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끝나자마자 차기 정권창출 위한 대결구도 악순환"
[미디어펜=김소정 기자]박근혜 대통령이 그동안 일체 거론하지 않던 개헌 추진을 밝힌 것과 관련해서는 남은 1년3개월여 임기동안 정국을 주도하기 위한 ‘결단’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박 대통령은 24일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임기 내 개헌 추진”이라는 깜짝 발표를 했다. 최근까지 4대 개혁을 강조하며 여권에서 제기된 개헌론까지 일축했던 탓에 야권에서는 ‘최순실 의혹’을 덮기 위한 ‘국면전환용’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청와대 측은 “오래전부터 준비해왔고, 내부에서는 지난 8.15 광복절 경축사에 개헌 추진을 공표하자는 의견도 있었을 정도로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밝혔다.  

김재원 정무수석은 이날 기자브리핑에서 대통령이 지난 추석연휴 때 개헌을 구상했다고 전했다. 그는 “대통령이 추석연휴기간 중 검토를 자세히 할 수 있도록 종합적이고 최종적인 보고서를 추석연휴 전에 대통령에게 드렸다”며 “상당히 분량이 많은 내용으로 상세히 보고했고, 연휴 마지막 무렵에 대통령이 개헌 준비를 지시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수석은 “박 대통령이 정부 개헌안을 발의할 수 있다”면서 “국회 논의 과정을 봐가면서 필요하다면 당연히 대통령께서 헌법개정안 제안권자로서 정부안을 제안할 수 있다”고 했다. 개헌안 제안권은 대통령과 재적 과반의 국회에 있다.

박 대통령이 이날 시정연설을 기해 개헌을 발표한 것은 “국회에서 발표하는 것이 가장 적합한 형식”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연설 때 “향후 정치일정을 감안할 때 시기적으로도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하게 됐다”면서 “그래서 그 뜻을 국민의 대표이자 그동안 지속적으로 개헌의 필요성을 주장해오셨고, 향후 개헌 추진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실 국회의원 앞에서 말씀드리는 것이 가장 좋겠다는 판단 하에 오늘 국회 연설을 계기로 말씀드린다”고 했다.

이에 대해 김 수석은 “마지막까지 개헌 제안의 타이밍과 형식을 놓고 고심했다”고 했고, 또 다른 청와대의 한 참모는 “야당의 비판까지 감안해 마지막까지 시기와 형식을 고민했으나 청와대 내부회의 형식보다는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통해 개헌을 제안하는 게 가장 적절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전했다.

그동안 박 대통령은 경제활성화, 안보 문제, 청년고용 등 산적한 현안을 풀기 위해 올해는 공공·노동 등 4대개혁 완수에 집중해야 할 때임을 강조하면서 ‘민생 올인’ 기조를 이어왔다. 이 때문에 올해 1월 신년 기자회견 때에도 “지금은 개헌 얘기를 할 정도로 여유있는 상황이 아니다. 경제활성화·안보문제·청년고용 절벽 등 하루가 급한 문제들이 뭔가 풀리면서 그런 얘기를 해야 국민 앞에 염치가 있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임기 내 개헌 추진”이라는 깜짝 발표를 했다.그동안 일체 거론하지 않던 개헌 추진을 밝힌 것과 관련해서는 남은 1년3개월여 임기동안 정국을 주도하기 위한 ‘결단’이라는 평가가 나온다./청와대
하지만 ‘여소야대’ 국면에서 가뜩이나 정책 동력 확보가 쉽지 않은데다 최근 ‘최순실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국정마비 사태를 불러왔다. 여기에 뜻밖에 ‘송민순 회고록’을 둘러싼 정치권의 진실공방까지 겹치면서 정쟁에만 매몰되는 상황이 대통령의 의지를 바꾼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날 김 수석은 지난 추석연휴 막바지에 박 대통령의 ‘개헌 준비’ 지시 이후 여러 의견을 수렴해 지난 18일 개헌 제안을 포함한 예산안 시정연설 최종 원고를 박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에 새누리당 지도부가 개헌 주장을 펼친 일도 있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지난달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조건부 개헌론’을 제시한 데 이어 정진석 원내대표도 ‘국감 후 개헌특위 구성’을 제안했다. 이에 김 수석이 “지금은 개헌 이슈를 제기할 때가 아니다”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어느 정도 청와대 분위기가 반영된 논란이었다.

그리고 박 대통령은 이날 시정연설을 통해 개헌을 제안하기 전 예상되는 소모적인 논란을 차단하기 위한 수순도 밟았다. 박 대통령은 지난 20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최순실 의혹’에 “엄정 처벌” 입장을 밝혔다. 또 21일 국회 운영위의 청와대 국감 때 이원종 비서실장 등 청와대 측의 해명도 뒤따랐다. 그리고 이날 박 대통령이 직접 시정연설을 통해 여야 국회의원들 앞에서 개헌을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개헌 발표를 앞두고 박 대통령이 고심한 흔적은 이날 시정연설문에 녹아있다. 박 대통령은  “임기가 3년8개월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을 일부 정책의 변화 또는 몇 개의 개혁만으로는 근본적으로 타파하기 어렵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며 “우리 정치는 대통령선거를 치른 다음날부터 다시 차기 대선이 시작되는 정치체제로 인해 극단적인 정쟁과 대결구도가 일상이 돼버렸고, 민생보다는 정권창출을 목적으로 투쟁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했다.

또 박 대통령은 “고심 끝에 이제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우리가 처한 한계를 어떻게든 큰 틀에서 풀어야 하고, 우리나라를 선진국 대열에 바로 서게 할 틀을 마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면서 “향후 개헌 추진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실 국회의원 앞에서 말씀드리는 것이 가장 좋겠다는 판단 하에 오늘 국회 연설을 계기로 말씀드린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82년 헌법 당시에는 민주화라는 단일가치가 주를 이뤘으나 지금 우리 사회는 다양한 가치와 목표가 혼재하면서 이런 변화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갈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하다. 지금은 1987년 때와 같이 개헌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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