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을 뒤흔들고 있는 '최순실 게이트'에 이어 미국의 차기 대통령으로 도널트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재계가 들썩이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인해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크게 작게 연루되거나 피해를 본 사실이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이들 기업의 오너 역시 예외가 아닌 상황에 직면했다. 

여기에 예상을 깨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가 미국의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되자, 재계는 ‘트럼프 쇼크’로 인한 불확실성 증가에 대비하기 위해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 지난해 7월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창조경제혁신센터장 및 지원기업 대표단 간담회를 마치고 주요기업 총수들이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지면서 재계는 혼란의 시간을 거듭하고 있다.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은 한때 최순실 씨의 최측근이라는 소문에 휘말리기도 했으나, 실제로는 현 정권에서 청와대의 퇴진 압력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2013년 말 청와대 핵심 수석비서관은 CJ그룹 최고위 관계자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이미경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요구했다.

CJ그룹은 현 정부의 다양한 문화 사업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특혜 의혹을 받기도 했지만, 이번 통화 내용 공개로 이 부회장은 정권으로부터 '미운털'이 박힌 피해자였던 것으로 밝혀진 셈이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부터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에서 물러나라는 압력을 받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주목을 받았다.

조 회장은 2014년 7월부터 평창올림픽 조직위원장을 맡아 국내외에서 활발히 활동했으나 1년 10개월만인 지난 5월 3일 갑작스럽게 사퇴를 발표했다.

당시 공식적인 사퇴 이유는 한진해운의 경영 위기 등 그룹 내부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지면서 조 회장이 정부 압력으로 본인 의지와 무관하게 위원장직을 내려놓았다는 얘기가 조직위 안팎에서 나왔다.

조 회장은 한진해운의 법정관리행 역시 최순실씨와 관련이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국정농단의 '피해자'로 비치는 모양새다.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으로부터 K스포츠재단에 대한 추가 기부를 요청받고 세무조사 무마를 부탁했다는 의혹에 휘말렸다.

최근 공개된 K스포츠재단의 회의록에 따르면 이 회장은 지난 2월 안 전 수석, K스포츠 정현식 전 사무총장 등을 만난 자리에서 70억∼80억원의 추가 기부를 요청받았다.

재단 관계자들은 최순실 씨의 지시를 받고 회의에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부영은 이미 재단에 3억원을 기부한 상태였다.

부영그룹은 지난 12월께부터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았고 국세청은 지난 4월 이 회장과 계열사인 부영주택을 법인세 포탈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과정에서 '강제모금'에 동원됐다는 논란에 휩싸인 기업들은 청와대나 현 정권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 씨 측의 강요는 없었다는 입장을 지키고 있다.

한류 확산과 체육 인재 육성이라는 재단 설립 목적에 맞춰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를 통해 사회공헌활동의 하나로 기부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실제로 일부 기업은 내부 회의를 통해 전경련의 출연 제의를 거절하기도 했다.

그러나 재단 설립 외에 최순실 씨 일가를 위해 사용된 돈 등 다른 곳으로 흘러들어 간 자금에 대해서는 기업들의 '모르쇠 대응'이나 말 바꾸기가 늘어나면서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

삼성그룹의 경우 최순실 씨가 독일에 세운 회사 '비덱(Widec) 스포츠'에 지난해 280만 유로(약 35억 원)를 건넨 정황이 검찰에 포착됐다. 이 돈은 최 씨 딸 정유라 씨가 말을 사는데 쓰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은 정씨가 삼성으로부터 10억 원에 달하는 말을 지원받았다고 독일 언론이 보도했을 당시에도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한 바 있다.

롯데그룹 역시 K스포츠재단에 대한 추가 출연 요구를 받았던 사실을 쉬쉬하다 K스포츠 내부 문건과 계좌 물증 등이 일부 언론에 노출되자 "사회공헌활동의 하나였다"고 말을 바꿨다.

앞서 K스포츠재단은 '5대 거점 체육인재 육성사업'의 하나로 경기도 하남에 체육센터를 짓는다며 롯데에서 70억 원을 받았다가 돌려줬다.

재계에서는 검찰의 수사 강도가 높아지고 어느 한 기업에서 '강제모금'에 대한 진술이 나올 경우 다른 기업들까지 진술을 번복할 가능성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 제45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가 9일(현지시간) 뉴욕에서 대통령 수락연설을 하고 있다.


지난 9일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으로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면서 재계는 기대보다 고민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트럼프 당선자가 극단적인 보호무역 조치를 시사해 온 만큼 대미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경제와 관련 산업에 타격이 불가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전체 수출은 지난해 7.9% 급감했지만 대미 수출은 0.6% 감소에 그쳐 전체 수출의 버팀목이 됐다. 수출 비중이 높다 보니 과거에 비해 영향력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미국 경제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 역시 여전하다. 

문제는 공화당 트럼프 당선자가 유세 기간 노골적인 보호무역주의 기조를 예고했다는 점. 트럼프 당선자는 힐러리 후보에 비해 훨씬 강도 높은 보호무역주의를 주장해왔다. 미국의 국익을 최우선으로 앞세운 만큼 한국·미국 간 통상·무역에는 먹구름이 드리웠다.

이에 따라 수입 의존도가 높은 섬유·의류나 자동차부품 등의 분야에선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조처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시각이 대체적이다.

이에 국내 기업들은 이번 미국 대선에서 보호무역주의를 천명한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승리하자, 향후 대미 교역 등에서 닥쳐올 타격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산업적 측면에선 자동차부품이나 섬유·의류 등의 산업에서 트럼프의 당선은 호재가 아닌 관계로, 분야별로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특히 자동차 등 일부 업계는 대미 수출장벽이 확 높아지는 등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수도 있어 초긴장 상태다.

미국이 주요 수출 시장인 한국으로서는 미국 정가와의 인맥도 중요하다. 하지만 사실상 재계 인사 중 트럼프 측과의 인연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인맥 구축에 비상이 걸렸다. 

현재로선 트럼프가 언급한 무역 관련 공약이 어느 선까지 입법화될지 불투명하기 때문에 새 정부 출범 이후 명확한 정책이 발표되기 전까진 보호무역의 강도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가운데 올해 4분기(10∼12월) 한국경제가 뒷걸음질 칠 수 있다는 비관론이 나오고 있어 재계의 불안감은 고조되고 있다.

어려운 대외경제 여건 속에 조선·해운업 등 취약업종 구조조정,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7 단종, 현대차 장기 파업 피해,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수출과 내수에 충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원점 재협상 등 도널드 트럼프가 자유무역주의에 역행하는 각종 공약을 실제로 추진할 경우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경제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며 “각종 자유무역협정 폐기를 기치로 내건 트럼프가 예상을 깨고 미국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재계는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김세헌 기자] ▶다른기사보기