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집착하는 궤변과 '개인' 지우는 집단주의 공동체 프레임
   
▲ 청년은 결코 아픈 사람이 아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은 요설이다./사진=미디어펜

요즘 대중매체와 수많은 단체들의 주장을 보면 청년에 대해 어떠한 이야기든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좌익과 우익 모두 청년에 대해 정책을 내놓겠다고 이야기 하며, 청년에게 좋은 이야기들을 전하는 멘토가 되어 떼돈을 버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런 멘토 중에 한 사람은 지금 정당을 만들어서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하는 수준이 되었다. 그만큼 청년의 방황은 사회의 문제라는 분석은 수많은 학자들과 논객들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소재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청년의 방황의 기저에는 청년에게 부여된 무리한 기대와 청년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오해, 그리고 기성세대 스스로 이익을 지키기 위해 청년에게 부담을 주는 수많은 이기적 행태와 사고들이 존재한다.

청년에게 지워진 사회적 부담은 청년을 속칭 사회적 ‘호구’로 만들어 버렸다. 청년이 취업을 못하는 것은 직업에 대해 너무나도 눈이 높아졌기 때문이고, 청년이 정치에 무관심하기 때문에 대한민국 정치가 비뚤어졌다는 식의 논리가 기성세대 내부에서 흘러나오고, 이러한 그들의 분석은 청년들에게 헛된 희망을 주는 멘토링이나, 상황에도 맞지 않는 훈계로 드러난다. 
  
청년에 대한 시각들이 드러나는 몇몇 사례들을 살펴보자, 총선한달 전쯤 어떤 방송에서 동양철학을 이야기하는 모 교수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였다. “…사실 헬조선은 청년 너희들이 만든 거야. 왜 정치인이 경로당 가서 허리 숙이고 있는 줄 알아? 정치인들은 자기한테 관심 없는 사람에게 오지를 않아. 그냥 경로당가서 노인들한테 허리 숙이고 유세하고, 청년들한테 오는 거 노인들한테 간다고 말하면 끝이라고. 헬조선이라고 비아냥거리지 말고 너희들 나라나 만들어.”1)

이후 총선에서 야당이 압승에 가까운 승리를 하자 이 학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내가 20대에게 각성을 이야기하니까 20대가 깨달았어. 이게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야. OO선생님이 우리를 걱정해서 헬조선 이야기를 해줬다고 20대들이 감사하대. 그리고 너희가 헬조선을 벗어나는 길을 나한테 물어봐. 나는 답을 알고 있어.”2) 이러한 시각을 일컬어 혹자는 ‘20대 개새끼론’ 이라고 표현 하는데, 한번 물어보고 싶다. 과연 청년이 정치에 참여하면 좌익이 정치적으로 이득을 볼 것이라고 생각하는 판단의 근거는 무엇인지 말이다. 
  
또 다른 사례로 최근의 최저임금 캠페인도 청년을 자신의 프로파간다에 활용하고 있다. 자칭 청년과 알바를 위한 모 단체는 다음과 같은 성명을 냈다.

 “현재 청년들의 노동의 가치는 현재 최저임금과 같습니다. 최저임금을 가지고 제대로 된 한 끼를 못 먹는 나라에서 청년들에게 주어지는 최저임금은 생계유지비입니다. 최저임금이 1만원으로 인상 된다면, 컵라면으로 밥을 때우는 청년은 사라질 것입니다. 청년들이 어려운 삶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중략) 이는 청년모두가 일치단결해서 정부와 여당에 주장해야 합니다.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은 청년에게 희소식이 될 것입니다.”3)

하지만 이 이야기와 달리 최저임금 1만원 인상 시 발생하는 경제 효과는 청년에게는 상승하는 물가와 줄어드는 일자리로 드러날 것이라는 분석이 다양한 기관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마지막 사례로 정부의 노동개혁 입법에 대한 민주노총의 성명서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 …노동 유연화는 청년의 불안정 고용을 가속화 시키며, 자본에 유리한 방향으로 청년을 열정페이로 쓸 수 있도록 합리화 한다. 이는 중장기적으로 현재의 청년실업을 심화 시키며 최종적으로는 ‘값싼 노동’의 보편화를 만들게 될 것이다.”4)

이 내용만 보면 노동개혁 입법을 통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청년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노동개혁입법의 핵심 대상은 상대적으로 고평가되어있는 대기업 생산 정규직 근로자이다.5) 노조는 일반적으로 기성 근로자들의 고용안정과 임금인상을 주장한다. 노동개혁 입법에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집단을 실제와 다르게 청년으로 바꾸고,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하여 청년들이 자신들을 지원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 /사진=연합뉴스

  
앞서 살펴본 세 가지 사례를 통해 우리는 사회의 일부 세력이 청년에게 사실과 다른 판단을 제시하여 청년들의 위기를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았다. 여기에 청년들이 삶이 힘들어졌기 때문에 치유를 해야 한다는 유의 이야기들이 결합하면서 청년은 혼란스러운 언어와 사실과 괴리된 선전‧선동 속에 살고 있다.

청년기에는 기본적으로 많은 시련을 겪으며 성장하고 이는 바른 성장을 하는 모습이니까 좌절하거나 방황하지 말고 멘토를 만나서 이야기를 들으라는 식인데, 이러한 모습으로 등장한 사람들이 그렇게 바람직한 대답들을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들이 이야기하는 청년의 방황에서 사회의 모습은 전혀 이야기되지 않는다. 경제위기나 생산구조의 변화, 기성 노동자들의 텃세, 인기영합주의적 정치양상들은 이야기되지 않고 청년들 개개인이 부정적이고 비관적이어서 현재의 청년들의 방황이 시작되었다는 식이다.
  
이러한 우리 청년들에게 드리워진 모습들에 대해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 할까? 학문도 삶의 경험도 미진한 같은 청년으로서 몇 가지를 생각해 보았다. 먼저, 우리는 한명의 개인임을 자각해야한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공동체 중심의 사고를 해오다 보니, 개인을 이야기하면 이기적이고 속칭 ‘싸가지 없다’는 지적을 받게 된다. 하지만 개인의 삶을 누군가 대신 살아 주지는 않는다. 내 의견을 정확히 밝히고, 한명의 개인으로서 자신의 이익도 주장해야 한다. 단, 책임을 질수 있는 한에서 말이다.
 
또한 우리에게 주어지는 단어들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그 의미가 왜곡 되어 있다면 그 의미를 정확히 분석하여 다시금 화두로 던져야 한다. 수많은 이념 논쟁에서 언어는 그 왜곡이 심화 되었다. 어떤 집단은 일부러 언어를 혼란스럽게 바꾸는 ‘용어혼란전술’을 이용하여 자기 집단에 유리하게 프레임을 설정하곤 한다. 의심하고 분석할 때 용어혼란은 그 힘을 잃게 된다. 
  
청년은 결코 아픈 사람이 아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느니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 식의 말도 안 되는 조언이나, ‘청년이 정치에 무관심해서 헬조선이 온 거다’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은 청년을 위한 일’ ‘노동개혁은 청년 죽이기’ 식의 사실과 다르거나 사실이 의도적으로 배제된 프로파간다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의 개인이고 개인이 없다면 대한민국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유주의자이자 개인주의자이며, 청년이다. 결코 누군가의 입맛에 맞는 호구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김동현 경제진화연구회 청년위원


1) jtbc <차이나는 도올> 4월 12일 방송분

2) jtbc <차이나는 도올> 4월 19일 방송분

3) 알바연대 알바노조 <최저임금 1만원을 위한 청년단체 성명> 2016. 6. 30

4) 민주노총 <노동개악 반대 범 민중운동 결의문> 2015년 11월  

5) 정부 노동개혁TF <노동개혁은 무엇인가요?> 2015년 10월 , 서울, 대한민국 정부


(이 글은 자유경제원 젊은함성 게시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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