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의장 "여야가 상향식 준비"…'개헌 대 反개헌' 대립 가시화할수도
[미디어펜=한기호 기자]박근혜 대통령이 24일 2017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의 한계점을 지적, 헌법 개정을 임기 내 완수하겠다고 선언하자 여야 각당은 각자 다른 낯빛을 보이고 있다.

새누리당은 당내 계파를 막론하고 즉각 환영 입장을 밝힌 한편, 20대 국회 개원과 함께 개헌론을 꺼내들었던 더불어민주당은 논의 시기가 부적절하다면서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또한 정략적인 개헌 제안으로 규정하고 '박 대통령은 개헌에서 빠지라'는 견제 공세를 펼치는 가운데, 국민의당은 비리 은폐용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면서도 개헌 의지 자체에는 만시지탄이지만 환영한다는 입장을 냈다.

박 대통령이 정부 내 개헌 추진 조직 구성을 약속하면서 국회 개헌특별위원회 구성을 당부한 데 대해서도 3당은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은 참여 의사를 밝혔지만, 더민주는 "천천히 논의할 것"이라고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다만 현재 국회 수장으로서 개헌특위 구성을 직접 제안받은 격인 더민주 출신 정세균 국회의장은 '상향식 개헌'을 전제로 특위 구성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냈다.

   
▲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2017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통해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의 한계점과 정치권의 개헌 공감대 형성 등을 들어 헌법 개정을 임기 내 완수하겠다고 선언했다./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제공


앞서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국회 본회의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대통령 단임제로 정책의 연속성이 떨어지면서 지속가능한 국정과제의 추진과 결실이 어렵다"며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우리가 처한 한계를 어떻게든 큰 틀에서 풀어야 하고, 제 공약사항이기도 한 개헌 논의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며 임기 내 개헌 완수를 천명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1987년 때와 같이 개헌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특정 정치세력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끌고갈 수 없는 20대 국회의 여야 구도도 개헌을 논의하기에 좋은 토양이 될 것"이라고 개헌 제안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에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시정연설 직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모든 기득권과 정파의식을 내려놓고 후손을 위한 최적의 헌법을 찾는 대장정에 나서겠다. 국회 내 개헌특위 설치 문제를 즉각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의총 직후 기자들과 만나선 개헌이란 의제 설정에 환영 의사를 내비치며 "(개헌은) 국회의장과 야당이 선창했던 주제"라면서 "야당이 거둬들이면 개헌에 한발짝도 못 나가는 것"이라고 야권의 개헌 논의 참여를 촉구했다. 

이정현 대표도 기자간담회를 열고 "192명의 국회의원이 개헌 추진해야한다는 서명을 했고, 언론이 보도한 여론조사에서도 70%의 국민이 5년 단임제의 한계를 인정하고 개헌 필요성에 동의하고 있다"며 "국회도 국민도 (개헌이) 대세"라고 개헌론에 힘을 실었다. 지난 8월 당대표 취임 직후 가진 청와대 오찬에서 박 대통령에게 '1대 1'로 개헌 추진을 건의한 사실도 언급했다.

지도부 2인은 개헌 제안이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과 최순실씨 관련 의혹을 덮기 위한 시각에 대해선 각각 "개헌 논의를 한다고 이슈가 덮어지나", "수사결과를 지켜보고 불만이 있으면 재정신청도 있고 특검도 있다"고 언급하며 확대해석에 선을 그었다. 권력구조 개편 방향에 대한 소신은 일단 접어뒀다.

당내 중진 혹은 대권 잠룡으로 평가되는 인물들도 각각의 입장을 냈다. 비박계에서 김무성 전 대표는 오후 기자회견에서 박 대통령을 향해 "구국적 결단을 내렸다"고 찬사를 보내며 여야 전문가와 정부측 인사들이 참여하는 '범국민 개헌특위' 구성을 제안, 내년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가 치러질 4월11일이 개헌 국민투표의 적기라고 강조했다.

반면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차기 대통령 임기 초 4년 중임제 개헌을 주장하며 '임기 내 개헌'에 반대했고,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국민·국회 주도로 이뤄져야 한다며 정부는 논의에서 빠져야 한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친박 성향의 원유철 전 원내대표와 정우택 의원은 박 대통령의 제안을 크게 환영하며 각각 '일하는' 국회·정부를 만드는,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개헌이 돼야한다고 강조했다.

   
▲ 새누리당 비박계 수장격인 김무성 전 대표는 24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 내 개헌' 선언에 "매우 시의적절하다"며 "구국의 결단"이라고 적극 환영했다./사진=미디어펜


3당 중 '캐스팅보트' 격인 국민의당은 박 대통령의 개헌 제안이 정략적이라며 의구심을 드러냈지만 특위 구성 자체는 거부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시정연설 직후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박 대통령이 재임(내 개헌)에 무게를 두고 다분히 우병우·최순실 등 이런 것을 개헌 블랙홀로 빨아들이려는 정략적인 것도 숨어있지 않나 생각하지만, 어떻게 됐든 우리는 (특위를 만들어) 개헌논의에 활발히 참여하자는 의견이 많다"고 말했다. 임기 내 개헌 가능성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 않겠나"라고 내다봤다.

손금주 수석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박 대통령의 개헌 제안이 갑작스럽다면서 "만시지탄이지만 뒤늦게나마 대통령 임기 내 개헌 추진 입장 표명에는 환영한다"고 밝혔다. 또 "대통령 측근의 국정농단을 덮기 위한 것이라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면서도 "개헌논의와는 별도로 대통령 측근의 권력형 비리 의혹을 끝까지 파헤칠 것"이라고 정치 현안과 별개로 개헌 논의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공식화했다.

당내 대권주자로 꼽히는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는 "최순실, 우병우 등 이런 일들을 덮으려는 의도는 아닌지 우려한다"면서도 "개헌 논의 이전에 (중·대선거구제 도입 등)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편이 우선돼야 한다"고 조건부 찬성 입장을 보였다.

또다른 주자로 지목되는 천정배 전 공동대표는 이번 제안을 '정략적 개헌'으로 보고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을 탈당할 것을 요구하면서도,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국민들의 뜻에 따라 한 세기를 내다보는 헌법 논의와 개정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논의 참여 의사를 밝혔다. 다만 "승자 독식의 선거제부터 고쳐야 한다"고 안 전 대표의 주장과 궤를 같이했다.

더민주는 박 대통령의 개헌 제안을 "난데없다"며 "국민의 목소리를 정면으로 거부한 처사"라고 규정, 일단 밀어내는 모습이었다. 개헌 논의 참여 여부에 대해서도 "충분한 시간을 갖고 차분하게 대응해나가겠다"고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윤관석 수석대변인은 오전 현안 브리핑에서 "180도 입장을 바꾼 개헌 논의 제안의 진정성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측근 비리를 덮으려는 정략적·국면전환용 제안이 아닌지 매우 의심스럽다"며 이같이 밝혔다. 기자들과 만나서는 "당 차원에서 (개헌이) 공식적으로 얘기된 바는 없다"며 당내 입장정리가 이뤄지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추미애 대표는 긴급 최고위 직후 기자들과 만나 개헌 제안에 대해 "예전에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가 정권 연장을 위해 3선 개헌할 때의 모습이 떠올랐다"고 비난한 뒤, 시의적절하지 않다는 비판과 함께 "대통령은 개헌논의에서 빠져야하는 분"이라고 강한 비관론을 제기했다.

추 대표는 "대통령은 국정과 민생에 전념하고, 개헌 논의는 국회에 맡겨야 한다"면서 개헌특위에 관해서도 "천천히 논의할 것"이라고 조심스런 입장을 냈다. 

당내 대권구도에서 사실상 '독주' 중인 문재인 전 대표는 "(박 대통령이) 갑자기 개헌을 말씀하시니, 이제 거꾸로 무슨 블랙홀이 필요한 상황이 된건지 의아하다"고 비꼬면서도 "제안 취지 등을 좀 더 살펴보고 신중하게 판단하겠다"고 말을 아꼈다.

   
▲ 사진=박원순 서울시장 페이스북 캡처


또다른 당내 주자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대통령은 개헌 논의에서 빠져야 한다"며 정치권과 국회 주도의 개헌 논의를 주장했으며, 박원순 서울시장은 "대통령 눈엔 최순실과 정유라밖에 안 보이는지? 재집권 생각밖에 없는지?"라는 비난을 각각 자신의 페이스북에 적었다.

이 중 박 시장은 지난 2007년 1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4년 중임제를 골자로 한 개헌 논의를 꺼내자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대선후보였던 박 대통령이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반응했다는 내용을 다룬 기사를 밑줄 쳐가며 읽은 기사를 스크랩해 함께 올려두기도 했다. 개헌 찬성여부에 대한 입장은 없었다.

박 대통령으로부터 국회 개헌특위를 역(逆)제안 받은 정세균 의장측은 이날 "대통령께서 국민 요구를 수용해 개헌 논의의 물꼬를 터 준 것에 대해 평가한다"면서도 "권력의 필요에 의해 이뤄진 과거 개헌은 모두 실패했다"며 "국회는 국민과 함께하는 상향식 개헌이 될 수 있도록 개헌특위 구성 등에 대해 여야가 협력해 준비해나갈 것"이라고 논평했다.

더민주 출신 정 의장은 20대 국회 개원사에서 개헌론을 적극 제기하며 개헌특위 구성에 대한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지난 9월초 결성된 20대 국회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에 여야 의원 192명이 참여해 개헌안 의결 정족수(200석)를 코앞에 뒀고, 실제 200명 이상이 개헌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여야 원내사령탑 간 이견으로 국회 특위 설치에 전격 합의하지 못했었다.

이런 가운데 이날 박 대통령이 개헌 제안과 함께 임기 내라는 시한까지 제시하면서 개헌 논의는 급물살을 탈 것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와 함께 그동안 정치권 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았던 '개헌-반(反)개헌' 구도가 가시화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다.

새누리당의 한 3선 의원은 "그쪽(반대)이 이탈하면 이쪽(찬성)이 들어가고 하기 때문에 200명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내다보며 "우리 당은 아니겠지만 야당은 개헌 대 반개헌 구도 싸움이 굉장히 짙어질 것이다. 정치적으로 여러가지 상황이 전개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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