)의 이념’과 결합하였다. 이 이념에 따르면 정부의 경제적 역할은 없다. 정부는 경제를 그대로 두어야 하며, 경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이것은 개인의 무제한적인 자기이익의 추구가 궁극적으로 일반적 이익으로 귀결된다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무간섭의 이념’은 영국에서는 19세기까지, 미국에서는 1930년대까지 강한 도전을 받지 않았다. 20세기 말에 자유 시장에 대한 믿음은 신자유주의를 통해 다시 살아났다.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경제적 자유주의는 글로벌 경제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반복되는 경제 위기와 함께 소득과 부의 격차가 확대되자, 경제 자유는 강자의 이익만을 대변하다는 이유로 오늘날 도처에서 도전받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경제적 자유가 상위 1%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물론 상위 1%에게 소득과 부가 집중되는 경향은 사실이지만, 다른 사람의 부가 그들에게 이전된 것도 아니고, 그들 때문에 다른 사람이 못살게 된 것도 아니다. 다만 잘 사는 사람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이 이런 생각으로 이끈 것뿐이다. 

경제적 자유에 대한 여러 형태의 찬반논의를 떠나, 경제적 자유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경제영역에서 개인의 선택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선택이 우리 인생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실제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

실제로 우리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많은 것, 태어난 시대와 장소 ·가정·신체적 조건과 성품 등은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길지 않은 일생을 살아가면서 나와 관련된 중요한 일들은 내가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나와 관련된 경제 행위를 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기 위해서는 경제적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신중섭 강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이 글은 자유경제원 '세상일침' 게시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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